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폭력행위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 공판을 받았던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5일 최종 결과를 통보받았다. 결과는 1심 공판 결과와 동일한 징역 2년에 집행 유예 3년.

항소심 공판에서 판사는 “집회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혐의가 인정되는 공모공동정범이론에 일부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대법판례가 있기 때문에 혐의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허영구 부위원장 혐의가 적용된 사건은 비정규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지난해 12월1일 민주노총 집회다.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집회가 끝난 뒤 시위대는 국회 쪽으로 행진했고, 각목과 죽봉으로 무장한 일부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와 관련해 1심에서 서울중앙지법은 허영구 부위원장이 △민주노총 지도부로서 대열 맨 앞에서 집회를 적극 주도한 점 △일부 조합원들이 죽봉을 들고 있는 것을 목격한 점 △시위대와 경찰의 물리적 충돌로 경찰 부상을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이유로, “공모관계가 성립된다”며 “피고인들은 범행의 공모공동정범으로서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변호인 쪽은 항소 이유서에서 “집회에서 발생한 폭력행위와 그 결과가 사전에 계획돼 일사분란한 조직적 지휘에 따라 발생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가맹산하 조직마다 의견이 다른 여러개 현장 조직이 존재하는 민주노총 특성상, 일부 시위대가 진행한 강경 시위에 대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전부 책임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변호인 측은 “주최 단체 부위원장으로서 집회 결과나 상황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 인정과 재발방지 노력은 필요하지만 발생한 모든 결과에 대해 공모공동정범의 법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온 것.

공모공동정범은 2인 이상이 함께 범죄를 논의해, 함께 실행한 것을 말한다.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도 집회 현장에서 맨 앞에 있었고, 죽봉을 목격했고, 경찰 부상을 예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공모공동정범 이론이 적용된 것이다.

허영구 부위원장을 변호한 권두섭 변호사는 “공동정범의 구성요소를 불리하게 확장한 것으로, (법률이 범죄로서 규정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권영국 민변 변호사는 “연대투쟁 과정에서 구속된 대부분의 노조간부들에게 공모공동정범이론이 적용되고 있다”며 “그 폐해는 증거재판주의의 대원칙을 훼손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법엔 조직 수괴 처벌 규정 강해”
다수 학자들, 공모공동정범 이론 반대
공모공동정범 이론은 “2인 이상이 공모해 그 공모자 가운데 일부가 공모에 따라 범죄의 실행했을 때, 실행행위를 담당하지 아니한 공모자에게도 공동정범이 성립한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1993년과 2005년 등 다수의 대법원 판례를 보면 “공동 가공의 의사는 암묵리에 서로 의사가 상통해도 되는 것이고, 사전에 반드시 어떤 모의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또 “범죄 내용에 대해 포괄적으로 또는 개별적인 의사연락이나 인식이 있었다면 그들 전원에 대해 공모관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쉽게 말해 실제 만나 논의하거나 범죄를 실행에 옮기지 않아도 예견만 해도 공모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모공동정범 이론은 “조직범죄에서 실행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않고 배후에서 조종하는 사람을 실제 행동한 하수인보다 가볍게 처벌할 수 없다”는 일본 판례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형사법은 조직범죄나 집단범죄에 대해 배후의 우두머리를 실행범 이상으로 처벌하는 규정을 이미 두고 있다. 반면 일본은 형법에 이런 규정이 없어 형법상 입법보충으로 공모공동정범을 적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재상 이화여대 법학교수, 천진호 경북대 법대교수 등은 “공모공동정범을 인정할 필요성이 다르다”고 출판물과 논문 등에서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형범과 내란죄 및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 군형법 등에서 일정한 목적으로 구성한 단체의 지위에 따라 실행보다 무겁게 처벌하고 있어 공모공동정범이론을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내란, 외환, 사전의 예비 및 음모만을 처벌하고 있어 이론을 적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7월 6일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