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벤츠 고급승용차에 각종 센서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운전석에는 '더미'(인체모형)가 앉아 있다. 성능시험을 준비하는 관계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시험장에 견학 온 대학생 30여명이 침묵한 채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다. 시험을 총괄하는 김대업(38) 선임연구원은 “이골이 나서 이제 긴장도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한 시간 전부터 굳어 있었다.
잠시 뒤, 자동차를 대신하는 ‘대차’가 150미터의 레일을 따라 시속 56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왔다. "꽝!" 천둥 같은 소리와 동시에 벤츠 승용차 운전석 창문이 산산조각 났다. 차체 측면부가 찌그러들고 에어백이 터졌다. 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하는 신차안전도 평가항목 중 하나인 측면충돌시험이었다.
지난 1일 <매일노동뉴스>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공단 자동차성능연구소와 수원시 서둔동 서수원자동차검사소를 찾았다.



"1밀리미터 오차도 안돼" …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

올해 상반기 공단이 실시한 신차안전도 평가 결과, 한 자동차회사가 야심차게 내놓은 1천600cc 준중형자동차는 경차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당시 ‘마티즈보다 못한 ○○○’라는 제목이 언론을 도배했다. 별 몇 개 식으로 표시되는 공단의 안전도 평가는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보게 된다. 그만큼 자동차 홍보는 물론 판매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시험 과정에서 공단과 업체의 신경전은 불가피하다. 성능연구소에서 진행된 시험에서는 파란눈의 독일 벤츠 본사 관계자가 처음부터 참석해 세팅 과정을 지켜봤다. 공단 시험이 정해진 기준에 따라 진행되는지를 감시하기 위해서다. 최대한 자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험을 진행하기 위해 이것저것을 요구한다. 이날도 벤츠측은 인체모형을 앉히는 위치까지 자사에 유리하도록 세팅할 것을 주문하는 등 공단 관계자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는 사이 시험은 예정했던 시간보다 한 시간 가량 늦게 시작됐다.

김대업 선임연구원은 “단 몇 밀리미터의 오차도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충돌시험장 바로 옆에서는 ‘자기인증적합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차안전도 평가가 새로 나온 차의 안전도를 평가하는 것이라면, 자기인증적합조사는 자동차업체가 공식발표한 안전기준에 맞게 자동차가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이날 검사대상은 국내 1~2위의 가격과 성능을 자랑하는 고급세단 승용차였다. 먼저 차량의 강eh를 평가했다. 프레스 기계가 차량 옆문을 누르자 500밀리미터 정도 움푹 들어갔다. 창문은 ‘와장창’ 소리를 내면서 깨졌다. 이런 시험을 할 때는 사방으로 볼트나 유리조각이 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사실 부상의 위험보다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정확한 시험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오는 ‘스트레스’다. 실패한다면 제작업체와 법정까지 갈 수도 있다.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오르내리는 완성자동차를 다시 구하기도 어렵다. 김준호(45) 책임연구원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도요타도 굴복시킨 자부심

공단의 성능연구소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 있다. 주행성능 시험장에서 고속으로 달리는 자동차들이다. 우리나라 완성차업체 가운데 현대자동차만 주행성능 시험장을 갖추고 있다. 나머지 업체들은 신차를 발표하기 전에 공단 시험장에서 속도·제동·선회·조향 등 주행능력을 시험한다. 공단이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제작결함 검사도 함께 진행된다.

시험장 직선코스에 진입한 차량은 최하 시속 180킬로미터, 최고 25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린다. 때문에 운전은 업체나 공단이 외부에서 초청한 전문드라이버들이 한다. 하지만 안전수칙 준수와 순서에 맞는 코스진입 등 통제와 감시는 공단 노동자들의 몫이다.
“○○○○번 차량 진입합니다.”
“○○○○번 차량 나갑니다.”
“알겠습니다.”

시험장 가장자리 관제탑에서 일하는 김학균(46)씨와 김영국(56)씨는 마이크와 쌍안경·폐쇄회로 TV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순간 아찔한 모습도 연출됐다. 시험주행을 마친 흰색 차량이 길을 잘못 들어 출구로 나가지 않고 입구 쪽으로 향한 것이다. 이미 다른 차량이 주행장에 진입해 고속으로 달리는 상황에서 위험천만한 행위다.

