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4년 국내 첫 사회보장보험으로 도입된 산재보험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보험업계가 산업재해보상보험을 민간보험시장에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데 이어 정부 일각에서도 규제완화 차원에서 같은 주장을 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호열)는 시장경쟁을 활성화해 경제를 살리겠다며 이른바 ‘시장구조를 왜곡하는 각종 진입규제’를 정비하겠다고 나섰다. 공정위가 지목한 11개 분야별 진입규제 가운데 하나로 ‘산재보험’이 꼽혔다. 산재보험시장이 정부에 의해 ‘독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12일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산재보험시장의 독점구조 개선’이라는 주제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한다. <매일노동뉴스>는 보고서를 미리 입수해 노사정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다.

민간보험회사가 산재업무 대행?

보험연구원이 이날 발표할 ‘산재보험시장의 독점구조 개선’ 보고서에는 두 가지 ‘개선방안’이 담겨있다. 우선, 민영보험회사가 산재보험 업무를 대행하는 것이다. 이 안에 따르면 정부와 보험사업자가 사업약정을 체결하고 정부는 사업비와 수수료를 지급한다. 보험회사는 ‘보험상품’을 팔아 보험료를 받고, 사고 발생 시 보험금을 심사해 지급하는 것이다. 보험회사가 보험기금도 운영하고 보험사기 예방·적발 업무를 수행한다. 현재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 하는 주요업무를 수수료를 받고 대행하겠다는 것이다. 민영보험회사가 보험사업을 대행할 경우 이미 구축된 보험사업 인프라를 활용해 △징수율 증가 △신속한 보험금 지급 △보험사기 방지를 통한 기업들의 보험료 부담을 경감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원의 논리다.

보험공급주체를 다원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업계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실상 두 번째 방안이다. 근로복지공단(공영)과 민간보험회사(민영)가 공동으로 산재보험 서비스를 공급하자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산재보험법상 정한 급부내용과 예정기초율로 ‘상품’을 구성하고 의무가입대상 사업주에게 ‘보험상품’을 직접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보험료 인하 또는 차별화된 서비스로 공영기관과 직접 경쟁하겠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임상혁 원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산재보험의 목적은 산재 노동자를 잘 치료해서 건강한 노동자로 복귀하게 하는 것인데 이런 내용이 모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예를 들면 삼성계열 보험회사에 계열사들이 가입하는 식으로 대형보험사들의 나눠먹기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어떤 근거로 시장 개방 요구하나

보험업계가 산재보험을 민영보험회사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보험연구원은 산재보험의 문제점으로 △보험재정 부담 심화 △공영독점체제의 비효율성 △보험사기 방지시스템 구축 미비 △보험료 징수율 및 운용수익률 저조 △산재보험기금의 부적합한 용도 △산재예방유인이 낮은 요율체계 등을 근거로 들었다.

근로복지공단은 보험연구원이 제시한 개방근거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우선 보험급여액 증가에 대해 공단은 “2005년부터 올해 7월까지 산재보험급여액은 전체 근로자의 임금인상률과 연금수급자 누증 등 자연증가율인 연평균 약 6%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공단조차 산재보험급여액이 임금인상률 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실제 연도별 보험급여는 2004년까지 15% 이상 증가하다 2005년 이후 5%대 이하로 떨어지고 있다. 올해는 1%대 증가율이 추정되는 상황이다.

효율성과 관련해서도 공단측은 보험료수입 대비 관리·운영비율이 민간보험사의 4분의 1수준이라며 반박했다. 공단 자체 분석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평균 보험료수입 대비 관리·운영비율이 산재보험은 4.3%인 반면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자동차보험 등 민간보험은 평균 17.9%였다.

연구원이 지적한 산재보험기금의 ‘부적합한 용도’로는 근로복지공단에 기금 출연,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산업재해예방기금에 출연, 재해노동자의 복지증진 사업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사업들이 ‘왜 부적합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보험업계의 논리는 결국 산재환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서 산재 승인의 문턱을 높여 보험재정을 안정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산업재해 문제를 상거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영화는 ‘사회연대적 보험’ 깨는 것

보험업계의 경쟁체제 도입 주장은 산재보험을 사회보장제도라기보다는 ‘상품’으로 인식한 것에서 비롯됐다. 공단은 “보험연구원은 근로자 보호라는 사회보장적 측면이나 사회연대성 원리의 작동이라는 사회보험으로서의 기능적 측면에서 산재보험의 본질적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임상혁 소장은 “산재보험은 산재사고가 많이 나는 사업장이 적게 나는 사업장을 도와주는 사회연대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민영화는 결국 이것을 깨자는 것”이라며 “민간보험회사는 사무직처럼 산재사고가 적은 사업장에 보험상품을 팔고, 나머지 광산이나 제조업처럼 고위험 사업장은 정부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업계에서 지적하는 산재보험의 문제점들을 과연 민영화로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김은기 국장은 “산재보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보험시장에 개방하라는 것은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 정권 바뀔 때마다 민영화 요구
산재보험을 민간보험회사에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보험업계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정부에 이런 제안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좀 더 노골적으로 이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3월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업무를 일원화하는 내용의 공청회를 열었다. 권익위원회는 “유사한 상해나 질병인데도 보험종류에 따라 진료비 차이가 최고 15배에 달한다”며 “보험종류에 따라 서로 상이한 진료수가체계와 여러 기관으로 흩어져 있는 진료비 심사업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산재보험은 근로복지공단, 자동차보험은 손해보험회사에서 각각 심사업무를 보고 있다. 권익위는 “보험에 따라 심사 주체와 기준이 달라 객관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불합리한 진료비 심사와 진료수가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개발원도 지난달 ‘산재보험 운영의 경쟁원리 도입(민영보험 참여)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산재제도 도입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범위 내의 재해보상기금 갹출·운용에 적용했던 보험기법은 변화된 산업 환경에 적합하고 효율적인 민영방식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민영보험사를 산재보험 ‘시장’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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