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필자는 이 지면을 통해 여성이 직장에서 직면한 차별을 얘기하고자 한다. 아마도 안티페미니스트이거나 신분·서열과 지배·복종의 가부장제 기반 성별 분업에 익숙한 명예남성은 첫 줄부터 아니면 제목부터 페미니스트의 따분한 얘기로 치부하며 페이지를 넘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필자는 경제학 전공이며 여성주의자도 아닐뿐더러 성별 역시 남성이다. 그럼에도 여성노동 환경이 개선되길 바라고, 직장내 차별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어머니의 경험담 덕이다.어머니는 흔히 말하는 배운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외국에서 학업을 마친 후 국내 대
1. 지난주에는 이 ‘노동과 법’ 칼럼을 빼먹었다. 2021년 5월4일자로 나가야 했는데, 그 전날에 쓰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현장검증이 있었다.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원청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를 구하는 소송사건 중 하나였다.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재판이 진행 중인데 최근 법원 인사이동으로 재판부가 변경되더니 현장검증이 잡혔다. 1심 서울중앙지법에서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이 인정돼 원고 노동자들이 승소했다. 피고 현대차의 항소로 지금까지 서울고법에서 원·피고 간에 ‘근로자
국회가 2월26일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29호·87호·98호 비준동의안을 의결했다. 지난달 20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화상으로 ILO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에게 3개 협약에 대한 비준서를 기탁했다. ‘기탁(寄託)’은 다수국 간의 조약을 국제법에서 성립시키기 위해 비준서를 일정한 곳에 보낸다는 뜻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9호 강제노동 협약, 87호 결사의 자유 협약, 98호 단체교섭권 협약에 대한 비준을 마치게 됐고, ILO에 가입한 지 30년 만에 8개 기본협약 중 7개를 비준한 나라로 국제적인 공인
시민의 촛불을 등에 업고 출범한 현 정부는 2017년 8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그중 고용노동부가 관할부서로 돼 있는 노동개혁 관련 국정과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 창출”(16번), “성별·연령별 맞춤형 일자리 지원 강화”(18번), “실직과 은퇴에 대비하는 일자리 안전망 강화”(19번), “노동존중 사회 실현”(63번), “차별 없는 좋은 일터 만들기”(64번),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ㆍ생활의 균형 실현”(71번) 등이 있다. 임기를 1년 앞둔 지금,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건 노동개혁은 얼마나
흔히 라이더 노동자라 불리는 음식배달 종사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경기도 플랫폼노동 사회적 대화 협약식이 지난달 29일 열렸다. 지난해 10월 경기도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자는 제안으로 시작돼 6개월 만에 이룬 성과다. 노사정 대화 형식을 통해 만들어진 이 협약에는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조 배민라이더지회, 라이더유니온 등 3개의 노동조합이 참여했다. 기업체는 주문앱 플랫폼 기업인 우아한청년들·요기요·쿠팡이츠·배달특급이 참여했고, 배달앱 플랫폼으로는 생각대로·바로고·메쉬코리아·스파이더크래프트가 들어왔다. 스타트업기업의 연합체인 코리
어제 오후를 좀 쉬며 다들 기력을 회복하기도 했고, 갈 길도 제법 멀어 아침을 서둘렀다. 간식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음료수도 챙겨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타는 품새나 길 찾는 품새가 이젠 스페인에서 제법 머무른 티가 난다. 오늘의 목적지는 몬세라트 바위산 아래 자리 잡은 카탈루냐 최고의 성지 ‘몬세라트 수도원’이다. 특히 천재 건축가 가우디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곳이 몬세라트의 바위산이었다는 얘기 때문에 관심을 더 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얘기 때문이지 모르지만 몬세라트산 정상 부근에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들이 어딘가 가우디의 역작인
조선일보가 4월26일 경제섹션 1면에 ‘주 52시간 했는데도… 대기업 주당 근로시간 0.5~1.3분 줄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2018년 7월부터 300명 이상 대기업에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가 시행됐지만 실제 근로시간은 거의 그대로였다는 거다. 노동시간단축 시행 전후인 2018년 6월과 2019년 6월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실제 근로시간은 고작 0.5~1.3분 줄었다는 거다.조선일보는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2018년 근로시간단축법 시행의 고용효과 연
