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에너지(전력)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발전분할 이후 한국의 전력산업’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해 그 결과를 내 놓았다. 전국교수공공부문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들 전문가들은 지난 99년부터 추진돼온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안정적인 전기 공급과 전기요금 인상 등 공공성 후퇴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지난 2004년 노사정위원회 공공특위에서 배전분할 추진 중단을 권고한 뒤 제동이 걸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부는 꾸준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2002년 4월에는 남동발전을 우선 매각하기로 했다가 입찰에 참여했던 4개 컨소시엄이 입찰을 포기하면서 무산되기도 했다. <매일노동뉴스>가 ‘발전분할 이후 한국의 전력산업’ 출판에 앞서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급격한 구조개편 전력산업 안정 해쳐

이강국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경제학)는 ‘전 세계적 전력산업의 구조재편: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원고를 통해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개편 내용을 비교했다. 80년대 이후 세계 각국은 오랫동안 독점적 공기업 형태로 운영돼 오던 전력산업을 민영화하고 규제완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민영화와 규제완화는 산업을 분할하고 시장을 새롭게 개설하면서 경쟁확대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그가 이들 구조개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급진적인 재편” 경우 모두 시장실패를 겪었다는 것이다. 여러 지역에서 전기료 급등과 대규모 정전사태 등을 겪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산업을 분할하는 구조재편에 관해 회의가 일고 전력산업의 통합적 관리 노력이 강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측면으로 경쟁 확대는 과점화를 진전시키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구조재편 과정에서 분할됐던 산업들 사이의 재통합과 국경을 넘어서는 전력회사들 사이의 인수합병(M&A)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그는 구조개편을 급진적으로 추진했던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살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발전, 송전, 배전 등 전력산업의 수직적 분할과 민영화를 포함하는 급진적인 구조재편을 했던 나라는 영국과 미국의 캘리포니아, 그리고 호주와 캐나다 등이었다. 주로 영미권 국가들이다. 이들 나라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은 (재편을 통해) 경쟁 촉진을 기대했지만 한계를 드러냈고 미국 캘리포니아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 여러 지역에서 촉진 시장 실패, 공공성과 안정적 전력공급 침해 등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와 함께 전력산업 각 부문간 유기적인 연계와 범위의 경제가 파괴돼 전력산업의 안정적인 운영도 약화됐다.”

미국 펜실베니아 전력시장(PJM)과 북유럽의 노르드풀은 시장개설과 송전망 개방으로 경쟁을 확대하는 방식이었다며 중간 방식이라고 불렀다. 그는 “산업을 분할하는 급진적인 방식에 비해 덜했지만 여전히 송배전망의 관리나 전력공급 안정이라는 면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봤다.

프랑스, 일본 등은 구조개편에 소극적인 나라로 분류됐다. 그는 이들 나라를 “범위의 경제를 추구하며 통합적이고 안정적으로 전력산업을 관리하며 보다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 경쟁을 도입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 구조개편을 했던 이들 나라에서 오히려 부작용이 적게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전력산업의 효과적인 구조재편을 위해서는 단순히 산업의 분할과 경쟁의 도입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각국의 경험이 구조재편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경쟁 확대와 함께 설비의 유지보수, 관리 그리고 발전설비에 대한 투자에 적극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발전분할 이후 효율성 증대?…“글쎄”

