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정기훈 기자

노동부에 도움을 요청하러온 미등록(불법체류)이주노동자가 사용자의 신고로 경찰에 강제연행 되는 사건이 올해 초에 이어 또다시 발생했지만 노동부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권리구제를 위해 노동부를 찾는 미등록이주노동자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선구제 후통보’ 지침이 어떠한 효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사업주 신고로 경찰 출동 = 29일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외노협)과 노동부 수원지청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인 아위(Ayhya)씨는 2000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경기도 화성에 소재한 한 합판제조회사에서 7년간 근무해오다 오는 10월 귀국을 위해 최근 퇴사하고 퇴직금(930만원) 지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측이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자 아위씨는 노동부에 진정했다.

이에 따라 수원지청은 당사자 아위씨와 사용자 서아무개씨를 모두 3차례에 걸쳐 소환요청했지만 서씨는 2차례에 걸쳐 거부하다가 3번째 소환일인 지난 23일 출두를 약속하고는 노동부에서 조사받는 아위씨를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관과 함께 수원지청에 나타났다.

수원지청측은 경찰관이 청사 밖으로 나가줄 것을 요청했지만 강제연행을 위해 청사 출입문에서 기다리는 경찰을 제지하지는 못했다. 이에 신변불안을 느낀 아위씨와 통역을 위해 함께 나온 인권단체 관계자는 조사 도중 노동부 건물을 빠져나가다가 노동부 직원에 의해 붙들려서 조사를 마치고 결국 경찰에 연행됐다. 아위씨는 현재 경찰에 의해 출입국사무소로 인계된 뒤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 중이다.

◇노동부 강제연행에 ‘속수무책’ = 노동부는 아위씨가 연행되는 과정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미등록이주노동자가 권리구제를 밟는 도중에는 강제연행 되는 일이 없도록 ‘선구제 후통보’ 지침이 존재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전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선구제 후통보’ 지침은 먼저 구제를 완료한 뒤 출입국사무소에 통보한다는 것이지만 이번 사건처럼 사건이 완료되지도 않았고 조사를 받는 도중이었음에도 사업주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을 때 ‘노동부 건물’에서 잡혀가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노협 등 인권단체는 수원지청측이 조사를 마친 뒤 출입국사무소로 ‘전화통보’를 한 뒤 연행됐다고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수원지청측은 “전화통보 한 바 없다”며 “다만 경찰관의 집무를 막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사건에서 사업주 서씨는 끝내 퇴직금 지급을 거부하고 법적 처벌을 받겠다고 함으로써 아위씨가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수원지청은 서씨에 대해 퇴직금 지급 거부와 근로계약 미체결, 임금대장 미작성 등의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이번주내 또는 다음주초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할 예정이다. 이런 경우 아위씨는 퇴직금 지급 민사소송을 통해서만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 있으나 언제 받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가 없다.

◇‘선구제 후통보’ 실효성 확보해야 = 이 같은 사건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2일 노동부 인천북부지청에서 체불임금 문제를 상담하던 몽골 이주노동자가 조사 도중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져 한바탕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경우도 출석 요구를 받은 사업주가 경찰에 신고해 조사하러 나온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도망가다가 연행된 사건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인천북부지청측은 ‘선구제 후통보’ 지침에 의해 강력히 이주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경찰 연행을 방치한 바 있는데 이번에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인권단체들이 ‘선구제 후통보’ 지침에 근거, 권리구제 절차가 진행 중임으로 아위씨의 보호해제를 요청했으나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는 보증금 예치를 요구하며 화성보호소로 아위씨를 이송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역시 노동부는 아위씨 보호해제를 위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선구제 후통보’ 지침은 관계부처인 노동부, 법무부, 경찰 등의 삼각관계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 보호를 위해 노동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노동부는 자기 권리를 또다시 행사하지 못함으로써 노동부를 찾은 이주노동자가 강제연행 되는 악순환을 막지 못했다. ‘선구제 후통보’ 지침의 실효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아지는 이유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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