서울 용산구의 한 의류매장에서 점원을 폭행한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의 갑질로 4월 한 달이 뜨거웠다. 사건에 관계된 1천여건의 언론보도를 살펴보니 주로 3개 주제에 기사 내용이 집중됐다. 먼저 4월 초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이 의류매장 점원을 폭행하고도 외교관 면책특권에 기대어 경찰 수사 등에 불성실한 뻔뻔함을 지적한 기사를 시작으로, 4월 중순 가해자의 폭행 사실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며 국민적 분노가 폭발했다. 여기에 가해자가 중국계 아시아인이라는 점과 벨기에 출신 방송인이 가해자의 폭력행위를 부끄럽게 여겨 우리 국민에게 대신
“피고인 A·B·C 등 상황실 구성원들은 2011년 6월께 에버랜드 상황실 구성 후 동향 파악 등을 통해 에버랜드 문제인력이 노조를 설립할 것이 확실히 예상되자 위 ‘그룹노사전략’에 따라 2011년 7월1일 이전에 대항노조를 설립하고 대항노조와 단체교섭을 체결한 후 계속적으로 대항노조에 교섭대표노조로서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에버랜드 문제인력이 만들 노조의 교섭요구권을 봉쇄해 노조를 와해할 것을 계획했다. 그리고 피고인 A는 그 무렵 피고인 C로부터 피고인 D를 대항노조 위원장으로 하고, 2011년 6월20일 대항노조 설립신고를 해
불교 건축물을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탑이다. 탑은 산스크리트어 스투파(stūpa)에서 왔으며, 이 말이 중국으로 건너와 탑파(塔婆)로 변했다가 줄어서 탑으로 부르게 됐다. 탑의 본래 용도는 석가모니의 사리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운 건축물이었다. 일종의 무덤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스님들의 유골과 사리를 탑이 아니라 부도에 모시지만 초기 불교 시대에는 탑에다 모셨다. 그래서 유골을 안치한 걸 탑, 안치하지 않은 걸 지제(支提)라 해서 둘을 구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제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탑은 3층·5층·7층 등으로
근로감독관집무규정은 근로감독관의 집무집행에 필요한 사항을 정한 행정규칙이다. 규정 37조의2 1항은 직장내 성희롱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별도의 독립된 공간에서 조사하도록, 2항은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 등에게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별도의 독립된 공간에서 조사하도록 정하고 있다. 최근 나는 직장내 성희롱 사건을 진행하면서 바로 이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별도의 독립된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히 느꼈다. 그 경험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쓴다.상담자(신청인)는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진행하는 경력단절여성
지난 토요일은 131회 세계노동절이었다. 서울 행사는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열렸다. 지난해 10월 LG 쌍둥이 빌딩에서 청소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결성했다. 그러자 LG측은 지난해 말 노조를 깨기 위해 청소용역업체를 바꿔 버렸다. 종전 청소용역업체는 구광모 회장의 두 고모가 100% 소유한 회사였다. 이런 부당해고에 맞서 노동자들은 4개월 이상 건물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투쟁을 계속해 왔다. 농성장 주변에는 “구광모 회장은 답하라”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빌딩 청소용역까지 자기 일가족에 맡겨서 이윤을 갈취하는 재
수능시험을 치르고 친구를 따라 서울에 영화를 보러 갔었다.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독립예술영화라니 멋져 보였다. 영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극장과 제목은 또렷이 기억한다. 서울아트시네마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 과 . 세 시간 동안 졸음을 참아가며 영화를 보고 광화문과 북촌을 하루 종일 걸었다. 그때 우리 호주머니엔 영화표 한 장과 청주와 서울을 오갈 버스비가 전부였기에 카페에 들어가서 쉴 생각도 못 했다. 그렇게 나는 처음 만난 서울을 두 가지 이미지로 기억한다. 다양한 문화가 모여드는 뜨거운 중심,
