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이 위기라고 합니다. 그것이 자본의 위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노동의 위기에서 파생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올해는 경제위기 한파가 일자리를 끊임없이 위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매일노동뉴스>는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이 '현장'에 있다고 믿습니다. <편집자>


경기침체로 건설현장 여기저기서 ‘악’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유동성 위기니 구조조정이니 하며 건설사들이 어려워지면서 현장의 노동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최근 노조가입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 활동에 빨간불이 켜진 덤프·굴삭기·불도저 등 건설기계노동자들을 지난 12일 <매일노동뉴스>가 만났다.
오전 6시20분. 전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전주-광양 고속도로 6공구 현장으로 향하는 길. 남들은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에 간간이 ‘앞사바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앞사바리’는 앞바퀴가 4개인 트럭을 부르는 말이다. 앞바퀴가 4개인 트럭이 24톤, 25.5톤 등 다양해서 보통 ‘앞사바리’라고 통칭한다. 이른바 ‘탕 뛰기(왕복횟수만큼 운송료를 받는 것)’를 하는 앞사바리 노동자들이 러시아워를 피해 일찌감치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6시40분께 도착한 6공구 현장. 평평한 대로를 상상했는데 눈앞에 산이 있다. 산을 깎아 도로를 연결하는 구간이다. 15톤 트럭을 운전한 지 8년 됐다는 ‘현장의 막내’ 이성진(36)씨 차에 올랐다. 좌석이 운전석과 조수석뿐이어서 사진기자는 조수석에, 기자는 침대칸에 앉았다.
차를 타고 2분 정도 이동해 언덕으로 올라갔다. 높이 40미터는 돼 보이는 낭떠러지다. 흙을 싣기 위해 차를 최대한 앞으로 빼서 후진을 해야 하는데 침대칸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다.
“이 정도면 양호한 거예요. 한번은 아침에 일 나갔다가 그냥 다시 온 적도 있어요. 현장이 아찔해서 돈 조금 벌려다 죽겠더라고요.”
이씨가 ‘건설기계 운행일지’에 뭔가를 적는다.
“상차시간과 물량을 쓰는 종이입니다. 나중에 일했다는 확인서가 되죠.”
굴삭기가 대여섯 번 흙을 떠서 실어 주자 이씨가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들판으로 이동했다. 지금은 밭이지만 나중에 도로가 들어설 자리다.
굴삭기하면 흙을 푸는 작업만 떠올리지만 의외로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업체에서 측량기점을 잡아 주면 기울기를 맞춰 경사면을 깎아야 한다. 그래서 굴삭기노동자들은 스스로 ‘지구 조각가’라고 부른다.

황량한 벌판…화장실은 어디에?

아뿔싸. 그런데 현장에 화장실이 없다.
“처음에는 왜 휴지를 들고 적재함에 올라가나 했어요. 급하니까 어쩔 수 없더라고요. 적재함 뒤에 볼일을 봐야 흙하고 같이 내려가요.”
이동식 화장실을 놓아도 냄새가 지독해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먼지가 나면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살수차가 공사현장과 인근 도로를 다니며 연신 물을 뿌렸다.
흙을 한 번 싣고 붓는 데 20~25분이 걸린다. 한 시간 동안 세 번을 왕복한다.
이씨가 적재함을 들어올리고는 천천히 흙을 쏟아 부었다.
“문짝을 쾅 닫지 못하고 조심조심 닫아요. 소들이 놀란다고 민원이 들어오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현장 인근에 젖소 축사가 있었다.
덤프트럭이 쏟아 부은 흙은 불도저 기사인 김정옥(52)씨가 평평하게 정리했다. 김씨는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서 흙을 정리해야 한다.
불도저만 운전한 지 30년이 다 돼 간다는 김씨는 트럭 기사들과 마주칠 때마다 웃음으로 대했다. 그에겐 초·중·고·대학생 등 네 명의 자녀가 있다.
“80년에 일을 시작할 때는 좋았죠. 불도저 장비도 별로 없었으니까. 지금은 달라요. 부속품값은 계속 올라가는데 단가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정부가 최근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이미 자녀를 많이 낳은 가정에 대한 정책은 없다”며 “사교육비 때문에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10시간 일해

