돈·성(?)·취업비리 문제 등 노동계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남기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거의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엔 돈 문제다.

최아무개 전 금속노조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이 지난 21일 폭로한 바에 따르면 지회 임원들은 지난해 4월부터 조합비통장에서 임의로 조합비를 인출해 사용했다. 2천여만원을 곶감 빼먹듯 했다는 것이다. 이 돈으로 지회 임원들은 노래방이나 사행성 게임장에 가고, 심지어 복권까지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회의 조합비 의혹은 지난달 말 처음 불거졌다. 소문으로만 돌던 재정비리 문제가 수면으로 떠오르자 지회는 의혹을 받은 임원을 사퇴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봉합하려 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불명예 사퇴한 당사자인 최 전 사무국장이 양심선언의 형식을 빌려 지회 내 비리를 공개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원시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노조의 재정관리 시스템 때문이다.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주장하며 단위 사업장을 뛰어넘는 사회적 투쟁을 벌여 온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에는 그동안 조합비 외에도 각종 투쟁지원금과 소송 관련 비용이 집중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금 거래가 많고 돈의 쓰임새가 기록되지 않아 언제든 재정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 허술한 구조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일부 임원들의 도덕불감증이 더해지면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최 전 사무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지회 임원들은 조합비 통장을 정리하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의 경우 같은 페이지에 여러 번 겹쳐 찍어 조합비 유용·횡령 사실을 숨기는 비양심적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노조의 재정비리가 외부로 터져 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 부산지하철 청소용역노조 위원장은 조합비 7천여만원을 인출해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이달 21일 불구속 입건됐고, 지난해 8월에는 전 금속노조 ASA지회 사무국장이 수억원대의 투쟁기금을 횡령해 오피스텔 등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노동계 관계자는 “노조의 재정관리를 노조간부들의 양심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며 “재정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회계감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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