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주의는 노동운동의 핵심 가치였고 지향이었다. 그렇다. 나는 평등주의를 ‘가치이고 지향이다’라는 현재형이 아니라 ‘가치였고 지향이었다’는 과거형으로 표현했다. 아직도 평등주의를 기조로 삼는 정파들, 그리고 아직도 평등주의를 가슴에 담고 있는 많은 활동가를 향한 도발이다. 사실 나의 의도된 도발은 ‘평등주의 노동운동은 끝났다’고 하는 1월3일자 칼럼이었다. 그 주장은 민주노총 안팎의 각종 정파와 활동가에게 난타당해야 했다. 그렇지만 나의 서글픈 예측대로, 지금까지 그 어떤 비판과 반박도 공개적으로 없었다.평등주의가
얼마 전 ‘드라마 제작 스태프가 근로자’라는 말을 현장의 스태프들에게 해도 되는지 질문을 받았다. “그렇다”고 대답했다.하지만 나에게도 현장 스태프 10명 중 2명만이 근로계약서를 체결하는 현장에서 ‘드라마 제작 스태프가 근로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듣기에만 좋은, 그러나 현실감은 전혀 없는 허울 좋은 말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다.때로는 법이 있는 것과 법이 현장에서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법에 따른 권리를 주장함에 있어 장애물이 많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법에 규정된 권리가 있더
한겨레신문이 지난 11일 20면에 “CJ제일제당, 70년 무노조 경영 깨지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CJ제일제당은 1953년 설립 이후 70년간 무노조 경영을 이어 왔다.한겨레는 이 회사 노동자들이 최근 고용노동부에 노조 설립신고를 하고 노조 집행부를 꾸리고 조합원 모집에 나섰다고 전했다. 노조는 한국노총 산하 식품노련 소속이란다.이재용 부회장이 시대착오적인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발언했지만, 이 노조는 신원 노출을 막으려고 카카오톡 단체방을 만들어 조합원을 모집 중이란다. 노조는 카톡방에 “가입자 본인이 가입 여부를
사람들은 미래는 막연하게 생각하고 현재를 확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는 구체적이라 생각하고, 미래는 추상적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미래가 구체적이고 현재는 추상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미래 목표를 세워 놓았지만, 현재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가 더 많지 않은가.현재를 구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를 중심으로 사건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확실한 건 바로 자기의 생각과 행위이기 때문에, 자신을 중심으로 사건을 배열하고 확실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그리고 윤석열 후보의 당선 이후 그의 공약과 언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분석하고 운동조직별로 자신들의 구체적 요구를 수용하라는 활동도 유행처럼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솔직히 말해서 윤석열 당선자 공약에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선거공학적으로 짜깁기된 것일 뿐 윤석열 정부의 실제 국정운영안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과거를 떠올려 보면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도 이명박 정권과 차별화하기 위해 “2015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 실제
“아이고, 이런 코로나 시국에 무슨 수련회입니까? 그냥 다음으로 미루지.”상담소를 찾은 지역의 노조간부는 회사와 2022년 단체교섭에 앞서 노조에서 준비하고 있는 간부 수련회에 귀찮은 기색을 보였다. 그는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노조 행사가 취소되는 것에 익숙해져 솔직히 다시금 행사에 열정을 쏟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이번 간부 수련회는 2년간 코로나19 확산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다 노조가 올해 야심 차게 준비한 행사였다.총회나 대의원대회는 노조의 한 해 활동방향을 결정하고 조합비를 기반으로 하는 예산의 사용을 인정받는 중
엄마는 항상 일했다. 내 기억이 있는 유치원 언저리부터 현재까지 가장 큰 엄마에 대한 기억은 일하는 모습이다. 집에서 식사를 만들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삼 남매 뒤치다꺼리를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휴게소에서 판매사원으로, 사무실에서 경리로 일을 했다. 일을 그만두고 우리를 돌보는 동안에도 엄마는 계속 돈을 벌었다. 엄마는 집에서 우리와 함께 볼펜을 조립했다. 우리가 조금 크고 나자 한식조리 자격증을 따고 학교급식 조리 일을 했다. 아빠가 희망퇴직을 하자 돈가스집을 했고 손목이 아파 병원을 들락날락하게 되자 동네에서 슈
최근 직장내 괴롭힘에 관한 두 건의 상담을 했다. 하나는 피해자가 직장내 괴롭힘 조사를 원치 않는데도 사용자가 조사를 강행하려고 하는 사건(사건 ‘가’)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신고는 묵살하고 피해자가 가해자인 사건만 처리해 피해자에게 징계를 가한 사건(사건 ‘나’)이다.사건 ‘가’의 사용자가 직장내 괴롭힘 조사를 하려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직장내 괴롭힘이 없었다’는 결론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현재 사용자는 직장내 성희롱을 이유로 피해자에게 피소를 당한 상태여서 이 소송에 유리한 사실관계를 만들어 내거나, 추후 피해자로
1. 지난 주말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집무실을 용산 국방부청사로 이전한다고 발표해서 TV 뉴스를 켤 때마다 시끄러웠다. 국민에게 청와대를 내주고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정부부처에 준하는 방대한 대통령 비서실 등을 폐지해 대통령집무실 자체를 없애고서 대통령이 주요 정부부처들이 있는 정부청사에 출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대통령집무실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인데 거창하게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니 잘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윤석열 당선자는 대선에서 국민에게 한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데 나
몇 년 전부터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책을 읽을 때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있으면 글귀 옆에 포스트잇을 붙여 놓는 것이다. 책에서 기억하고 싶은 글귀가 있는데 펜으로 줄을 치고 싶지는 않고, 고민하다가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포스트잇은 어느새 책을 읽을 때 필수 준비물이 됐고, 기억하고 싶은 글귀가 있는 페이지에 붙어 있다. 이렇게 내가 읽은 책에는 포스트잇이 빼곡히 또는 듬성듬성 붙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산 한 권의 책에는 포스트잇이 하나도 붙지 않을 것 같다. 마음에 와닿는 글귀가 하나도 없어서가 아니라, 이 책의 모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국 NBC뉴스와 화상 인터뷰를 하면서 “3차 대전이 이미 시작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2일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파멸적인 핵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러시아를 물리적으로 공격해 3차 세계대전을 시작하거나 국제법을 위반한 나라가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세계대전이라는 말을 언급
