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월이면 최저임금 공방이 시작된다. 6월이 되면 노사 간 공방은 정점에 이르고, 같은 달 말에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되는 수순을 밟는다.
그런데 올해는 최저임금 공방이 일찍 시작된 감이 없지 않다. 지난해 김성조 한나라당 의원이 고령 노동자 최저임금 감액을 뼈대로 한 법 개정안을 이미 국회에 제출했고, 노동부도 법 개정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앞서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최저임금이 우리 경제수준에 비해 가파르게 올랐다”고 언급해 노동계의 반발을 샀다. 최저임금 수준을 둘러싼 노사 간 공방에 앞서 정치권과 정부가 대리전에 나선 양상이었다.

최저임금 2차 공방의 시위는 한국노총이 당겼다. 최근 한국노총은 내년도에 적용할 최저임금 요구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전체 노동자의 월평균 정액급여 추정액(193만원)의 50% 수준인 96만3천490원, 시급 4천610원”이 그것이다. 올해 최저임금이 시급 4천원인 것을 고려할 때 15.2%가 인상된 액수다. 이러한 요구안을 마련한 배경은 이렇다.

우선 임시·일용직 노동자의 실질임금 하락 폭이 지난해 두 자릿수(-12.9%)에 달한다는 점을 들었다. 또 상위 20%와 하위 20% 간 소득수준 격차가 5.17배이며, 전체 가구의 약 10.9%가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절대빈곤층’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2009년 4인 가구 최저생계비가 132만원인 것도 고려했다. 취약계층 노동자가 경제위기 직격타를 맞은 만큼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내수 경기 진작에도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게 한국노총의 설명이다.

경영계는 한국노총의 요구안이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되레 실업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경영계를 대표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최저임금 동결을 요구했다.

경영계의 이러한 반응은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현실을 고려할 때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8년 1월부터 적용됐던 법정 최저임금(3천770원) 수혜자는 39만명밖에 되지 않는다. 최저임금 영향률이 고작 2.4%에 불과하다. 또 지난해 8월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는 175명(10.8%)에 달한다. 지난 2001년 8월 59만명(4.4%), 2006년 8월 144만명(9.4%)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저임금 노동자 보호라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근로감독 행정 효과가 미비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경제위기를 틈타 ‘벼룩의 간을 내먹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민간기업을 선도해 최저임금 수준을 지켜야 할 정부기관들이 버젓이 어기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가 10% 예산절감 방침을 내리자 공공기관들은 청소용역 도급사업비를 대폭 줄였다. 방만한 예산운용 행태를 개혁하지 않고, 손쉬운 예산절감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철도공사와 대전 정부종합청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 기관은 예산 10% 절감지침에 부응해 청소 입찰계약금을 10~20% 줄였다. 그러자 용역업체들은 애꿎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의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깎았고, 해고하는 일마저 나타났다.

이렇듯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조차 못 받는 이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인상이 실업률을 끌어올린다고 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속담이 있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 아주 작은 것까지 탐을 내 빼앗는 행위를 말한다. 법정 최저임금보다 적게 주는 사업주들을 빗댄 속담이다. 이영희 노동부장관은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올랐다고 지적하기 전에 기업들의 법정 최저임금 준수를 독려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또 최저임금을 깎는 데 앞장서는 공공기관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더 이상 벼룩의 간을 내먹는 일을 방치해선 안 된다.

 
<매일노동뉴스 3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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