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와 북의 조문단 파견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모처럼 풀리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움추렸던 남북노동계도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노동계는 민간교류의 최선두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다.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 민간특사로서 남북의 끈을 이었다. 한국노총은 서로 등을 돌린 정부와 민간단체의 소통을 담당하면서 남북 민간교류를 이끌었다.

그런데 한국노총은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고민이 적지 않다. 통일사업이 조합원 대중사업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반기 노동 현안인 전임자임금·복수노조 문제에 밀려 통일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5일 김동만 한국노총 부위원장(50·통일위원장, 사진)을 만나 남북관계에서의 한국노총 역할과 통일사업에 대한 고민을 들어봤다.
 

-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풀리는 것 같다.
“아주 고무적 현상이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큰 계기를 만들었다. 통일사업의 경험으로 볼 때 주기적으로 경색되고 다시 풀리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북한 조문단 파견은 이런 흐름을 의미있게 만들었다. 조문단은 김기남 노동당 비서를 단장을 맡고 비중 있는 인사들로 구성됐다. 조문단 파견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고, 다른 하나는 북미관계가 풀리면서 남북관계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현 정부 집권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된 것은 신뢰와 소통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북핵과 개성공단 폐쇄 등 극단적인 상황이 전개돼도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이는 곧 국민여론 악화로 이어졌다. 북한의 파격적 행보를 우리 정부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 남북 화해분위기에서 노동계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설명해 달라.
“노동계가 앞장서 민간차원의 교류와 협력에 물꼬를 터야 한다. 북한도 남측 노동계의 역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중단된 남북노동자 교류도 본 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한국노총 차원에서 모금한 통일쌀을 전달하는 방안을 찾을 것이다. 남북노동자 통일대회 등 공동사업과 중단된 산별·지역별 교류도 활성화 시킬 것이다. 중요한 것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촉구를 위한 여론형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한국노총은 통일사업의 중심에 있다. 한국노총이 보수층을 설득해 끌고 가는 역할을 할 것이다. 통일사업은 등고자비(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식으로 진행돼야 한다.”

- 남북 노동계는 그동안 민간부문 대표로 남북관계 개선에 많은 노력을 했다. 지금까지의 노동계 역할에 대한 성과와 한계를 평가한다면.
“노동계가 남북 간 민간교류 활성화에 많은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615공동선언실천민족공동위원회에서도 노동분과가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남북 당국 간 관계가 어려울 때는 지렛대로, 발전할 때는 보완하는 역할을 해왔다. 6·15공동선언 발표 후 남북노동자통일토론회 등 노동계의 교류협력을 시작으로 민간차원의 사업이 시작됐다. 남북노동자대표자회의와 남북노동자통일대회 등 정치적·대중적 차원의 사업을 주도한 것도 노동계였다. 아쉬운 부분은 남북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노동계가 순수하게 노동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해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이행되지 않는다. 남북노동자대표자회의 정례화도 3~4번 합의했는데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

- 지난해 남북노동단체 대표자회의를 열기로 양 노총과 북한 직총이 합의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남북관계가 경색된 관계로 교류협력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남북관계가 전환되고 있으니 다시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북대표자회의와 남북노동자통일대회, 산별 간 교류 등 모든 사업들이 다시 논의될 것이다. 다음달 내 남북노동자 3단체가 실무협의를 열어 전반적인 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 것이다. 아직 민주노총과는 논의하지 않았는데 조만간 시작할 것이다.”

- 양 노총이 갈등관계에 있어도 통일사업은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양 노총은 통일사업의 경우 꾸준히 연대해 왔다. 얼마 전까지 양 노총 관계가 악화됐을 때도 서로 논의의 자리를 이어갔다. 서로에게 가장 너그러운 부분이 통일사업이다. 비정규직법 논의를 계기로 갈등도 풀려 서로 긴밀한 교류를 이어갈 것이다.”

- 통일운동에 있어 대외적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조합원들의 관심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조합원 간, 산별연맹 간 시각차이도 상당해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가장 고민되는 문제다. 다른 사안에 있어서는 인식차가 크지 않은데 통일사업에 있어서는 시각차이가 크다. 통일사업의 규모에 비해 여전히 조합원들의 관심과 인식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노총 차원에서 통일사업에 대한 인식전환 기회를 제공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조합원들의 인식을 보면, 남북관계가 좋고 언론보도가 긍정적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통일사업에 대한 참여를 확대하고 교육을 통해 극복할 것이다. 산별·지역별 교류를 확대해 북측 노동자와 직접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계획이다. 또 통일교육을 확대할 것이다. 한국노총 중앙교육원의 교육 프로그램에 통일부분을 신설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 일각에서는 통일사업이 중앙차원에서만 진행된다는 지적이 있다.
“통일운동의 특성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다. 모두 마찬가지겠지만 노동자 통일운동은 정치적인 상징성과 대중성이라는 양면을 갖고 있다. 더구나 남북관계가 발전과 교착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 통일운동이 갖는 상징성은 중요하다. 때문에 중앙의 내셔널센터만 활동한다는 활동은 잘못된 것이다.”

- 일각에서는 한국노총 지도부의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장석춘 위원장도 통일문제에 있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 장 위원장은 LG전자노조와 금속노련을 이끌 때도 남북교류에 적극 나섰다. 다만 업무가 구분돼 있으니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 통일사업의 대중화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흥미위주의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인 통일대장정을 놓고도 논란이 많다.
“통일운동의 대중화 문제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문제였고 아직도 핵심적인 과제다. 전반적으로 사회상황이 바뀌면 사업도 흐름에 맞춘 변화가 필요하다. 제주도·백령도에 이어 올해 울릉도를 갔다 왔다. 일부에서 통일사업이 변질됐다는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조합원 눈높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개인적으로 잘했다고 판단한다. 통일사업은 조합원들을 고생시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아이템을 개발해 시대에 맞는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이하면서 조합원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현장에 돌아가 홍보활동도 하고 있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계기를 자주 만들 것이다.”

- 노동현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에게 통일문제는 뒷전일 때가 많다. 조만간 노동계 최대 현안인 전임자임금·복수노조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 또다시 밀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평화와 통일문제는 노동자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중단해서는 안된다. 굵직한 노동현안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 활발한 활동에도 통일사업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 노동현안과 통일사업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를 조절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양 노총과 통일사업 주체 모두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전임자임금·복수노조 문제는 노동계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하반기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수는 없지만 지속적으로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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