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상 타결안에 대해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정부조차 피해를 예정하고 있는 농업, 제약분야 이외에도 문화산업과 금융산업에서 심각한 외국 종속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정부에서 수혜분야로 강조하고 있는 자동차와 섬유산업의 장기적 전망도 밝지 않다는 분석이다.

4일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 주최로 열린 타결안에 대한 토론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이번 타결안을 미국에 밀린 타결로 규정했다.

범국본 주최로 이날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한미FTA 타결안 긴급평가토론회’에는 금융, 농업, 자동차, 섬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가했다.


◇위생검역 완화로 광우병에 직접 노출=뼈 있는 쇠고기의 수입을 골자로 하는 위생검역(SPS) 상설위원회는 사실상 국민건강주권의 포기라는 비난이 나왔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은 쇠고기 위생검역 분과 협상 평가에 대해 "미국측이 요구한 유전자 변형 생물체(LMO)에 대한 수입규제 완화와 섬유분야 관세율 인하 사이에 부적절한 빅딜이 이뤄졌다"며 “협상 타결을 구걸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식품안전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박 국장은 "미국은 전체 도축소 0.1%만을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어 99.9%의 쇠고기는 광우병 유무를 확인할 수 없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우리 국민들은 광우병 위험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됐다"고 비판했다.


◇문화다양성 파괴=문화산업분야 개방으로 인한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타결안에서 △OCN, 투니버스 등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에 대한 국내 법인을 통한 외국인 지분 100% 허용 △영화와 애니메이션 편성쿼터 5% △특정국가 프로그램의 편성비율 상한선의 60%에서 80% 확대 등이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양문석 범국본 시청각미디어 공대위 정책위원장은 “특정 국가의 프로그램 특히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하는 미국 프로그램이 안방을 독식할 수 있다”며 “국가의 다양성과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무력화시켰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스크린쿼터 축소(146일→73일)와 방송쿼터 축소(영화 25%→20%, 애니메이션 35%→30%) 등으로 인한 한국영화 산업의 불투명한 미래를 전망했다.

이밖에 통신분야에서 경영권 확보 목적이 아닌 외국인의 단순투자를 공익성 심사를 전제로 49%를 초과할 수 있도록 합의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공의 이익이라는 모호한 잣대는 언제든지 미국의 손을 들어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은행이어 증권, 보험도 위험=IMF 외환관리체제 이후 개방화가 시작된 금융분야도 한미FTA 타결은 ‘메가톤급’ 후폭풍이 예상됐다. 자본시장통합법과 맞물릴 경우 1차적으로 증권, 보험 등 제2의 금융권에 대한 미 금융자본의 급속한 유입을 초래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이한진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정책실장은 “우리 정부는 미국 금융자본의 요구를 수용한 자본시장통합법 제정과 보험업법 개정 등을 자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이번 협상에서는 쟁점화되지 못했지만, 그 파급력은 어느 분야보다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에서 성과로 제시하고 있는 단기 세이프가드에 대한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 단기 세이프가드란 외환부족과 같은 금융유동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외 투자자의 자금이동을 중지시키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IMF 외환관리체제 이후 세이프가드 제도를 도입됐다.

이 정책실장은 "주권국가의 정당한 제도인 단기 세이프가드가 조건부로 인정됐다“며 ”세이프가드 발동과정에서 이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가 수혜라고요?"=반면 이번 협상의 최대의 수혜를 입었다는 자동차 분야에서도 예상과는 달리 미국 수출이 크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산차에 대한 2.5% 관세인하로 인한 미국내 판매가격의 인하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국내 완성차들의 현지화 전략으로 인해 관세인하로 인한 수출증가 효과는 사실상 없다는 설명이다.

박근태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25%의 고관세가 없어지는 픽업트럭의 경우 국내 완성차회사에서는 경쟁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며 미국 자동차의 국내 판매 증가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했다.

박 부위원장은 "미국산 자동차의 판매량이 증가하면 우리나라 자동차 완성공장에서는 판매량 축소로 연결, 공장 가동중단과 인력 구조조정으로 이어진다"며 "FTA 체결은 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고용 불안을 야기한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힘들어=정부에서 성과로 제시하는 또 한 분야인 섬유산업에서도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개성공단에 대한 원산지 인정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의 전제조건이 한반도 비핵화와 국제노동기준 준수”라며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 이 교수는 “오히려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문제로 인해 한국이 미국의 대북정책 파트너로 종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또 관세율 관세율 인하로 인한 가격경쟁력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한국이 주로 미국에 수출하는 의류는 중국과 남미 등 세계 시장가격의 1.8배에 해당한다. 섬유부문에서 평균관세율 10%가 5년 이내에 인하된다고 해도 세계 시장가격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백일 울산대 교수는 “관세율 인하가 가격경쟁률에 부분적으로 도움이 되겠지만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소조항’ 투자자-정부제소제도=또 투자자-정부제소제도는 이번 협상 타결안의 독소조항으로 지적됐다. 투자자-정부제소제도란 한미FTA협정이 발효된 이후 개인이나 민간기업이 협정 상대국 정부와 입법, 사법기관을 상대로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는 제도다.

이찬진 민주화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내용적으로 미국 투자자를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미국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보호하는 것”이라며 “절차적으로는 미국 법이 정한 것보다 훨씬 유리하게 중재절차를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미국 투자자는 특별계급으로, 우리 국민은 2등 국민으로 전락시키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또 한미FTA가 내용면이나 절차상에서 모두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므로 개헌을 위한 헌법상 절차에 따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업, 너무 내줬다=이번 협상 체결로 많은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분야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내줬다는 입장이다.

최재환 전국농민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쌀을 제외하면 얻어낸 품목은 하나도 없다"며 "양허제외를 시켜야 할 민간품목을 관세철폐의 대상으로 내줬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세이프가드와 국영무역 운영계획 등도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남희섭 변리사는 지적재산권분야는 통신, 전자상거래 분야와 함께 디지털 환경에서 미국 기업의 세계 정보시장 지배를 위한 전략적 목표였다며

또 의약분야 협상에 대해서는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이 "한미FTA는 의약품, 위생검역조치 포기, 민간의료보험의 허가제 전환 등 공기업의 상업적 운영원칙 수용을 통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생활권 포기 등으로 국민 건강의 피해는 커진다"고 꼬집었다.
 
 
<매일노동뉴스> 2007년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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