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화한다. 학교, 건강, 자연, 심지어 문화에 이르기까지 수요·공급의 원칙이 적용된다. 인간의 삶을 상품화하는 미국식 시장경제의 확산이 자유무역이나 세계화란 말로 포장되고 있다.″

이그나시오 라모네(Ignacio Ramon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이 7일 미국 주도의 문화적 식민지화에 대해 쓴소리를 던졌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초청으로 방한한 라모네 발행인은 파리7대학 교수를 겸직하고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언론인이다. 그는 이날 오후 재단 문화센터에서 한국프랑스정치학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코리아, 재단이 공동주최한 원탁회의(′세계화와 문화 다양성′)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시장과 국가, 민간과 공공, 개인과 사회의 대립구도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모네 발행인은 현재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담에 대한 반대시위를 예로 들며, ″그들의 시위는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문화적 다양성을 수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군사적 식민지화에 실패한 미국이 최근 문화적 식민지화, 정신의 식민지화를 위해 전지구적으로 대중언론과 대중문화매체를 장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거부하고 있는 이유는 문화와 관련한 각종 개방 요구 때문이다. 남미국가들은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모델로 삼아 문화에 대한 커다란 희생을 요구하는 미국과의 FTA를 반대하고 있다.″

라모네 발행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500여개에 불과했던 텔레비전(TV) 제작사들이 최근 1만700여개으로 불어났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TV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 하루에 5시간30분 이상 자국 프로그램을 방영토록 했기 때문이다. 독립 제작사가 늘어나면서 작가, 배우, 프로듀서 등 각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음은 물론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일정 비율 이상 자국 노래를 틀도록 했다. 과거 0%에 머물렀던 자국 노래 방송률이 지금은 50%를 웃돌고 있다. 이에 대해 라모네 발행인은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등에 급속히 전파되고 있는데, 앞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자국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이런 정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문화의 상업화가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라모네 발행인은 ″대다수 국가에서 전국에서 팔린 극장표의 85% 이상이 미국영화를 보기 위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한 강력한 시장의 힘이 영화, 출판, 음악, 미디어, 정보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획일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라모네 발행인은 ″유네스코(UNESCO)가 지난 2005년 미국의 개입과 위협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문화다양성 협약)을 채택한 이유는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 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가 ′무역 및 서비스에 대한 일반협정′을 통해 유네스코를 제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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