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협상을 할 당시에 내 별명이 ‘시기상조’였습니다. 그 말을 입에 달고 다녔거든요. 이정식 전 한국노총 본부장은 ‘주오일’이었죠. 돌이켜보면, 협상을 어떻게 했나 싶습니다. 결국 합의도출에는 실패했지만 말입니다. 몇 년에 걸친 노동시간단축 협상을 하면서 내 수명이 단축되는 줄 알았습니다.”

김정태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본격화하던 지난 2000년, 그는 경총의 조사부장이었다. 당시 경영계는 외환위기 이후 제기되던 노동계의 노동시간단축 요구에 줄기차게 반대했다. 일자리 나누기와 삶의 질 향상도 좋지만 기업의 노동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총은 노사정 협상에 나섰다.

“정부 의지가 워낙 강했어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 아닙니까. 어차피 해야 할 협상이라면 노사정 합의를 통해서 하자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경영계도 실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을 했습니다.”

김 상무는 노사정위원회 협상이 막바지로 치닫던 2002년 4월과 7월, “합의가 될 줄 알았다”고 했다. 몇 가지 핵심 쟁점을 뺀 나머지 조항들은 의견조율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경총은 도장을 찍을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는 노동법 개정의 경우 논의과정이 길수록 합의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것을 실감했다”고도 했다.

그는 노사정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노-노’, ‘사-사’ 사이의 갈등이 그것이다. 노동계는 제조업과 비제조업, 경영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의견차이가 컸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남순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도장을 찍었다면, 아마 합의도출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쉬운 대목이죠. 2003년에 국회에서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재협상을 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노사정 합의에 실패한 법안이 짧은 시간에 타결되겠습니까. 2007년 7월 노사정위 논의가 끝나면서 합의가능성도 사라진 겁니다.”

그에게 주 40시간제를 단계별로 시행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지지 않았냐고 물었다. 당초 취지인 삶의 질 향상과 실제 노동시간단축 효과가 적지 않냐고 덧붙였다. 그러자 김 상무는 다시 8년 전 노사정 협상의 출발점에 섰다. “전면적으로 주 40시간제를 적용하면 인건비 부담 때문에 중소·영세기업들이 버티지를 못합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실노동시간을 줄여야 하고, 실노동시간을 줄이려면 교대제 개편과 인력충원과 같은 세부 보완책이 뒤따라야 하는 게 정상이다. 김 상무도 “기업의 자동화율을 높이고, 교대제 전환을 통한 신규채용이 필요하다”고 동의했지만, 역시 “기업의 부담이 걱정된다”고 한발 물러섰다.

주 40시간제가 7년에 걸쳐 단계별로 시행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노동시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질문에는 ‘대기업노조 양보론’으로 답했다. 이래저래 ‘죽을 맛’인 중소·영세 노동자를 위해 이제는 대기업노조가 뭔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대기업노조가 양보할 때가 됐습니다. 그게 힘들다면 원·하청 불공정 거래 개선에라도 적극 나서야죠. 대기업은 지불능력이 되지만, 영세기업들은 낮은 인건비로 기업을 유지하는 한계기업 아닙니까. 그게 참 아쉽습니다. 물론 노동시간단축 지원금 액수를 대폭 늘려 기업의 비용부담을 줄여줄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실제 노동시간단축 효과가 보다 커지지 않을까요.”
 
<매일노동뉴스> 2007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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