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나서는 것은 개방의 충격을 통해 대내적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도가 관철되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8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의실에서 열린 ‘한미FTA 국회의원 워크숍’<사진>에서 “노 대통령이 경제사회질서의 내부적 개혁이 저항에 부딪히자 개방을 통해 글로벌 스탠더드를 수용함으로써 제도개혁의 추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한미FTA 협상 수용의 배경일 것”이라며 “해외 혁신자원을 흡수함으로써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국내 제도 개혁의 모티브로 한미FTA를 설정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미FTA를 통해 변화를 강요받게 될 부문들은 그동안 개방과 압력에 노출되지 않았던 영역이 많으며, 전문성을 갖춘 강력한 로비단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국내 세력관계 재편 읽어야”

김 교수는 현재 ‘불안정한 균형상태’에 있는 보수/진보의 국내 세력관계가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보수세력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금융, 교육, 보건의료, 노동, 환경 등 그간 이해관계자의 반발로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도영역에서 개혁을 개방으로 대체했을 경우, 반개혁적 성격은 유지되는 가운데 개방에 편승해 공공성을 위한 세력균형은 일거에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기업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없는 사안도 한미FTA를 빌미로 국내 기득권 세력과 이들을 충실히 대변하는 관료계층이 그간 억제되어왔던 이해관계를 표출하면서 제도화를 시도할 것”으로 관측했다.

국내 세력관계가 급속하게 보수적으로 재편되고, 경제사회제도의 규제완화에 따른 공공성 훼손 등의 대내적 위험이 한미FTA 체결이라는 대외적 위험 못지않게 잠재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자본(재벌) 요구 현실화 계기”

김 교수는 한미FTA 금융서비스 협상은 금융업에 신규진출과 규제완화를 추구하는 국내자본(재벌)의 요구가 더욱 현실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참여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의 핵심인 자산운용업은 법령 개정을 통해 자산운용회사의 전문화, 대형화 촉진, 펀드 운용의 자율성 및 판매채널 확대, 사모펀드 활성화 등 대대적인 규제완화가 이미 시작됐으며, 한미FTA 금융서비스 협상은 국내 자산운용업의 변화를 가속화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외국 자산운용회사의 국내 진출 확대에 차원이 아니라, 국내 법이 미국 수준의 다양화를 위한 각종 규제완화로 이어지고 특히, 재벌 금융계열사의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등 이른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를 위한 규제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금융지주회사제도상의 금융자회사와 비금융자회사 동시 지배 금지 △금융회사의 다른 회사 주식보유 제한(금산법 24조) △계열금융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의결권 제한(공정거래법 11조) 등의 규제가 완화 내지는 폐지될 가능성도 지적됐다.

그는 “한미FTA와 이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는 금산분리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면서 “사후적 규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국의 현실에서 금산분리를 위한 사전적인 규제를 지나치게 앞서서 완화하는 것은 경제력 집중과 시스템상의 위험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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