어서 오세요. 매드 사이언티스트!침대에 베개를 높이 괴고 비스듬히 기댄 채 문서작업을 하다가, 그대로 빠져나와 아래층에 들어서자 이런 인사를 받았다. 뭐라고?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 내가 왜?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실험 중 폭발해 폭탄 맞은 모양을 한 미친 과학자 같단다. 유머와 재치가 담긴 지적에 껄껄댔다. 돋보기 안경을 끼고 욕실 거울을 들여다보니 뜨악, 머리모양도 엉망이거니와 얼굴 주름도 잡티도 선명하고 커다랗다.‘앗, 여기 있네.’ 이사한 동네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발소를 한가하게 다른 동네로 이
“집값 상위 1~2%만 종부세 검토”4월20일자 매일경제와 한겨레 1면 머리기사 제목의 일부분이다. 쌍따옴표로 표시된 이 말의 화자는 ‘더불어민주당’이다. 입만 열면 재벌만 편드는 경제신문과 한겨레의 1면 머리기사에 같은 말이 동시에 실리는 건 드물다.그만큼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부동산 정책이 오락가락한다. 당대표 후보들도 엇갈린다. 홍영표 후보는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일관성에 있다. 보유세 강화 기조라는 큰 줄기를 바꿔선 안 된다”며 종부세 강화쪽으로 입장을 밝혔다. 우원식 후보는 “종부세 부과 대상 가구는 전체의 3.8%밖에 안
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정주행 중이다. 여성 교도소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인데, 교도소가 민영화된 이후 채용 과정이 재밌다. 교도소에서는 소정의 돈을 버는 노동을 할 수 있는데, 이 교도소를 인수한 민간기업은 수감자들에게 조금 더 많은 급여를 주는 ‘새로운 일’을 제안한다. 이 새로운 일을 맡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그 새로운 일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수많은 재소자들이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일을 하기 위해 시험을 치렀으며 누군가는 붙었고 누군가는 떨어졌다. 그리고 시험에 합격한 재
“노동하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직장에 구속돼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인생이니 말이다. 성공한 인생이란 임대료를 받는 삶이다. 맘껏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으니. 적어도 50대 이후에는 직장에서 나와 건물주로 살 수 있어야 성공한 인생이다.”한 자산 투자 강의 영상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이제 이런 이야기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시대다. 심지어 서점의 매대를 가득 채운 투자 관련 책들도 다 이런 식이다. 불로소득에 대한 도덕적 불편함이나 신성한 노동 따위는 이제 먼 옛날의 한때 이야기인 것 같다.요즘 보면 기업의 가치평가에도 비
4월29일, 전태일 열사의 유가족이 지난 50년간 보관하고 있던 전태일 친필 일기를 사회에 내놓는다. 정치권과 자본에 의해 왜곡될까 우려해 소중히 간직해 왔던 일기장 관리를, 그 뜻을 이어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위임했다. 전태일 열사의 일기는 전태일기념사업회가 펴낸 에 자세하게 담겨 있으니 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제 노동자들은 전태일 열사가 기록하고 간직했던 일곱 권의 일기를 직접 볼 수 있게 됐다. 청년노동자들에게 전태일은 평전으로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고, 가끔은 소설 속의 인물
군대에 간 남동생이 7개월 만에 휴가를 나왔다. 하필 코로나19 상황에 입대하게 돼 면회도 외출도 휴가도 어려웠다. 훈련소 수료식도 생략돼 가족 얼굴 한번 보기 힘들었다. 잘 때조차도 마스크를 끼고 잤다는 얘기를 듣고 안쓰러웠다.남동생이 군대에 가기 전부터 ‘고생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군대에 가는 것부터 어려웠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딱 맞게 갈 수 없으니, 복무기간 앞뒤로 원치 않는 휴학이 추가됐다. 입대를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받아, 온종일 컴퓨터 게임만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이게 마지막이다’는 심정처럼 보였다.생각보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강의 경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곳에, 대한민국의 대표 부촌 아파트단지가 있다. 지은 지 45년도 더 됐는데 그 명성은 여전하다. 외관은 낡고, 주차공간은 턱없이 부족해 출퇴근 시간이면 주차 전쟁이 벌어지지만, 서울시장이 바뀐 이후 재건축 기대가 높아져 ‘부르는 게 값’이라고들 한다.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손이 되고 발이 돼 주는 경비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은 한 평 남짓한 초소 안에 머물다가, 입주민이 부르면 언제든지 나가 업무를 수행한다. 택배도 맡아 주고, 분리수거도 도와준다. 입주민이 창문을 두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