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회사가 하청업체의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했다면 직접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 사업장에서 남발되고 있는 '사내도급'에 제동이 걸릴 지 주목된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지난 10일 현대미포조선의 사내하청업체인 용인기업 소속 신기철(47)씨 등 30명이 낸 종업원 지위확인 청구소송에서 "현대미포조선과 신씨 등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하청이 노무대행"=대법원은 현대미포조선이 용인기업 노동자의 채용·승진·징계에 실질 권한을 행사했고, 지휘감독권과 노동조건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을 판결의 근거로 들었다.

대법원은 “용인기업은 형식적인 도급계약에도 실질적으로는 업무수행의 독자성이나 사업경영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일개 사업부서로서 기능하거나 노무대행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판결했다.

또 "현대미포조선이 하청노동자들로부터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받고, 임금을 포함한 제반 근로조건을 정했다고 봐야 한다'며 "현대미포조선은 하청노동자들을 직접채용한 것과 같은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사용자성 인정 폭 넓혀=지난 78년 설립된 용인기업은 25년 동안 현대미포조선과의 도급계약을 통해 사내 기계수리를 맡아왔다. 현대미포조선이 선박건조사업으로 전환하면서 2003년 1월 폐업했다. 이후 노동자 30명은 "미포조선이 직접 노무관리를 해왔기 때문에 고용을 승계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앞서 울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원청과 하청 사이의 도급계약을 들어 원청회사를 사용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을 폭넓게 인정했다. 향후 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그동안 원청업체와 하청업체가 지배구조가 긴밀할 경우 직접고용이 성립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지난 2003년 인사이트코리아를 SK(주)의 위장계열 자회사로 판단해 사용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현재 대법원에는 △SK(주)와 울산공장 시설관리·경비업체 노동자 △SK와이번스와 차량운행·관리업체 노동자 △현대중공업과 사내하청노동자 △한국마사회와 경마진흥(주) 노동자 사이의 직접고용을 둘러싼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집단소송 움직임=대법원 판결이 제조업 사업장에서 남발되고 있는 '무늬만 도급업체'에 대한 제동으로 연결될 지 주목된다. 사내도급이란 생산공정의 일부를 맡은 하청업체가 도급을 준 회사의 공장에 노동자를 데려와 노동에 대한 지휘감독까지 하는 형태다. 조선·자동차·전자 등 제조업 사업장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원청에서 퇴사한 임원들이 도급업체를 맡는 경우가 상당수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바지사장'을 통해 원청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곳도 있다. 노조가 결성되면 도급계약 해지로 폐업과 창업을 반복하는 곳도 있다.

당장 제조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제조업에서 이뤄지는 사내하청 대부분은 현대미포조선과 거의 유사하다"며 "직접고용 관계를 인정받기 위한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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