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협상까지 마무리한 한미FTA 협상 노동부문에는 기업의 노동법 위반에 대해 노조와 시민사회단체가 양국 정부에 문제 해결을 요구할 수 있도록 미국이 제안한 ‘퍼블릭 커뮤니케이션(공공의사소통제도)’ 의제가 있다. 하지만, 한미 양국 정부 합의에 따라 구체적인 협상 내용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이 노동챕터가 한국 노사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돼 왔다.

노동법 위반에 대해 양국 정부가 제대로 집행하지 않을 경우 1년에 1,500만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협상 내용에 대해 중소기업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 반면, 외자기업이 불법파업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정부는 2차 협상이 열렸던 지난 11일 김종훈 한국협상단 수석대표의 언론 브리핑을 통해 노동챕터 부분을 간략하게 설명한 바 있다. 김 수석대표는 “한미 양국의 노동법과 환경법 집행이 실패했을 때 NGO나 일반 국민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당국이 그것을 받고 처리한 결과를 공표하는 ‘공공의사소통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공이 노동과 환경의 법률집행 감시자가 돼 법집행의 강제성을 높이는 하나의 장치라고 보여질 수 있다”며 “정책적으로 환경과 노동기준의 엄격한 집행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면 예기치 않은 부담이 되느냐 검토해야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공공의견 출제도와 분쟁해결 절차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최근 ‘한미FTA 노동장(노동챕터) 분쟁해결 절차’에 대한 정책보고서를 내 “국제노동기준의 보장을 위한 방안으로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될 소지는 없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실효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민주노총은 정확한 내용 파악을 위해 지난 5월 노동부가 국회 등에 보고한 내용과 미국의 제안으로 다른 나라와 맺은 자유무역협정 내용을 분석했다.

노동부 보고에 따르면,노동챕터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자 권리’를 보장하는 게 주 내용이다. 노동챕터가 효력을 미치는 범위는 △결사의 권리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모든 형태의 강제 또는 의무노동 사용 금지 △아동고용 최저 연령 및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금지 및 철폐를 포함한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노동보호 △최저임금, 근로시간 및 직업안전 및 보건과 관련하여 용인할 수 있는 근로조건 등 5개항과 직접 관련된 법령, 규칙 조항에 국한되고 있다.

따라서 외자기업이 합법 파업을 무력화시키는 시도를 한다 하더라도 5개 조항에 포함이 되지 않는 한 단체행동권 보호와 관련된 정부 법 집행 방기에 대해서는 이의제기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동권 보장을 담보하는 공중의견 제출제도나 분쟁해결절차를 도입 등도 노동챕터에 포함돼 있다.

공공의견 제출제도는 노동기준 준수와 관련된 상대국의 협정문 이행 상황에 대해 노동단체 등 국내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상대국 노동법 준수사항뿐 아니라 국내기업의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노동계나 시민단체 등이 주체가 돼 이의제기를 하게 되며, 자국 정부를 통하거나 직접 상대국 정부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

이의제기가 들어올 경우 양국 정부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실무협의와 장관급이 포함되는 합동협의를 거치게 된다. 만약 협의에 실패할 경우에는 양국 1명씩과 중립이사 3명으로 구성된 중립기구에 회부돼 분쟁해결 절차를 거치게 된다.

분쟁해결 절차는 외국투자기업과 무역관련 업체 노사분쟁과 정부의 자국 노동법 집행 실패에만 적용된다.

중립기구는 논의 결과 보고서를 발표를 통해 정부에 시정권고를 내리게 된다. 시정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연간 최대 1,500만달러의 벌과금이 부과되며 벌과금은 협정위반 국가의 노동기준 개선비용으로 쓰이게 된다. 벌과금을 내지 않으면 무역혜택 정지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노조 결성을 탄압하는 경우 그런 사태가 벌어지도록 방치한 한국 정부에 책임이 돌아가게 되고, 벌과금이 부과되는 대상도 한국 정부가 되는 것이다.


위협도, 도움도 안 돼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민주노총은 “미국이 노동장(노동챕터)을 빌미로 국내 노사관계나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직접 개입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근거를 찾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NAFTA 체결 시 이런 내용이 포함된 것은 미국 노동계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며, 실제 그 핵심 내용도 국제노동기준 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은 “오히려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심각한 문제는 한국 협상단이 국제노동기준 보장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보고서에서 주장했다. 이와 관련, 노동부는 이미 국회 등에 보고를 하면서 “국제노동기준 준수의 기본취지는 존중하면서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실을 고려해 실행가능한 수준으로 협상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노동챕터가 외자기업뿐 아니라 국내 노사관계에도 적용되고, 현재 추진중인 노사관계 로드맵이 협정 위반으로 제소될 수 있다는 점,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기업의 노무관리 부담 등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노총은 공공의견 제출제도와 분쟁해결 절차가 실질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노동장(노동챕터)이나 관련 분쟁해결 절차가 지닌 한계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민주노총의 분석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1994년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체결된 뒤 미국 정부와 관련해 10건, 상대국 정부와 관련해 21건의 노동 부문 이의제기가 있었다. 하지만 NAFTA는 물론이고 이후 미국이 체결한 FTA에서 노동 관련 분쟁은 정부간 협의단계를 넘어 중립기구의 분쟁해결 절차로 간 사례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NAFTA와 관련된 구체적인 분쟁사례를 보면 멕시코 마킬라도라에 진출한 미국기업이 노조에 가입한 소속 노동자를 해고하는 등의 협정위반 혐의로 미국 행정실에 신고돼 양 정부가 실무협의를 벌였다. 하지만 ‘멕시코 정부가 관련법에 대한 준수를 장려하지 않았거나 집행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면서 합동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았다.

합동위원회에 회부되더라도 중립위원회를 만들어 분쟁해결 절차까지 간 사례도 없다. 미국 내 멕시코기업이 직원 200명을 해고한 사건으로 합동위원회까지 회부된 사례가 있다. 하지만 합동위원회는 “미국 노동부장관이 멕시코 노동부장관에 사건의 법적 현황에 대해 지속적으로 통보하고 사무국은 관련 조사를 벌인 뒤 공개포럼을 열어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이런 사례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한미FTA가 노동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노동장(노동챕터)은 내국민 최혜국 대우나 이행의무 부과금지 같은 FTA 독소조항의 폐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총 보고서는 “한국 노동계가 노동장(노동챕터) 내용에 관심을 집중해 노동기준이나 이행담보 장치 강화를 요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한미FTA 체결에 동의하는 것”이라며 “이런 요구는 수용될 가능성도 거의 없을 뿐더러 노동계의 전략적 선택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지난달 13일 금속연맹 주최로 열린 '한미FTA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공청회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나온 바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승협 중앙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노동장(노동챕터)은 국제노동기준이 국내법에 인정되도록 ‘노력해야 한다’(strive to)라고 서술돼 있으며 이를 담보하기 위한 절차 역시 무역·투자에 비교해 구속력이 떨어진다”며 “국가간 FTA는 산업간 구조조정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정책들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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