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제조업 사내하청은 노사갈등의 핵심 요인이었다. 노사 간에 불법파견 또는 진성도급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법원이 지난달 22일 ‘현대자동차에서 2년 이상 된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해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사내하청 문제가 전환점을 맞게 됐다.
현대자동차가 우리나라 제조업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급력이 예상된다. 논란이 확산되자 고용노동부는 “이달 말부터 실태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와 재계, 정부의 대책에는 큰 차이가 있다. 노동계는 직접고용을, 재계는 파견업무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노사정 관계자로부터 사내하청 문제에 대한 해법을 들어 본다.



“현장 분위기 '술렁', 조직 확대 기대”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현장 분위기가 술렁이고 있다. 원청 사용자성과 직접고용을 요구해온 지회의 주장에 ‘긴가 민가’ 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지회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내하청 조합원수가 울산공장만 600명 정도인데, 여름휴가가 끝나면 조합 가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내하청 조합원 평균 근속연수가 7~8년이다. 신규채용은 거의 없었고 현재의 노동자들이 근로계약을 갱신하며 일해 왔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경우 1차 하청업체 노동자가 약 5천800명이다. 대부분 이번 판결의 영향권 안에 있다. 업체가 변경된 경우라도 공백 없이 현대차 공장에서 계속적으로 2년 이상 근무한 경우 이번 판결의 적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개정 파견법을 적용받는 2005년 7월1일 이후 입사자의 경우, 2년 이상 계속 근무했다면 ‘고용의무’를 적용받게 된다. 원청업체는 고용기간 2년이 경과한 사내하청 노동자들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를 갖게 된다. 사용자가 고용 대신 ‘벌금’을 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회사가 직접 고용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들은 고용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나설 것이다. 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했을 때 보다 더 큰 금전적·물리적 비용을 치러야 할 것이다.
고용의무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청이 한시하청 사용을 늘릴 가능성도 예상된다. 파견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고용-계약해지-휴지기-재고용’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악덕기업이라는 지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법판결 획일화는 곤란, 도급거래 장려해야”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생산방식이 다양화되고 있는 요즘, 사내하청도 다양화됐기 때문에 획일화시킬 수는 없다. 현대자동차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특정한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 이것을 가지고 하도급 거래 자체를 부정하거나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몇 가지 사례로 모든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사내하청 문제를 바라볼 때에는 ‘일의 완성’이라는 도급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주지해야 한다.
잘못 접근하게 되면 현장의 노사갈등, 또는 노노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기업의 경쟁적인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생산방식을 가로막아 유연성을 저해하게 된다.
경영계는 그동안 제조업에 대해 파견을 허용해야 하다고 주장해 왔다. 생산방식의 유연화를 위해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원청과 하청이, 기업과 기업이 서로 윈-윈하고 상생할 수 있도록 도급방식에 의한 거래가 장려돼야 할 것이다.


“사내하청 남용은 문제, 노사가 머리 맞대야”
권영순 고용노동부 고용평등정책관



 


사내하청 문제는 차별·고용불안 등 고용구조상의 문제를 야기하는 사안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기업입장에서는 비용절감과 인력운영의 탄력성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반면, 근로자들은 근로조건 격차 문제 때문에 직접고용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노사 간 인식차를 좁힐 필요가 있다.
따라서 원하청 기업은 물론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사안이다. 직접고용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여건이 안 된다면 서로 논의를 해야 한다.
다만, 사내하청이 무분별하게 남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파견의 경우 원청이 책임을 지면서 근로자를 보호하는 측면이 있지만, 사내하청이나 도급은 근로자들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없다. 근로조건 등을 봐도 파견이 도급이나 용역보다는 낫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내하청이 남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입장에서 인건비나 인력운영 탄력성 등에 문제가 있다면, 정규직노조도 양보해가면서 풀어야할 문제다.
정부는 늦어도 9월 말까지 사내하청에 대한 실태조사를 마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추가조사도 진행할 계획이다.


“흐름생산 공정의 새 고용관행 정착 계기로”
손정순 성공회대 노동사연구소 연구원



 


대법원 판결은 사내하청 노동자라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면 2년 이상 근무자를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결에 따라 해당 노동자를 모두 직접 고용하는 것이 원칙이 될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비용 증가를 우려한다. 대기업은 자체 부담능력이 있으니 직접 고용을 원칙으로 하되,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2~3차 외주하청 업체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다. 2~3차 외주하청의 경우는 대부분 중소기업이지만, 대기업처럼 사내하청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기업이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면 기업 존립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비정규직법 시행 이후 정부가 마련했던 정규직 전환 지원금 제도를 확장해 지원해야 한다.
이번 판결로 앞으로 흐름생산(컨베이어벨트)을 하는 조립·가공 생산업체, 즉 자동차·전자·조선업종 등에서는 고용관행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흐름생산을 하는 공정에서는 앞으로 사내하청을 둘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변화할 고용관행을 어떻게 정착시킬지가 더 중요하다. 노동계가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의제를 선점해야 한다. 이번 판결로 흐름생산에 투입되는 모두 노동자를 직접 고용한다는 새로운 고용관행을 만들어 낸다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이웃 문제로 공론화 시켜야”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


 

법에 준하는 판결을 내리는 대법원이 보수적인 정권하에서 현대차를 상대로 비정규직 일반 문제에 대해 규제를 가한 것은 전향적이다. 보수적인 대법원마저도 그런 판결을 내린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문제가 빚은 사회양극화와 서민경제파탄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이 판례가 하나의 사업장을 넘어 제조업과 산업전반에 적용돼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무분별하게 남용됐던 관행을 없애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자본입장에서는 판례적용을 받지 않기 위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주기를 2년 이내로 줄이는 ‘회전문 채용’을 확대하거나, 모듈화·외주화 현상을 심화시킬 수 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떨어뜨려 자본측에서도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노동계는 이 판례가 해석이 분분한 판례로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법으로 못을 박아야 한다. 노무공급방식에 대해 전반적으로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내하청 문제는 서민 경제와 직결된다. 국정감사를 통한 문제 제기와 시민단체와의 연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국민들에게 사내하청 문제를 알려내고, 우리 이웃의 문제로 만들어 입법화 시켜야 한다.
이번 판결은 현 정부의 대기업 때리기 분위기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현 정부조차도 최근 서민경제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불공정한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진정성을 가지려면 사내하청 문제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