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의 한 가운데, 이 유월의 마지막 주는 역사에 기록되는 희망의 한 주가 될 것이다. 온 나라를 마비시킨 월드컵 열풍이 잦아들면서 우리는 다시금 우리의 현실로 돌아왔다. 세계 4강, 16강의 신화가 깨지자 극심한 빈부격차와 양극화, 저열한 사회복지와 심각한 고용불안, 마구잡이로 탄압받는 노동인권, 냉전수구세력이 압도하는 제도정치 등 모든 측면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0여 국가 중 꼴찌인 우리의 막막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이닉스-매그나칩과 코오롱, 레이크사이드CC, 세종병원, KTX 여승무원, 대구경북건설노조와 같은 장기투쟁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는 우리 노동자의 처절한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용역깡패에게 두들겨 맞아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져도, 15만볼트 고압송전탑에서, 타워크레인에서 목숨 걸고 외쳐도, 그리고 눈비 맞으며 삼보일배로 엎드려 호소해도 부당해고 노동기본권 박탈의 현실은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이 일들이 정녕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일인가?

비정규직 노동법 개악은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것은 정규직을 마음껏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기 위한 전략적 목표 위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또 ‘노사관계 선진화방안’(로드맵)은 어떤가?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제약하기 위한 전면적 공세 외에 그 어떤 ‘선진화’가 있는가 말이다. ‘신뢰와 존중, 참여와 협력을 통한 합리적 선진적 노사관계’라는 달콤한 말은 그 본질에 있어 노사협력주의, 어용노조주의로 민주노조를 압살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에 저항하면 ‘법과 원칙’, 곧 무자비한 탄압이 준비되어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지금 ‘희망’을 말할 수 있는가?

금주에 진행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그래도 희망을 말하려고 한다. 그 하나는 교수노조가 주도하고 있는 '돈 걱정 없는 대학 만들기 1000+1000Km 대장정‘이며, 다른 하나는 금속노동자들의 산별전환 동시투표이다.

연대를 '선행실천' 하기 위한 교수들의 대장정

먼저 교수노조의 국토 대장정은 부산, 순천, 태백에서 출발하여 서울까지 2,000Km를 교수들이 걷는 프로그램이다. 작년에 1,000Km를 걸어 사립학교법을 개정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는 지역 순회프로그램을 포함하여 거리를 배로 늘였다. 뜨거운 한여름 햇살과 장마철 장대비를 뚫고 전국에서 모인 교수들이 고행을 자처한 것에는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학의 등록금은 매년 10% 이상 인상되어 이제 연 1,000만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는 학생들이 급증하고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것이 지금 대학의 현실이다. 또 최근에는 의학, 법학 전문대학원제도의 도입으로 수천만원의 등록금이 없으면 의사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기회조차 뺏으려 하고 있다. 결국 노동자 서민의 아이들은 대학에서 공부할 기회조차 박탈당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매년 대학은 학생들의 등록금투쟁(이른바 등투)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점거투쟁으로 행정기능이 마비되고 학생들과 선생들이 서로 멱살잡이를 하는 모순이 되풀이되었다. 투쟁은 각 학교별로 매년 되풀이되었으나 등록금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었다. 예컨대 올해 등록금 인상이 동결되면 그 다음해에는 두 배가 올랐기 때문이었다. 또 한 학교의 대폭 인상은 다른 학교의 대폭 인상을 불러오기 때문이었다.

대장정을 통해서 교수노조가 제기한 ‘등록금 후불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노력이었다. 또 교육을 사회가 책임지는 무상교육을 현실화하는 특단의 방안이다.(자세한 내용은 교수노조 홈페이지 http://www.kpu.or.kr 참고)

교수노조의 등록금 후불제에는 희망이 숨어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연대정신이다. 사실 교수들은 학생과 학부모가 납입하는 고액의 등록금에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등록금 문제를 제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수들이 고행을 자처한 것은 더이상 교육모순을 학부모에게 전가할 수 없으며 학생들의 희생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개별 학교 간의 시장 경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신자유주의 교육체제의 모순을 더이상은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순은 결국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교수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후불제에는 교수와 학생, 학부모가, 그리고 전국의 대학들이 담을 허물고 문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는 연대의식이 담겨 있다. 

