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세워 올린 파업 깃발. 행여 꺾일까 청테이프 둘둘 말아 붙드니 바람에 깃발이 살아 펄럭여 그제야 언론노조 KBS본부 이름이 선명하다. 발 디딜 곳 적어 위태롭던 철골조엔 혼자 올랐지만 손 내밀어 닿을 곳엔 동료가 많았다. 파업 7일째, 그 깃발 이정표 삼아 조합원·시민들이 모여 외치길 공영방송 개념탑재! 근심 어린 한숨이 애정 듬뿍 함성에 묻혔다. 희번쩍 조명이 밝고 노랗던 촛불이 아스팔트에 출렁이니 상서로운 빛, 서광이 그 밤에 들어 오래도록 밝았다. 개념부족 특보 사장 전횡에 맞선 무기한 파업은 기념비적이라고 엄경철 노조 KBS본부장이 말했다. 춤추던 조합원들, 개념시대 열겠다며 짝퉁 소녀시대 비난을 감수했다. 파업 장기화를 각오한 듯 몰골은 험했지만, 얼굴 없던 라디오 PD들도 무대에 올라 필승을 다짐했다. 방송사고가 빈번했지만 박수와 함성이 골을 메웠다. 촘촘하던 버스 차벽, 불통의 골도 넘어 울렸다. 각계의 파업지지 성명이 잇따랐다. 소통, 그 뜨거운 경험 끝에 비로소 연대의 개념이 바로 섰다. 지키겠다는 말은 할 수 없어 대신 새긴 구호는 “KBS를 살리겠습니다”였다. 어렵게 세운 노조 깃발이 신바람에 살아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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