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회사에 위임계약 형태로 고용된 '채권추심원'도 노동자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상급심에서도 이 같은 판결이 확정될 경우 20만 여명으로 추산되는 위임계약 형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유사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신동승 부장판사)는 S카드사의 채권추심 업무 도중 숨진 채아무개 씨의 어머니 정아무개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채권추심원도 산업재해보상법 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록 망인과 회사가 체결한 계약서 표제가 ‘위임계약서’이지만 근로자성을 판단할 때는 이와 관계없이 실질에 있어 노동자와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회사가 제공한 장소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회사에 의한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감독 하에서 일하고 있는 점 등을 볼 때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관계에 있는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회사와 채씨가 체결한 '위임계약서'에 채씨가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업무처리의 대가로 기본급이 아닌 수수료를 지급받고, 회사의 취업규칙과 복무인사규정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기재되어 있더라도 채씨의 업무에 대해 카드회사는 팀장을 둬서 교육과 지시를 하기 때문에 출근시간에 상당한 정도의 구속성이 있었고 업무수행을 제3자에게 위임하는 것이 불가능 한 점, 실적이 좋지 않으면 해촉사유가 된다는 점 등을 볼 때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채씨는 2005년 S카드회사와 위임계약 형식을 통해 채권추심원으로 근무하던 중 뇌출혈로 회사 화장실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이후 채씨의 어머니 정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으나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소송을 냈다.

사무금융연맹은 “현재 채권추심원 상당수가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 형태로 고용된 특수고용직으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기본급을 받고 4대 보험 적용도 받지 못하는 등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왔다”면서 “이번 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정부는 채권추심원의 노동기본권을 보호하는데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채권추심원, 전국적으로 30만명 추정
채권추심업이란 한마디로 ‘카드회사나 백화점 등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상거래 시 떼인 돈을 대신 받아 주는 일’을 말한다. 현행 채권추심업법에서는 ‘채권자의 위임을 받아 약정기일내 채무를 변제하지 아니한 자에 대한 재산조사, 변제의 촉구 또는 채권자를 대신해 채무자로부터 변제금을 수령하는 등의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채권추심업은 크게 성장하는 추세이다. 특히 1997년 채권추심회사 설립이 허용되고 이어 1999년에는 설립요건이 크게 완화됨에 따라 신용정보회사를 중심으로 채권추심원도 대폭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표한 ‘신용정보회사 현황과 발전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신용정보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2001년 1만1천여명에서 2005년 2만2천여명으로 2배 증가했으며, 이들 가운데 80%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또한 이 보고서는 “채권추심인력의 70% 이상이 위임계약을 통해 고용되어 있어 인력구조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라며 “위임계약인력을 정규직 또는 일반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등 고용구조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히고 있다.
 

사무금융연맹은 신용정보회사뿐 아니라 카드회사 등 개별 금융기관마다 채권추심원을 따로 고용하고 있어 전국적으로 30만 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무금융연맹은 "이들 대부분이 위임계약 형태로 기본급보다 성과급 비중이 대단히 높아, 최근 인기드라마 '쩐의전쟁'에서 보여지는 강제추심이나 위법추심행위를 부추기고 있다"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고용형태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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