의외의 선물건강한 아기는 황금 똥을 싼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불규칙한 패턴 속에 술까지 마셔 대는 몸에서 좀처럼 볼 수 없다. 온몸에 몸살 초기 증세가 나타나더니 자가진단 키트에 양성이 떴다. 인근 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몸이 따갑고 코가 아픈 증세보다 나를 놀라게 한 신체 변화가 일어났다. 격리가 하루 이틀 늘어나자 스트레스와 술에서 해방된 몸은 색깔이 더욱 선명해지는 황금빛 똥을 내놓았다. 코로나의 선물이다. 지구도 이랬다.저성장기로 뭉그적거리던 자본주의는 바이러스가 세계를 강타하자 경제성장을 멈추지
지난 2019년 8월2일 택시 사업장에서 일정 금액의 기준을 정해 수납하거나 납부하는 사납금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개정안(21조1항, 26조2항)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인택시 임금지급의 기초가 되는 간주 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해야 한다는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개정안도 의결됐다.(11조의 2).다만 주 40시간 택시월급제를 규정한 택시발전법 11조의 2는 부칙으로 서울지역의 경우 2021년 1월1일부터 시행하되, 나머지 지역은 공포일부터 5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헝가리, 북쪽은 슬로바키아다.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차로 북쪽으로 달리면 조용한 동유럽 시골 마을이 이어진다. 1시간쯤 달리면 비셰그라드 성이다. 13세기 몽골 침공에 대비해 절벽 위에 지은 요새다. 이후 헝가리 국왕 마차시 1세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인구 2천명도 안 되는 시골이다. 성곽에 올라서면 발아래 조용히 흐르는 도나우강 너머로 슬로바키아의 푸른 숲이 끝없이 펼쳐진다.다시 강을 따라 서쪽으로 30분쯤 달리면 에스테르곰이란 좀 더 큰 도시가 나온다. 에스테르곰은 대
청년유니온은 지난 16일 총회와 조합원 총투표를 거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형식적으로는 본부와 과반이 넘는 지부의 선거 무산에 따른 것이다. 진짜 이유는 그간의 성과와 한계, 운동 노선에 대한 성찰과 그에 따른 새로운 비전 수립과 조직개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지난 12년 청년유니온이 변화한 사회 상황 속에서 어떻게 움직여 왔고, 어떤 성과와 한계의 노정을 거쳤는지 확인하는 것은 단순히 수많은 조직 중 하나의 이야기나 청년세대에게만 유효한 이야기가 아니다. 향후 ‘사회적 노동조합’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이다. 독재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이 헌장에는 개인이 없다. 민주도 자유도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 존재한다. 군부 독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유와 민주가 결합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반감부터 생기는 경우가 많다.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소감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
지난해 11월, 대법원은 청호나이스 정수기 수리기사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퇴직금 청구를 인용하며 수리기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퇴직금은 근로기준법 9조에서 규정하고 있고, 따라서 근기법상 근로자로 인정되는 경우에만 청구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정수기 수리기사가 근기법상 근로자임을 최초로 인정한 판례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그런데 이상하다. 지금까지 정수기 수리기사는 노동자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소속된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소속된 회사의 제품만을 판매하고 수리하는 그들이 노동자가 아니면 무엇이라는 말인가.무늬
지난 14일자 칼럼에서 윤효원 아시아노사관계 컨설턴트는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를 평가하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력의 역사적 실패”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면서 “진보정당들은 정파 정치를 뛰어넘는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론가적 냉소가 과잉된 진단이다. 하지만 현실을 과감하게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은 아니다. 그러한 실패조차 인정하지 않고 오래된 습관만 반복하려는 관성이 적지 않게 존재하기 때문이다.더 나아가려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
사각지대 vs 차별지대많은 사람들이 전남 해남을 땅끝마을이라고 부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땅이 시작되는 마을인데도 말이다. 5명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라고 말한다. 사각지대가 “거울이 사물을 비출 수 없는 각도”를 뜻한다면, 노동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구역이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된다.그러나 노동법의 차별조항은 불가피한 것이 아닌,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지대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둔 것에 불과하다. 현행 법·제도는 사업장 규모, 노동시간, 업종에 따라 근로기준법의 핵심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 근로기준
1. “TV 켜지 마.” 이번 대선의 후유증이 대단했다. 지난 10일 길었던 하루를 보내고서 집에 돌아와 저녁뉴스를 보려고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TV를 켜지 말라고 마누라가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개는 출근하기 싫은데 억지로 사무실에 나왔다 하고, 다른 아무개는 두문불출이라 하고, 또 다른 아무개는 앞으로 5년을 어떻게 살까 한숨을 짓는다더니 우리 집에도 그런 이가 있었다. 20대 대통령 선거의 개표 뒤에 일어난 일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큰일이 일어난 것처럼 낙담해 이렇게까지 하는 게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윤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