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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세연구원의 규정에는 ‘이석지침’이라는 게 있다. 지난해 11월 경영진이 취업규칙에 끼워 넣은 이 지침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2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팀장의) 결제를 받아야 한다’고 돼 있다.

이 지침을 시행하면서 가장 피해를 본 이들은 노동조합 조합원들이었다. 그해 7월, 직원들은 회사가 임금삭감과 해고재량 확보를 내용으로 하는 평가개선안을 공포한 데 반발해 노조를 만든 바 있다. 그리고 '이석지침' 규정 위반으로 조합원들은 모두 임금을 삭감 당했다.

문제는 규정을 따른 조합원들도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노조의 임금체불 진정에 대해 지방노동사무소는 ‘체불’이라며 이를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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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전국공공연구·전문노조는 조세연구원이 몇몇 인사에 의해 사기업처럼 운영되면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국회 국정감사 자료를 허위로 만들거나 조세연구원이 사들인 골프회원권으로 원장이 잦은 골프장 나들이를 한다는 것이다. 국정감사에는 1억원이 넘는 연구위원급의 임금을 3000만원 가량 줄여서 보고했는데, 이는 노조원들이 속한 하위직급의 연봉과 맞먹었다.

원장이 기관운영비를 이용해 개인적 친분이 있는 인사들에게 명절선물을 보낸 사실도 폭로됐다. 선물을 받은 명단에는 원장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총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국민은행, 마사회 인사까지 포함됐다.

노조는 이를 국가청렴위에 제소했는데 지난달 29일 청렴위 조사관은 “목적 외 사용금지조항과 공공기관 임직원 행동강령에 위배된다”고 노조에 밝혀 왔다.



이처럼 조세연구원은 노조 탄압, 폐쇄적 경영 관행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노동조합의 지탄을 받아 왔다. “노조가 생기면 1류인 연구원이 3류로 전락한다”는 비논리적인 주장이 일상적으로 나왔고, 당연히 회사와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어렵게 시작된 협상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급기야 단체교섭 체결을 놓고 지난해부터 수개월 동안 대립하던 조세연구원 노사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의 사적조정 제안을 받아들인 게 지난 5월이다. 그동안 회사는 폐쇄회로TV(CCTV)와 출퇴근 관리용 카드리더기를 도입하고 조합대표 임금 삭감, 조합원 직위해제 등 노조에 갖은 압력을 가했다. 노조의 반발은 당연히 따라왔다.

13년 동안 예산회계 담당자가 한번도 바뀌지 않을 정도로 조직은 폐쇄됐고 노조를 향해 공공연하게 ‘김정일의 하수인’이라며 색깔론을 덧씌울 만큼 전근대적인 노사관을 표출했다.

노조가 사측보다 조정안이 더 나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적조정을 받겠다고 결정을 하는데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서명을 하는 데에만 한달이 걸렸다. 쟁점이 된 것은 조정위원회 구성과 조정안의 효력이었다. 회사는 조정위원을 노-사-이사장이 각각 10명씩 추천해 30명을 뽑아놓고 이중 3명을 최종 확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회사가 교섭에 임하는 태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조정안의 효력에 대해서도 회사는 조정안의 권고를 최대한 존중해 저정 범위를 타협하자고 주장했다. 조정안으로 제시된 단체교섭을 다시 타협하고 그간 분쟁으로 인한 징계, 고소·고발을 어떻게 처리할지 보자는 것이다. 이에 노조는 일괄타결을 주장하고 있다.

다행하게 지난달 23일 조정위원이 확정되고 25일 첫 상견례를 가진 뒤 회의는 꾸준하게 열리고 있다.

조세원구원 이정미 지부장은 “너무 오랫동안 단협조차 맺지 못하고 있어 조합원 피로도가 심각하다”며, “그래도 조세연구원처럼 공공기관에서 말도 안 되는 관행이 깨질 때까지 끝까지 가겠다는 것은 모든 조합원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미 지난해에 전임자 대신 하루 조합활동 보장으로 요구를 수정했듯이 우리는 많은 것을 양보했다”며 “경영진이 조정을 거부할 명분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정미 지부장은 “이미 비도덕적인 부분과 경영파행이 드러난 이상 사적조정안 타결 뒤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원장 퇴진과 경영진 교체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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