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정말 인생을 걸었습니다. 파업 예정 일주일 전 가족들에게 '내가 없더라도 꿋꿋이 버텨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집을 떠났지요. 정말 전쟁시 출격하는 심정으로 조종사노조의 합법화 투쟁에 임했습니다."

지난달 31일 국내 최초의 비행기 파업을 예고하며 조종사노조의 합법화 투쟁을 벌였던 당시, 구속될 것을 각오하라고 가족에게 한마디 남길만큼 비장했던 심정을 뒤늦게 토로하는 전동준 대한항공 운항승무원노조 수석부위원장(53).

"그동안 운항 조종사들의 비행시간은 한계선에 올라 있었습니다. 외국 항공사의 경우 한달 평균 60시간에 머물렀던 반면 대한항공은 120~150시간에 이르렀지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피로가 누적되고, 업무의욕이 떨어지게 마련이죠. 하지만 사고라도 한번 터지면 조종사의 실수로 모든 문제를 감추려고 하고, 언론은 외국조종사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고 집중 비난하고 나서죠. 그때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조종사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나선 것은 개인적인 좌절감을 넘어 비행안전에 대한 절박함이 강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동안은 항공사와 조종사가 직접적인 채널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비행안전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함께 해법을 찾을 방법이 없었던 것.

"비행기 사고란 승객들 뿐만 아니라 조종사의 목숨도 걸린 문제입니다.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어느 조종사가 본인의 목숨이 위협받는 불안정한 비행을 원하겠습니까?"라고 전 부위원장은 이 짧은 한마디에 비행안전에 대한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

때문에 이제는 노동조합이 해야할 일이 산적하다. 현재 노조는 7월말에서 8월초 정도 단체교섭을 요구할 예정으로, '비행안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준비하고 있다고 전 부위원장은 전한다.

"비행안전의 우선적인 과제는 비행시간 조정입니다. 현재의 무리한 시간을 외국 수준으로 낮추고, 안전한 조종을 할 수 있도록 휴식시간을 갖춰야지요. 그러자면 조종사도 늘어나야 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도 강화시켜 조종사의 질을 높여야 할 겁니다."

한마디로 비행안전이란 큰 틀에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차근차근 현실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효율적 매지니먼트'안을 회사측에 제시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외국의 선전항공사의 단체협약과 국내 사정에 맞춰 열심히 준비 중이라고.

그리고 또 한가지 과제가 있다. 대한항공에서 조종사노조가 만들어지자 얼마전 아시아나항공에도 조종사노조가 결성됐다가 일단은 복수노조 금지에 해당돼 반려된 상태. 이 때문에 '산별노조'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전 부위원장은 "비행환경이란 관점에서 보면 공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먼저 노조를 만든 만큼 기본적을 틀을 갖춰놓고 기다리겠습니다."라고 그 필요성에 대해 인정했다.

97년 일찌감치 조종사협회를 결성해 노조를 준비해왔던 이성재 노조 위원장과는 달리 지난해 초반 이 위원장의 권유에 뒤늦게 노조운동에 합류하게 됐다는 전 부위원장. 그러나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노조의 필요성을 인정해왔던 전 부위원장은 많지 않은 50대 기장 중 왕성한 의욕으로 일을 해왔던 인물.

한편 전동준 수석부위원장은 공군 중령 출신으로 90년 대한항공에 입사해 11년째 비행기 조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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