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금융노조 안팎에선 은행 노동자의 ‘돌연사’에 관심이 집중됐다. 언론에선 은행 노동자의 고임금을 연일 여론의 도마에 올랐지만 이러한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은행권에선 각종 암으로 인한 노동자의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회식자리에서 쓰러져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례들까지 금융노조에 속속 보고됐다. 그래서 “임금보다는 ‘삶의 질 확보’ 차원에서 근무시간 정상화, 퇴근시간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빗발쳤다.
은행원 매일 2~3시간 추가근로
금융노조가 지난 2005년 4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은행원들은 부가노동과 보험 관련 연수 교육 등으로 매일 2~3시간의 추가노동을 하고 있다. 오후 7시 이후에 퇴근하는 은행원이 90.7%에 달하고 있으며, 오후 9시 이후 퇴근자도 28.7%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급기야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는 2005년 ‘노동조건개선투쟁위원회’를 출범시켜 초과노동 저지에 나선다. 기업은행지부 우리은행지부 등에서도 일주일에 하루정도 노동자의 정상퇴근을 독려하기 위해 노조가 직접 나서고 있다. 동시에 ‘불필요한 일 없애기’ ‘업무프로세스 개선’ ‘부서장 평가 항목에 퇴근시간 준수여부 포함’ ‘노조 소식지에 휴일 출근부서 공표’ 등 노조에서는 다각적인 압박 수단을 구사했다. 그러나 은행 노동자에게 과도하게 할당되고 있는 각종 목표는 근무시간 정상화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나온 제안이 ‘영업시간 단축’이다. 현행 오전 9시30분~오후 4시30분인 영업시간을 앞당겨 근무시간을 정상화하자는 것이다. 금융노조 산하 한 지부 관계자는 “금융노조가 주장하는 영업시간 단축은 노동자들이 근무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 아니다”며 “은행노동자의 업무가 영업시간 이후 행해지는 마케팅, 고객관리 등의 업무로 급속하게 전환되고 있는 사정을 반영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자금융이 창구업무 대체 추세
이 관계자의 설명은 영업시간 이후에 진행되는 업무가 많기 때문에, 영업시간을 앞당겨 집중적으로 업무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자금융이 발전하면서 고객과의 접점이 기존 창구텔러를 중심으로 한 대면접촉에서, CD기(현금자동지급기)와 ATM기(자동입출금기)와 같은 무인자동화기기를 비롯해 텔레뱅킹, 인터넷뱅킹으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도 영업시간 단축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실제 2004년 한국은행이 조사한 ‘금융정보화 추진현황’에 따르면, 장표방식(어음 수표, 지로를 통한 일반계좌이체) 결제 규모가 2003년에 비해 건수 기준으로는 10.7%, 금액기준으로는 29.4% 감소한 반면 전자방식 결제규모(전자방식 자금이체 및 각종카드 이용)는 2003년 대비 건수는 5.4%, 금액은 1.2% 증가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을 통한 소액지급결제 중 전자방식 지급결제금액의 비중은 47.8%, 건수 기준으로는 73.4%에 달하고 있다는 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금융노조 산하 모 지부의 한 관계자는 “은행에서 처리되는 업무 중 73% 이상이 은행직원을 매개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자금융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인터넷뱅킹의 급속한 증가도 영업시간 단축의 논리적 근거로 지적되고 있다. 창구를 직접 방문하는 고객수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2005년 9월 현재 인터넷뱅킹 등록고객 수는 2천500만명을 넘어섰다.
금융서비스 전달채널 변화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3분기 중 인터넷뱅킹을 통한 조회, 자금이체, 대출서비스 이용건수는 1천127만건 수준에 이르고 있다. 반면 창구텔러 비중은 급속히 줄고 있다. 특히 창구텔러, CD/ATM, 텔레뱅킹, 인터넷뱅킹 등 4대 금융서비스 전달채널 중 인터넷 뱅킹을 통한 업무처리비중(30.9%)이 창구텔러 비중(29.8%)을 넘어섰다.
이에 대해 금융노조 산하 한 지부위원장은 “입출금 업무를 담당하는 창구는 장기적으로 자동화기기로 대체되면서 없어질 것이다”며 “고객이 은행창구를 찾기 보다는, 전자금융을 이용하고 은행에서는 고객들을 밀착관리 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은행에 나오지 않더라도 은행 업무가 가능한 방향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마케팅 추세는 영업시간 이후 행해지는 비대면 채널 위주이기 때문에 영업시간 단축이 필요하며, 이는 은행산업 발전 추세와도 부합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단, 이 관계자는 “영업시간 단축으로 인한 비용절감을 고객들에게 환원할 필요가 있으며, 고객 불편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내는 것이 영업시간 단축의 성패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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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2007년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