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적 인사의 대표적 소송으로 여성계와 노동계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정영임씨 40세 직급정년’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승진과 정년에 있어 직·간접적 성차별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주목되고 있다.

여성계의 오랜 투쟁으로 지난 1987년 12월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됐지만, 재판부가 이 법의 주요취지라 할 수 있는 간접차별(표면상으로는 남녀를 동일하게 대우하지만, 그 기준이 특정 성(?)이 충족하게 현저히 어려워 결과적으로 특정 성에 불이익한 결과를 초래하며, 그 기준이 정당한 것임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을 적용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금까지는 2004년 금융노조 하나은행지부가 제기한 ‘이원직군제(FM/CL) 소송’<본지 2004년11월19일자 ‘하나은행 이원직군제 성차별 인정 의미’ 기사 참조>이 거의 유일한 실정.

때문에 여성계는 "이번 재판부의 판결은 여성노동자의 승진과 정년에 있어서의 간접차별 규제에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재판부가 성별로 직군을 달리 채용한 부분에 대해서는 성차별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 정영임 씨 40세 직급정년 사건이란? = 정영임씨는 지난 1985년 전기협회에 행정직 6직급으로 입사한 뒤 2000년 5직급으로 승진할 때까지 15년간 말단사원으로 일해 오다 전기협회 여직원 사상 두번째로 승진했으나, 이듬해인 2001년 직급정년(40살)에 걸려 퇴직해야 했다.

정씨가 입사 당시 직군에 따라 남녀를 분리 채용한다는 규정이 없었음에도 여성은 모두 행정직 6직급, 남성은 5직급이었으며, 남성은 3~4년만에 승진했으나 여성은 승진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또 협회는 96년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에 따라 행정 6직급을 폐지하고 기존 6직급 노동자들을 일괄적으로 상용직으로 바꾼 뒤 상용직이 행정직으로 승진할 수 없도록 직제를 개편했다. 이로 인해 정씨는 5직급으로 승진하기까지 15년이 걸렸고 5직급 승진 1년여만에 40세 직급정년퇴직했다.

이에 정영임 씨는 '성차별'에 의한 부당해고라며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소했지만 패소, 이후 중앙노동위원회, 행정법원에서도 모두 패소해 이 사건은 법원까지 올라갔다. 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은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이 모두 여직원이라고 해도, 여성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사무보조라는 업무 특성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부당한 성차별이 아니다"는 판정을 내렸다.

△ 재판부의 입장 = 지난 12일 서울고법 특별7부는 판결문에서 "행정6직급이 여성노동자로 구성된 점에 비춰보면 협회의 직제개편은 합리적 이유 없이 불리하게 승진을 제한한 차별적 대우"라며 "직제개편으로 인한 승진상 불이익을 제거하지 않은 채 직급정년으로 퇴직 처리한 것은 결과적으로 여성노동자의 승진과 정년을 차별한 것"이라고 직·간접 차별을 모두 인정했다.

<채용과정에서의 차별> 정씨는 “참가인협회가 직원 채용과정에서 동일학력, 동일직종으로 동일업무에 종사함에도 여성노동자에게만 낮은 직급을 부여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 제1항(모집과 채용에서의 남녀차별 금지)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씨 채용 당시 행정 6직급의 업무내용은 문서타자 및 회계업무였으며, 5직급은 대외 기관업무 수행으로 각 직급별 직무의 성격 및 업무 강도, 학력, 경력 등에 따른 업무상의 필요에 의하여 채용한 것으로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서 채용에 있어서의 성차별은 인정하지 않았다.

<승진과 정년에서의 차별> 그러나 재판부는 “참가인협회가 비록 6직급의 업무의 특성에 기인하여 직군을 달리할 업무상 필요가 있었다 하더라도, 직제 개편 당시 이미 근무하던 행정직 6직급 근로자들에 대하여서까지 직군간 이동을 제한하고 상용직 내에서의 승진조차 허용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채용 당시 가지고 있던 승진에 대한 기대이익을 침해하는 조치로서 합리성이 없다”고 명시했다. 또한 “직제개편으로 인한 승진에 있어서의 불합리성을 시정하지 않은 채 참가인협회의 직급정년제 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한 것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은 조치로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여성민우회는 “남녀고용평등법이 내년으로 제정 20주년을 맞이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채용에서부터 승진, 퇴직, 해고에 이르기까지 성차별이 만연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번 재판부의 판결로 향후 여성노동자에게 관행처럼 진행되어 왔던 성차별적인 모집과 채용, 승진차별에 쐐기를 박아 여성노동자의 차별을 개선하고, 여성노동자의 평등한 노동권을 확보해 나가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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