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일하는 노동자 5명 중 3명은 현재 ‘노동강도가 너무 세다’고 느끼고 있으며, 과중한 업무량에 인력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4일 한국노총이 주최하고 금융노조가 주관한 노동시간 점검을 위한 토론회에서 김재현 금융노조 정책본부장은 이같이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4월 금융노조가 산하 11개 지부 조합원 1천494명(회수 기준)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은행 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한 뒤, “조사대상의 68.8%가 노동강도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으며, 92%는 향후 노동강도가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인력충원 아니면 영업시간 단축=은행 노동자들은 노동강도가 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향후에 더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노동강도가 심한 이유로는 주로 업무량 과다(36.3%)와 인력부족(34.1%)을 꼽았다. 업무량과 인력문제를 묻는 질문에는 업무량은 매우 많고(73.1%), 직원 수는 너무 적다(64.4%)는 답변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인력충원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은행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누그러뜨리긴 힘들다는 얘기다.

은행 영업시간 단축(오후 4시30분→3시30분)에 대해서는 퇴근시간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된다(45.9%)는 의견과 가정생활에 도움이 된다(54.3%)는 지적이 많았다.

◇수당 제대로 못받아=은행 노동자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평균 11시간53분, 시중은행 노동자들은 하루에 12.4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 본점(11시간54분)과 지점(11시간53분)의 노동시간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주당 평균 연장노동시간(5∼10시간, 37%)과 휴일근무(66.4%)의 비중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예컨데, 연장근로수당이나 휴일근로수당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26.3%에 달했다. 47.6%는 30% 정도의 수당만을 받았다. 이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은행노동자(40.2%)들은 “직장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보는 직장문화 때문”이라고 답했다.

◇찬반 엇갈리는 비정규직 연대=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과 긍정적인 시각이 엇갈리고 있었다. 최근 우리은행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비정규직 분리직군제에 대해서는 49.5%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라면 별도의 직군과 임금제도를 달리해서라도 노조가 수용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보였다. 노동계급의 연대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업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71.7%)거나, “정규직이 더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80.7%)라는 답변이 적지 않았다. 또한 24.1%만이 비정규직 임금인상을 위해 정규직의 일시적인 임금 반납이나 노동조건 정체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응답했다.

◇산별중앙교섭 정년연장 요구=은행 노동자들은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정년연장을 중요한 요구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안건에 대한 의견이 골고루 나타났지만,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고, 임금피크제 도입시 61세로 연장”(19.5%)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이밖에 △과다경쟁 방지 및 각종 영업활성화를 위한 제도 시행시 노조와 합의(18.7%) △과도한 성과문화 방지 대책 마련(16.6%) △사내근로복지기금 강제출연을 통한 복지개선 요구(8.8%)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파견노동자 사용시 노조와 합의(8.7%) 등의 요구를 택했다. 김재현 정책본부장은 “실태조사 결과 은행노동자들에게 노동강도와 장시간노동, 마케팅 등 일상업무와 조직운영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장시간 노동, 임금체계 개편 등 제도개선으로 해결해야”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법정노동시간을 주 44시간에서 주 40시간으로 줄였다. 하지만 법안은 중소·영세기업의 비용상승을 이유로 무려 7년에 걸친 단계별 시행으로 귀결됐다. 2004년 7월1일 1천명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주 40시간제가 도입됐지만, 20명 미만 사업장은 대통령령에 따라 2011년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올해 7월1일이 되더라도 50명 이상 사업장만 법적용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정노동시간단축에 따른 실노동시간 단축효과가 그리 크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4일 토론회에서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했던 89∼91년에는 100시간 이상의 실노동시간감축효과가 나타났는데, 40시간으로 단축한 2004년부터는 감소추세만 유지될 뿐 빨라지는 모습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서도 우리나라는 2천354시간(2005년)으로 가장 많은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상태를 악화시킨다. 또한 불량률이 상승하고, 산업재해가 증가하는 등 한계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노동시간을 단축한 집단의 노동시간 감소가 빨라지고, 단축하지 않은 집단의 노동시간 감소가 느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시간단축을 한 사업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실노동시간 감소속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김 연구위원은 “이런 상황에서 근로기준법마저 제대로 준수되지 않는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간 격차는 더욱 커질 위험에 봉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법정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장시간 노동 완화로 이끌기 위해서는 정부의 감독강화와 함께 모든 사업주가 근로기준법을 지킬 유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조건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장시간 노동을 줄이기 위해서는 작업방식의 변화, 초과노동과 관련한 임금체계 개편, 신규고용에 따른 노동비용 증가요소의 완화, 휴가제도와 수당과의 연계 폐지 등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며 “무엇보다 노사 간 협조와 양보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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