박하순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장은 ‘한전과 자회사의 경영구조 변화’에서 발전회사 분할로 인한 효과가 거의 없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분할은 경쟁을 촉진시키고 이 경쟁이 생산력 증대를 이룰 것”이라고 주장했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그는 “분할 초기 일부 원가하락이 있었지만 경쟁체제 구축으로 인한 효율성 증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발전회사들 사이에 경영성과의 우열이 있었지만 그것은 경쟁체제 구축에 의한 발전사들의 내부적인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분할 초기나 이후 과정에서 개별 기업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조건의 차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오히려 “분할 이후 생산성 증대가 분할 이전에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각 회사의 원가를 분석하고 매출액과 이익률을 분석했다. 그의 결론은 이랬다. “분할 이후 원가절감이 이뤄진 것은 사실이다. 절감의 대부분은 발전사 내부의 노력 덕이라기보다 수요증가에 부응해 생산과 매출이 증대한 결과다.” 이용률이 증대하고 이에 따라 다른 비용이 하락했다는 것인데 먼저 투자규모 조정은 감가상각비를 하락시키고 이자비용을 줄였다고 봤다. 또 신규투자로 새 발전소를 세웠고 곧 열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지만 이 또한 사회적 생산력 증대로 보는 게 맞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정부가 지난 2001년과 2002년 분할의 효과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던 것 역시 매출증가와 연료비 하락으로 인해 원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매출증가와 연료비 하락 덕으로 원가가 떨어졌고 이는 영업이익을 높였다는 것이다. 매출액 증가와 연료비 하락은 모두 발전사 분할과 경쟁체제와는 무관하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2004년과 2005년에는 영업이익이 감소했는데 이 때는 원가가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분할 초기에 kWh 당 실질 수선유지비가 감소했는데 이것이 전력생산의 안정성을 위협할 사안인지 아닌지는 더 두고 봐야 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그는 “발전소 분할은 이밖에 연료도입에서의 구매협상력 감소, 고위직급 증가, 5-4 직급 증가, 거래비용 증대라는 비효율을 낳았다”며 “노동자의 파업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전사모를 가동하는 등 작업현장의 민주주의를 훼손했다”고 평가했다.

매각 계획 철회해야
 
김윤자 한신대 교수(국제경제학)은 ‘배전분할 중단 이후 한전의 지배구조’ 원고에서 “발전부문 분할이 한전의 경영 불안정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전회사와 한전간의 재무적 불균형이 커지고 연료구매와 해외자금 차입에도 곤란을 겪고 있다”며 “계통의 운영과 소유를 분리하면서 오는 문제점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발전부문 자회사의 민영화 방침에 대해서도 비판의 칼날을 세웠다. 김교수는 “현실적으로 매우 부진한 진척도를 보이면서도 매각방침은 여전히 유효하다”며 “관련 당사자들이 발전 분할 뒤 5년여 동안 전형적인 정책불안정 속에서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런 상황이라면 발전회사의 노동자들은 정부와 경영진에 대한 신뢰를 갖기 어려울 것”이라며 “작업능률이나 사기가 저하되고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갈등을 풀기위해 노력하느라 경영에 전념하기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배전부문 분할 중단 뒤 도입되고 있는 독립사업부제 역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독립사업부제가 자칫 사업부 간 이기주의 때문에 목표를 세우더라도 전사적으로 함께하는 동인이 줄어 결국 시너지를 약화시킬 것”이라며 “그도바 공익성이 약화될 것이 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서울, 부산지역과 같은 흑자 사업부는 예산운용이 방만해져서 비효율을 초래하는 반면 전남, 충남 등 적자지역은 적자절감을 위하여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그러므로, 한전과 같은 비용구조에서 사업부 간 기피선언권을 갖거나 독립채산제를 채택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사업부제를 엄격히 적용하는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므로 이러한 전제조건을 수용하면서 내부혁신의 일환으로 독립사업부제를 검토하되 중간평가를 통해 재점검하도록 하도록 제안하였다.

그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 발전을 위해 사회적 합의기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전과 원자력발전부문 자회사의 지배구조 투명화, 환경 및 지역단체의 공익적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전의 지배구조는 대주주인 정부 주무부서의 일방적 지시경영에서 사회적 의견수렴에 따른 국민적 책임기업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전의 수익이 국내외 주주에게 과도한 배당금으로 처분되기보다 친환경적 공익적 기금으로 재투자될 수 있도록 배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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