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공운수연맹 제공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구조개편 방식 가운데 하나인 정부지주회사. 지금까지는 도로와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진 것 외에 어떤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이 방안을 적용받을 지는 불분명하다.

공공기관을 하나의 회사로 묶어 정부가 지분을 소유하고 경영을 민간에 위탁하는 이 방식은 민영화는 분명히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기업 민영화와 동시에 거론되는 만큼 구조조정에서 자유롭지 않고 민간 전문가들이 경영권을 쥔 만큼 사실상 민영화라는 주장도 있다.

단순한 공기업 효율화와 구조조정의 일환인지, 민영화 수순을 밟기 위한 과도기적 방안인지 정부 의도도 명확치 않다.

지난 1월28일 지식경제부가 펴낸 보고서는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영화 방식"이라면서 한국전력이나 한국가스공사처럼 민영화할 경우 독점 폐해가 우려되는공공기관에 싱가포르의 테마섹 모델을 적용하자고 주장했다. 민영화 가능 기업은 정부가 직접 팔면 되는데 굳이 테마섹이라는 우회로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김규옥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3월31일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해 "한국형 테마섹 모형은 싱가포르와는 달리 민영화 완료 이전에 지주회사가 공기업들을 관리하는 방안으로 과도기적 형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정부지주회사 '테마섹'을 본뜬 이 방안은 공기업이나 국민들에게 득이 될까 해가될까.

지난 21일부터 시작된 민주노총 주관 사회공공성포럼 두 번째 날인 22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두 번째 세션토론회 '공기업 지주회사, 공공부문 개혁인가 개악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의도에 대해 각기 다른 분석을 내 놓았다. 그러면서도 노조의 참가 등 지배구조 개선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김철씨는 발제를 통해 "싱가포르의 테마섹 논리를 충실하게 따르면 '공기업 민영화'는 없다'라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74년 테마섹을 설립한 뒤 항만청 등 7개기관을 민영화 계획에 포함시켰지만 시행은 안됐다. 이와 관련해 테마섹은 공기업 사유화를 100% 부정하는 발상에서 나왔다고 보는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다.

때문에 김철씨는 "과도기적 형태이더라도 테마섹 방식으로 어떻게 공기업을 사유화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이명박 정부는 테마섹의 겉포장만 빌려와 수익성과 효율성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른 상황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미흡한 수준인 공공성과 보편적 서비스 제공의 문제는 간과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는 민간에 경영을 위탁했으면서도 총리 친인척들이 회사 고위직을 장악한 싱가포르 테마섹을 예로 들면서 "국가지주회사가 도입된다고 해서 관료주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공공기관의 민주적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시경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도 정부지주회사와 공기업민영화가 직접적인 관계에 있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성 위원은 "정부지주회사를 통해 민영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일부 지분만 매각하겠다는 건지에 대한 판단보다는 국가의 강력하고 지배형태를 원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비스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성향은 국가의 강한 통제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 위원은 "민영화 여부에 대한 논쟁보다는 쇠고기 투쟁처럼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만들고, 시민과 노동자들이 공공기관 운영에 참가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공기업의 구조조정과 상품화를 위한 사전 단계로 이명박 정부가 정부지주회사를 추진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진보금융네트워크 소속의 이한진씨는 "국가지주회사는 기업을 분할하거나 분사, 통폐합하고 상품화하는데 아주 편리한 방식"이라며 "공기업들을 자본시장에 제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동북아 금융허브'를 이름만 바꾼 '동북아 금융중심지'를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국내외의 자본이 한국 자본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현재 상장된 기업으로는 자금을 모으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공기업을 민영화는 자본을 모을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씨는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개혁에 콘텐츠가 없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며 "공적 서비스 확대 내용은 전혀 없이 공기업을 이용한 비용조달에만 관심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일노동뉴스> 2008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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