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동부 업무순시에서 대통령 말씀이 있었다. “노동자가 경영에간섭해서는 안 된다. 기업경영은 주주와 임원들이 결정할 일이지 노동자가 개입할일이 아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입장은 이번만이 아니라 근래 자주 표명된 바있다. 반면에 지난 연말 한 방송국 프로에서 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인사문제같은 것을 제외하곤 노동자가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아니자본가의 대변인보다 대통령쪽이 더 보수적인 셈인가?

본디 현 대통령은 노동계에 상대적으로 더 가깝다고 평가되었다. 중산층과서민을 위한 정권임을 내세운 것도 여러 번이다. 또 자신의 저서에서도 “대중이생산과 운영에 참여하고 그 소득의 분배에도 고루 참여하는 사람다운 삶을보장받게 하는 민주적 대안”(<대중경제론> 표지)을 제시하려 했고, “노동자의경영참가를 촉진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대중참여경제론> 256쪽)고 명언한적도 있다.

그런데 '개입'과 '참가'가 다른 뜻이 아니라면 대통령의 최근 태도는 분명히노동자 경영참가 불가론이고 노동계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출인 듯싶다. 어쩌다이렇게 바뀌었을까? 이전 말씀들은 단순한 득표용이었던가? 돌이켜 보면노사정위원회 발족 때만 하더라도 이렇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통령과 노동계의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98년 봄 대한중석해외매각에서였다. 해외매각에 따른 고용불안을 우려한 노동자 반발로 매각작업이차질을 빚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대기업과 은행의 구조조정에 저항한 파업들도노동자 경영참가 불가론을 굳히게 했을 것이다.

그러면 경영은 과연 그렇게 신성불가침인가? 경영이란 바로 기업의의사결정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이 의사결정에 개입해온 지 오래이다.노사협의회나 단체교섭이 바로 그런 개입인 셈이고, 벤처기업에선 전략적의사결정에까지 노동자가 참가한다. 즉 경영참가의 문제는 인정 여부가 아니라어느 범위까지, 또 어떤 방식으로 참가를 인정하느냐의 문제이다. 일본이나구미에서도 그렇듯이 정보, 능력, 책임이 공유되는 정도에 따라 참가 권한이달라지는 것이다.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일이고, 따라서 노동자들이 거기개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대통령이 기업경영 권한이 있다고 한 주주들의상당수가 사실은 기업경영에 단기적인 이해관계만을 가짐에 비해, 노동자들은기업에 인생을 몽땅 내맡긴 처지이다. 특히 대기업 노동자는 `절이 싫다고 가볍게떠날 수 없는 무거운 중'이 되어 있다. 부당한 경영간섭이라고 하면 오히려경영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2, 3세 총수나 부패한 정치인 및 관료에 의한 간섭의폐해가 더 심하다. 이렇게 볼 때 노동자 경영참가 불가론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것이다.

물론 노동자들도 그동안 올바르게 경영참가를 해 왔는지 짚어 보아야 한다. 과거 타성을 못벗어나고 이른바 집단이기주의를 드러낸 일은 없었는가? 원래경영참가는 경영책임을 수반한다. 그런데 나라와 기업의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을공유하지 못하고 구조조정에 무조건 반대하는 경직적인 자세도 없지 않았다. 민주적 구조조정을 적극적인 대안으로 제시하지도 못했다.

이런 잘못된 경영참가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치민주주의가부작용이 있다고 폐기할 수 없듯이, 경제민주주의의 일환인 노동자소유·경영참가도 부작용이 있다고 폐기할 게 아니라 바른 방향으로 발전시켜야한다. 그래야 참여와 협력에 기초한 생산적 노사관계가 구축될 수 있다.

힘을 합쳐야 할 세력들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도리어 서로 맞부딪치는 형국이되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옛 마음으로 돌아가 노동계의 고통을 감싸안는 대통령의모습을 보고 싶다. 노동계 역시 현 정권과 사생결단 싸운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게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구조조정을 둘러싼 바람직한 경영참가 모델부터정권과 노동계가 함께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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