이성진씨처럼 같은 구간을 반복해 왕복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6명. 이 중 세 명의 차량에 동승했는데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10시간 동안 한번도 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제가 지금 작업하는 거리가 시간이 가장 잘 가는 것 같아요. 같은 자리에서 하루에 100번씩 왕복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의 말대로 현장에서 캔 돌을 바로 옆 골재장으로 옮기는 두 명의 덤프노동자들은 하루 종일 같은 곳에서 실었다 부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토목현장에서 노동시간을 줄이려면 굴삭기의 역할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굴삭기를 가리켜 ‘밥을 생산한다’고 말한다. 덤프에 흙을 공급해 준다는 의미다. 굴삭기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을 일하면 자연스럽게 덤프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멈추면 작업을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에는 김홍수(45)씨 차에 올랐다. 차량 문을 열자 김씨가 "커피 한잔 하라"고 권했다. 트럭에 웬 커피포트?
“새벽에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니까 일하다 보면 졸려요. 오전·오후 5시간씩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계속 운전하니까 피로가 쌓이죠. 스트레스도 풀 겸 졸릴 때 한 잔씩 마셔요.”
김씨는 1년 전부터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19년 동안 덤프를 운전하면서 하체가 부실해졌기 때문이다.
“일 끝나고 바로 집에 가서 자면 다음날 몸이 뻐근하고 피곤하더라고요. 운동을 하니까 잠이 깊이 들어 좋아요.”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하루살이’

하지만 김씨는 “내일 당장 어디로 일을 가야 할지 걱정하는 동료들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이날 6공구 현장에 투입된 15톤 트럭은 모두 8대. 이 가운데 4대만이 고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김씨는 그 중 한 명이니 운이 좋은 셈이다.
오후 3~4시가 되면 이들이 계약을 하고 있는 협력업체(전문건설업체)에서 내일은 몇 대의 차량이 필요한지 연락이 온다. 그나마 다음날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차를 놀려야 한다.
“일을 안 해도 차량 유지비는 하루 5만원씩 나간다고 봐야죠.”
15톤 트럭을 하루 10시간 동안 운전하면 기름값을 포함해 하루 운송료 33만원을 받는다. 언뜻 많아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김씨 주위엔 지난달 고작 이틀밖에 작업을 못한 동료도 있다. 이렇다 보니 ‘일요일에는 쉬고 싶다’는 얘기를 꺼내기 힘들다. 어차피 비 오고 일감이 없으면 한 달에 20일을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1~2월 동절기와 6~7월 장마철에는 아예 작업이 중단된다. 평상시에도 비가 많이 오면 안전사고 위험이 있어 땅이 마를 때까지 공사가 중단된다. 1년에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고작 6개월 정도다.
“사람들은 하루에 30만원 넘게 받는다고 하면 돈을 엄청 잘 버는 줄 알아요. 한 달 차량관리비가 100만원 정도 드는데 일은 들쭉날쭉하고…. 200만원을 벌더라도 고정적으로 월급 받는 게 훨씬 낫죠.”
정영일(42)씨는 “작년에는 기름값 때문에 일을 못했는데 요즘엔 일감이 없어 일을 못한다”며 “한 달에 20일만이라도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금으로 일당을 받는 목수노동자들이 부럽다고 했다.

첫째도, 둘째도 ‘어음만 없으면…’

특히 기계를 구입한 지 얼마 안 돼 매달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이후에나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어음을 받으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15톤 덤프노동자들은 운송료가 월 300만원 이상이면 어음으로, 굴삭기처럼 단가가 올라가는 기종의 경우 100% 어음으로 임대료를 받고 있다. 원수급자인 원청 건설사가 협력업체(하청)에 어음을 발급하다 보니 하청도 건설기계운전자들에게 어음을 줄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앞사바리’ 기사인 이성노(50)씨는 최근 일하던 회사가 부도나 4개월치 어음을 휴지 조각으로 날리고 말았다. 매달 230만원씩 할부금을 낸다는 그는 “경기가 어려워지니까 어음 발행이 더 늘어난 것 같다”며 “학생 자녀를 둔 집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굴삭기를 운전하는 김아무개(50)씨도 "어음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음은 도대체 왜 안 없어지나 모르겠습니다. 정부에서 그것만 고치면 장비 운전하는 사람들 생활 문제의 절반은 해결될 겁니다.”