금속노동자들의 산별노조 전환의 결단은 교수노동자들의 등록금 후불제 투쟁과 결코 다르지 않다. 양자 모두에는 바로 이웃의 노동자, 같이 일하는 동료,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대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해 동안 모두가 노동운동의 위기, 민주노조의 위기를 설파해 왔다. 특히 국가와 자본, 그리고 수많은 언론, 학자들이 위기는 대사업장(특히 금속산업)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파업투쟁과 실리주의(이기주의)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대화하고 적정한 선에서 타협하여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처방도 제시되었다.

또 민주노조에 대해서는 부패집단으로, 때로는 반민주적 권력집단으로, 노동귀족으로 왜곡하고 선동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며 차별대우 하고 있다는 비난은 결정타였다. 정도의 차이를 무시한다면 여기에는 수구 보수 여야정당, 조중동문과 친정부 개혁신문, 보수와 개혁 시민운동을 망라하는 거의 모든 사회세력들이 동참하였다. 지금도 계속되는 이런 이데올로기 공세로 말미암아 민주노조와 노동자들은 이제 ‘공공의 적’으로 내몰리고 있다.

1987년 이후 우리 민주노조운동의 골간을 형성하고 있는 민주노조들, 곧 현대차노조, 기아차노조, 대우차노조, 쌍용차노조, 대우조선노조, 한국델파이노조, 로템노조, 현대미포조선노조, 현대제철노조, 삼화금속노조, 비엔지스틸노조, 현대하이스코노조, 비엔테크노조, 일진소재산업노조, 수산중공업노조, 항공우주노조, 캐리어노조와 그 10만 조합원들은 이제 결단을 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이 땅의 1,500만 노동자들이 선진 노동자들의 결단을 지켜보고 있다.

개별 학교별로 진행되는 등록금 투쟁은 전망이 없다. 그것은 교수와 학생, 직원과 학부모를 서로 싸우게 만들 뿐이다. 이 경우 집단이기주의라 해도 반박하기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개별 기업별로 구성된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 투쟁하거나, 혹은 불안한 고용 때문에 고율의 임금인상을 획득하려 해도 돌아오는 것은 비난과 욕설밖에 없다. 그것이 아니면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 하청노동자 사이에서 이전투구식의 갈등이 재연되고 그 결과는 전반적인 노동조건, 고용조건의 악화로 귀결된다. 지난 10년간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다시 이제 희망이 있는가? 산별노조 전환의 결단은 단지 규모가 큰 금속노조의 결성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더이상 ‘공공의 적’으로 몰리지 않겠다는 결단이며 동료노동자들과 함께 노동해방의 새로운 길을 시작하겠다는 주체 선언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연대의 정신이 담겨 있다. 그 연대정신은 개별 사업장 별로 이루어지는 임금,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은 더이상 전망이 없다는 절박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현대차의 파업투쟁이 대우차의 ‘즐거움’이 되는 처절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더 나아가 정규직의 고용불안이 비정규직노동자를 해고하고, 하청업체 동료들의 임금을 빼앗는 악순환으로 나아가는 참담한 현실에 대한 거부선언이다. 그리고 기업노조와 정규직노동자가 회사와 노사 ‘화합’ 하여 비정규노동자들을 체계적으로 착취하는 관행 아닌 관행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결단이다. 곧 위기에 내몰린 민주노조를 새로이 세우는 역사적 결단인 것이다.

물거품이 된 월드컵 16강의 꿈 대신 이런 희망의 꿈은 어떤가? 교수노동자와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인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로 연대하는 사회, 그리하여 돈 걱정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고용을 보장받는 한국사회의 꿈 말이다. 지금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결단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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