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5년 김영삼 정권이 임금협상 중인 노조 간부를 ‘국가전복세력’으로 몰아 전원 검거했던 이른바 ‘한통 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됐다. 한국통신(현 KT) 노동조합 전 간부 26명은 구속되고 해직된 지 11년만에 명예회복을 하게 됐다.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는 22일 본위원회를 열어 95년 한국통신 사태로 구속되거나 해직된 당시 노조 간부 26명을 두 차례의 심의를 거쳐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했다.

노동운동은 적극적 민주화운동

애초 심의위원회는 한국통신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조의 행동을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없다며 이들의 신청을 기각했다. 이는 심의위원회가 문민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으로 볼 수 없고 노동운동은 임금인상 같이 이익집단의 활동이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일각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하지만 재심 신청서에서 신청인들은 김영삼 대통령이 “한통노조는 국가전복세력”이라고 말하면서 정상적으로 이뤄지던 대화가 중단되고 곧바로 검찰총장 등이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고 주장했다. 임금가이드라인 등 노동통제를 관철시키려는 정부의 권위주의적 정책에 맞서 싸운 노조의 투쟁이 민주적 노사관계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끌어낸 셈이다.

정동익 위원은 “당시 대량해직 사태는 민주노조운동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정권이 의도적으로 유발한 것으로 인정했다”며 “대통령이 체제전복세력으로 몰고 검찰 등 권력기관이 정권 안보 차원에서 대처한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예봉을 꺾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은 “노동운동을 단순히 노사관계 충돌로 보는 시각이 많은데 이번 결정으로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에 끼친 영향을 적극적으로 인정했다”고 해석했다.


해고자 “복직 바란다”

심의위원회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관련자들은 "11년이 걸렸다"면서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복직을 바라는 목소리가 당장 나온다. 당시 부위원장이던 이해관씨는 “대단히 기쁘다”며 “우리의 행위가 민주화운동이고 회사의 해고는 부당한 탄압이라고 인정된 만큼 바로 복직을 신청할 것”이라고 감회를 밝혔다. 그는 “95년 6월 이후 11년 동안 해고된 채로 고생했는데 한국통신도 더이상 외면하지 말고 복직시킬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바람이 현실화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심의위원회는 회사에 복직권고를 할 수 있지만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심의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240명에 대해 복직권고를 했지만 수용된 것은 17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개선은 물론 노동자들의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민주화운동 인정 어떤 영향 줄까
복직, 노조 내부 이슈로 확대될 듯
한국통신 해고자 26명이 22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된 게 의외의 방향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이들의 복직 문제와 노조 내부 문제 사이에서 파열음을 낼 공산이 높다. 현재 집행부에 더 많은 책임이 돌아갈 전망이다.


해고자와 현 노조 집행부의 입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어 문제는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갈등은 지난 3월에 현 집행부가 대의원대회에서 95년 당시 위원장이던 유덕상씨와 부위원장이던 이해관씨에 대해 구제기금 지급 중단과 조합원 자격 박탈을 결의하면서 극에 달하고 있다. 이들은 이에 항의해 민주노총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결국 복직이 현 집행부에 첫번째 도전이 될 것이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관련자의 요청이 있으면 해당 회사에 복직권고를 하도록 돼 있다. 해고자들 역시 분명한 복직 의사를 밝히고 있다.


복직권고를 받은 회사가 이를 수용할지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에서 현 집행부의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다. 강제수단이 없는 제도는 집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실제로 심의위원회의 권고가 실현된 것은 10%도 안 된다. 복직을 위해서는 노조의 조력이 필요한데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 화살은 현 집행부를 향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현 집행부는 “해고자 복직을 강력하게 지원한다”고 대외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해관 씨는 “집행부가 해고자 복직에 주력한 것은 맞지만 95년 당시 해고자들은 방치하고 있다”며 “회사에서 당시 해고자들은 정치적 노조활동을 한 것이라 복직시킬 수 없다는 논리에 휘둘렸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된 만큼 불편한 관계와 무관하게 복직과 명예회복에 노력해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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