“조심해서 천천히 후진하세요.”
김영국씨가 마이크에 대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주행시험은 24시간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관제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2인1조로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한다. 식사를 하거나 급한 용변을 볼 때도 한 사람은 무조건 자리를 지켜야 한다. 김씨는 "오늘은 시험차량이 적어 그마나 낫다"며 "차량이 많을 때는 여간 긴장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래도 자신들이 땀방울을 쏟을수록 자동차의 안전성능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공단 노동자들에게 위안거리다. 공단이 각종 시험을 통해 자동차를 선택하는 국민들에게는 좋은 정보를 주고, 그로 인해 기업들이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공단은 특히 올 상반기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도요타자동차의 리콜(제작결함 시정) 사태 과정에서 진가를 확인했다. 도요타의 자발적 리콜 이전에 가속페달 오작동 사실을 밝혀내 리콜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김창현(41) 책임연구원은 “공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자동차업체들이 안전성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우리 노력 덕분에 국내에서 판매되는 자동차의 안전도가 높아지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검사 불합격에 ‘반 협박’도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은 정기검사나 종합검사를 받아야 한다.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민간업체에서 받지만 공단이 직영하는 검사소도 있다. 이날 오후 찾은 경기도 수원시 서둔동에 있는 공단 서수원자동차검사소. 각종 차량이 검사소 입구에 줄지어 서 있다.

지영욱(35)씨가 검사대에 오른 아반떼 차량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우선 차량의 각종 안전센서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이어 검사대 밑 텅 빈 지하공간에 내려가 차량 하부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마이크를 통해 차주에게 상태를 설명한다. 고객은 지상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평소에 확인하기 힘든 차량의 하부상태를 눈으로 볼 수 있다. 안전센서 검사나 하부상태 설명은 공단 직영 검사소에서만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고객님, 변속기·엔진오일 누수 이상 없습니다. 브레이크 오일과 연료탱크도 상태가 좋군요.”

다음은 종합검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스배출검사다. 롤러가 돌아가면서 자동차바퀴는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릴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간다. 이때 자동차 알피엠(분당 회전수)은 평소보다 두세 배 올라간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자동차 검사에서 나오는 매연과 분진이 노동자들을 괴롭혔다. 흰옷은 금방 더러워져서 입지 못할 정도였다.

지금은 머플러(소음기)에 연결한 호스 형태의 환기시설을 통해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이 한 번 걸러진 뒤 밖으로 배출된다. 바로 옆의 경유차량 검사대는 전체가 부스 형태의 환기시설로 둘러싸여 매연과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고 있었다.

“정말 환경이 좋아졌지요. 민간업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런데 휘발유나 가스차량에서 나오는 매연이 경유차량에서 나오는 매연만큼 몸에 안 좋거든요. 휘발유차량 검사대에도 부스시설이 빨리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가스배출검사에 이어 바퀴정열상태·브레이크 제동력·전조등 상태·속도계 오차범위 등의 검사가 2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뒷바퀴가 약간 틀어졌지만 큰 문제는 없습니다.” 지씨는 여성고객에게 검사내역서를 보여 주며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이곳에서 검사를 받는 차량은 하루 평균 100여대. 검사 결과 ‘적합’ 판정을 받으면 다행이지만, ‘부적합’ 판정이 나올 경우 고객들이 거세게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잦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부분을 수리하고 다시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검사소에서 정비소와 짠 거 아니냐. 인터넷에 올리겠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 이런 사람이다”고 협박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난감할 때도 있지만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비싼 수리비를 감당하기 힘든 손님들도 계시거든요. 하지만 컴퓨터가 정확하게 하자를 발견하기 때문에 저희들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


자동차뿐 아니라 ‘사람’도 검사

서수원검사소에서는 자동차 검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 검사’도 한다. 검사소 건물 2층에는 공단 경기지사가 운영하는 ‘운전정밀 검사실’이 있다. 검사실은 이날 사람들로 북적였다. 60여명의 응시자들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마치 게임하듯이 속도감각과 정지거리감각을 평가받았다. 시험 설문지처럼 문답식으로 나오는 인성검사도 거쳐야 한다.

화물이나 버스·택시 등의 업체에 취업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 재직 중인 사람이라도 중대사고를 경험했을 경우 ‘특별검사’를 받도록 돼 있다. 검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공단 직원들의 설명이 끊이지 않았다. 아주 초보적인 설명도 빠뜨리지 않았다.

“‘당신은 술을 좋아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나올 경우 ‘예’라고 답했다고 쳐요. 나중에 ‘당신은 술을 싫어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라고 답하면 안 됩니다.”