<매일노동뉴스 3월16일>
 
"사장님요? 이런 비정규직도 없어요"
덤프·레미콘·굴삭기와 같은 건설기계를 운전하는 이른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에 비상이 걸렸다. 노동부가 올해 초 건설노조(위원장 백석근)에 건설기계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지 말라는 내용의 시정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장시간 노동과 불법다단계 하도급, 체불임금·산업재해 등 해결할 과제가 산적한 노조는 만사를 제쳐 두고 ‘노조 사수 투쟁’을 벌일 상황에 놓였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노동부의 ‘난데없는’ 시정명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노동자의 정의가 고용주가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 아닌가요. 회사에 고용돼 시키는 대로 하고 있으니까 당연히 노동자라고 생각하는데요.”
15톤 트럭운전자 이성진(36)씨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서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이들은 일정한 시각에 작업을 시작해 건설업체의 작업지시를 받아 일을 하고 있다. 일을 마치면 운송내역이 적힌 확인서를 현장 작업반장에게 보여 주고 사인을 받는다. 건설기계라는 장비를 이용해 일을 하고 운송료 또는 임대료라는 이름으로 임금을 받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다른 노동자들은 법에 의해 현금으로 임금을 받지만, 이들은 사업자등록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현금 대신 어음을 받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김홍수(45)씨는 “내일 일감이 있을까 없을까 노심초사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이야말로 비정규직 중 비정규직 아니냐”고 반문했다. 조현미 기자

 
【현장 분석】 '팍팍해지는'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생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건설노조 조합원을 상대로 실시한 임금·생활실태 조사결과를 지난 11일 발표했다. 고가의 차량을 구입해 융자와 할부금이 적지 않은 데다, 고정 수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단계하도급으로 임대료가 깎이고 그마저도 어음으로 지급되거나 체불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 잡는 ‘어음지급’ 관행=지난해 9월 덤프트럭노동자 홍아무개씨가 목을 매 자살을 기도했다. 경기도 연천군 군남홍수조절댐 건설현장에서 일했던 그는 총 2억원에 달하는 운송료를 몇 개월에 걸쳐 어음으로 받았다. 일을 시작한 지 70일이 지나서야 전문건설업체로부터 3개월 반짜리 어음을 받았다.
당장 현금이 필요했던 그는 동료들과 함께 사채업자에게 수수료를 떼고 현금으로 바꿨다. 이른바 ‘어음깡’을 했던 것. 그런데 전문건설업체가 부도가 나면서 사채업자에게 어음 대금을 물어 줘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전문건설업체들의 부도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건설기계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임금을 갚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운송료 절반 이상 어음 지급=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굴삭기 노동자의 61.1%가 임대료로 현금과 어음을 같이 받는다고 응답했다. 어음만 받는다는 응답도 25%에 달했다. 전체의 86.1%가 어떤 형태로든 어음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금을 받는 비율은 13.9%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어음 지급기한은 최하 60일, 최장 180일로 평균 100일이었다.
덤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금과 어음으로 운송료를 받는다는 응답이 절반 이상(54.6%)이었다. 현금으로 받는 비율은 35.8%, 어음으로만 받는 비율은 9.6%였다. 운송료를 월 마감 후 얼마 만에 받느냐는 물음에는 30~60일이 47.1%로 가장 많았고, 60일~89일은 33%였다. 90일 이상이라는 대답도 17.5%에 달했다. 95.2%는 운송료 체불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절반이 넘는 53.3%가 신용불량 경험을 갖고 있었다.


◇장시간 노동 줄어들 기미 없어=지난해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 파업의 핵심 요구사항은 표준임대차계약 체결과 하루 8시간 노동이었다. 하지만 건설현장의 하루 10시간 노동 관행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굴삭기 노동자들의 경우 하루 작업시간이 10시간이라는 응답이 68.3%, 11시간 9.8%, 12시간 4.9% 등 10시간 이상 일한다는 응답이 82.9%였다. 8시간은 4.9%에 불과했고 9시간도 12.2%였다. 작업을 위해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6시가 70%, 7시가 30%였다.
덤프 노동자들 역시 하루 10시간 작업한다는 응답이 59.6%에 달했고, 12시간 13.6%, 13시간 이상 6.2%였다. 8시간 작업한다는 대답은 10.7%에 불과했다.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대부분 오전 6시(45.6%)와 7시(35.3%)였고 5시도 10.6%나 됐다.
2006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건설운송노조(현 건설노조)가 실태조사를 벌였을 당시 9~12시간 작업한다는 응답이 79.3%, 13~16시간이 19.9%였고 8시간 이하는 0.4%였다. 장시간 노동이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조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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