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기훈 기자
 
 
씩씩하던 채성미 씨가 울먹였다. 갑자기 복받쳐 오른 ‘화’를 누르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7년6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오래 됐다고 자랑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계약직 교사라는 이유로 교장이 함부로 자를 수 있고 부당해고를 당하더라도 앞에서 얘기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퍼서 참을 수 없습니다.”

채씨는 한국에서 제일 부자들이 산다는 서울 강남구의 언주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보육교사 일을 했다. 아이들 40명을 가르쳤다. 대개 맞벌이에 사설학원에 보낼 돈도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었다. 언주초등학교가 채씨에게 해고하겠다는 언질을 준 것은 지난 3월. 채씨는 재건축 공사 전까지만 근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7년만에 처음 내놓은 계약서에는 50만원 임금 삭감과 노조가입이나 정치활동 금지, 학교의 근무지시에 근무시간 이후에도 언제나 따른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학교의 방침은 누구도 거스르지 못했다. 방과 후 교실에 아이를 보냈던 학부모들은 보육교실을 폐쇄하지 말아달라며 1천명의 서명을 받아 학교에 제출했지만 돌아온 말은 “돈 없으면 아이는 왜 낳느냐”는 막말이었다고 한다. 채씨도 결국 지난 1일 해고돼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다. 재건축을 시작한다던 학교의 주장과 달리 아직 공사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뒤죽박죽이다.

“딸한테 미안하죠. 같은 학교에 다니거든요. 엄마가 면박 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그렇고. 혹시 피해를 당할까봐 걱정도 되고. 근데 지금 내가 하지 않으면 나같은 피해자는 계속 생기고 딸 아이가 당할지도 모르잖아요.”

채씨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담센터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여성 노동자 3명이 농성에 함께 참여했다. 모두 공공부문에서 수년간 일했던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모두 일방적으로 비정규법 시행 전후로 해고를 당했다.

서울 송파구청 민원봉사과에서 5년이 넘게 전화안내를 했던 임정재 씨도 지난달 1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최근 가입한 공공서비스노조가 교섭을 시도하자 구청에서 제시한 안은 몇가지 기준을 어기면 언제나 해고할 수 있다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었다. 인사관리 표준안과 같았다.

12년 동안 서울 성신여고 행정실에서 일해온 정수운 씨 역시 같은 날 해고됐다. 정씨는 학교가 예고한 해고일이 다가오자 자살을 기도했다 천신만고 끝에 생명을 건졌다. 정씨는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학교로부터 문자로 해고를 통보받았다.

김은희 씨는 국립병원인 보라매서울대병원에서 23개월 동안 근무했다. 한 달만 더 근무하면 무기계약 전환대상자가 될 터였다. 지난 6월에는 7월1일부터 6개월 계약을 맺었지만 1주일도 안돼 담당부서장이 말을 바꿔 1개월 계약서 작성을 강요했다. 그역시 7월말 해고를 통보받았다.

뉴코아-이랜드 노동자들처럼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들 4명의 여성노동자들은 그동안 학교에서, 구청에서, 병원에서 따로따로 1인 시위를 벌여왔다. 인권위 점거농성을 택한 이유에 대해 이들은 “한 곳에 모여 우리 주장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들의 요구는 공공부문에서 먼저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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