컴퓨터 모니터와 방송을 통해 설명이 나오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쉽게 알아듣지 못했다. 글자를 깨치지 못한 이들도 더러 있다. 불합격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

평가 결과 혹시라도 운전결함요소가 발견되면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 5% 정도는 불합격하고, 재검사를 받아도 계속 떨어지는 운전자들도 있다고 한다. 자동차 검사와 마찬가지로 운전자들도 거칠게 항의한다. 사업용 자동차를 모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다. 때문에 불합격을 반복하는 사례를 보면 공단 노동자들의 마음도 좋지 않다.

권학유(40)씨는 “불합격한다고 해서 운전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계속 떨어지는 분들에게는 다른 직업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음 같아서야 모두 합격시켜 드리고 싶지요. 하지만 국민 한 명이라도 교통사고로 죽는 것을 예방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높은 나라. 사망자가 줄어도 OECD 회원국 평균 두 배를 웃도는 나라. 공단 노동자들의 노동과 땀방울이 소중한 이유다.



교통사고 유가족 지원하고, 인형도 고쳐
교통안전공단 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다양하다. 교통안전과 관련한 것은 웬만하면 다 한다고 보면 된다. 화물운송과 항공운항 종사자들에 대한 자격시험과 철도차량 운전면허 시험도 공단의 주요 사업이다. 지사 사정에 따라 지역민을 대상으로 운전방법과 안전운전 등을 정기적으로 교육하기도 한다. 지난해 경북 상주시에 문을 연 안전운전체험연구교육센터는 택시·화물·버스 운전자들에 대한 실기교육과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교통사고 피해로 중상을 입은 사람이나, 사망한 사람의 노부모·자녀들에게 생활비·학자금을 지원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문재업(44) 자동차노련 교통안전공단노조 사무국장은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가정형편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며 “정부가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 공단 노동자들이 자동차의 부품을 만지거나 운전자를 상대로 교육하는 일을 하지만, 인형을 수리하는 일이 주요 업무인 노동자들도 있다. 경기도 화성시 자동차성능연구소 인체모형교정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희관(28)씨는 “회사에 들어올 때 주 업무가 ‘인형관리’라는 말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웃었다. 하지만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최첨단 기술이 모인 집합체다.
자동차 안전도 평가에는 '더미'라고 불리는 인체모형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사람의 시신을 분석해 개발·보급한 것이다. 피부와 머리·가슴·허리·팔다리 뼈 등이 인간의 신체와 거의 흡사하다. 노씨를 비롯한 인체모형교정실 노동자들은 충돌시험으로 망가진 더미를 원상복구하는 일을 한다. 이 역시 고도의 집중력과 긴장이 요구된다. 노씨는 “한 명이 하루 종일 일하면 더미 하나를 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학태 기자


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검사는 민영화 바람을 비켜갈 정도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동차를 가진 '오너 드라이버'들이 받는 정기검사·종합검사·구조변경 검사 등은 공단과 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돼 있다.
당초 자동차검사는 공단이 모두 담당했지만 97년부터 정부 정책에 따라 이원화됐다.
이에 따라 공단은 57개 검사소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에 지자체는 1천750여곳의 민간업체를 지정해 위탁운영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민간업체와의 경쟁에 노출된 것이다.
전체 자동차시장 규모는 연간 3천억원 수준이다. 검사 수수료는 공단의 주요 수익원이었다. 그런데 검사가 이원화되면서 공단은 연구·시험에 대한 투자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서비스 질을 보면 단연 차이가 난다. 공단의 경우 관련법에서 의무검사 대상이 아닌 ‘안전 관련 전자센서 점검’을 무조건 실시한다. 서수원검사소처럼 자동차 하체검사를 모니터로 보여 주고 설명하는 서비스도 공단만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지자체가 지정한 민간업체 대비 3.2%에 불과한 공단 직영검사소의 서비스 점유율은 30%에 이른다. 교통안전공단노조는 “이원화 초기 20%에 불과했던 점유율을 30%까지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자동차검사 서비스 질 향상은 민영화 바람도 비켜 갔다. 이명박 정부 초기 공공기관 선진화계획에 따라 자동차검사소에 대한 완전 민영화가 검토됐다. 그런데 검사소를 상대로 감사를 벌인 감사원은 “민영화는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재업 노조 사무국장은 “다행히 민영화를 피했지만, 검사 이원화에 따른 수익감소는 여전히 부담”이라며 “공단이 전국의 주요 지역에 검사소를 확장하고, 이로 인한 수익을 안전도 평가 등 공공성이 강한 사업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학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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