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이냐, 쉼터냐, 쪽방이냐.’ 겨울의 문턱에서 노숙인들은 삶의 위기에 놓인다.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일부 노숙인들이 주인 없이 방치된 집을 찾아 점거에 나섰다. 스쾃(점거, Squat)이다. 예술가들이 서울 목동 예술인회관을 점거하면서 공공건물을 놀리지 말고 예술가와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외치듯 노숙인들도 안정적인 잠자리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쉼터나 자활의집 등 시설에 수용해 보려 하지만 노숙인들은 ‘돼지우리’라며 거부하고 있다.
방치된 공공주택, 월세내고 쓰겠다
지난 9월29일 노숙인들이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서울도시개발(SH)공사 소유의 다가구 주택에 둥지를 틀었다. 노숙인 생산공동체 ‘더불어 사는 집’ 소속 20여명의 노숙인들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종로구 삼일아파트에서 1년 2개월여 거주해 왔다. 9월 삼일아파트 철거가 시작되자 새로운 보금자리인 정릉의 빈집을 찾아 점유한 것.
지난 5일 오후 서울시청 정문 앞. 허름한 옷차림의 여러 명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노숙인 빈집점거는 정당하다”,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생존의 권리이다”,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보장하라”…. 노숙인 생산공동체 ‘더불어 사는 집’ 소속 노숙인들의 시위였다. 피켓을 든 노숙인들은 ‘무슨 이유로 시위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을 했다.
“정부에서 매입하고도 1년째 방치된 집에서 우리가 살겠다는 겁니다. (빈집) 놀리지 말고, 그것도 월세 내고 살겠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도시개발공사와 서울시는 무조건 안된다고만 하잖아요.” 빈집, 그것도 정부와 서울시가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주거를 제공해 주겠다고 매입한 다가구주택. 정부와 서울시의 서민주거안정 대책은 허점투성이였다.
서울시는 정부보다 앞서 다가구 매입 임대주택 사업을 펼쳤지만, 접는 것도 정부보다 앞섰다. 서울시는 2002년 6월과 2003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175채 1,251가구를 800억원을 들여 사들였다. 그러나 서울시가 임대한 가구는 584가구에 머물렀고 667가구는 빈집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서울시의회로부터 문제를 지적받자 서울시는 사업 시행 2년 만에 "오래된 주택이라 관리가 쉽지 않고, 유지보수가 힘들다"며 이 사업을 접었다. 되파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상습 침수, 노후 등으로 사람이 살기 힘든 집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들장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궁전과도 같아요.” 노숙인들은 몇 년째 방치되어 쓰지 않는 집을 놀리느니 그들이 이용하겠다는 입장. “보증금까지 낼 형편은 되지 않지만 월세를 내겠다는 데도 ‘당장 나가라’며 단전·단수는 물론 퇴거하라고 위압적으로 나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요.” 더불어 사는 집 박충석 대표의 말이다.
“집안에서는 술병 뒹굴게 하지 마라”
14일 다시 찾은 정릉의 점거주택은 노숙인들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전기를 끌어다 다시 잇는가 하면, 파헤쳐진 구들장을 반듯이 다시 놓고 있었다. 벽 한 쪽에 붙어 있는 공동체 ‘자율요강’도 눈에 띤다. 모든 사안은 민주적 토론과 의결을 거친다. 또 식사, 청소 등은 순번제로 하고, 기증물품은 목록작성 후 공동체 재산으로 한다. 공동체 일원은 한가지 구체적 사업에 종사해야 한다. 이들은 서로의 약속을 정하고 룰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빠져선 안 되는 또 한가지. 주거지 내 술 금지도 있었다. 부랑아, 알콜중독자로 낙인찍힌 노숙인들이기에 조심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집안에서는 술병 뒹굴게 하지 마라.” 서로 수칙을 지키기 위해 토론 때도 물이나 커피를 마신다. 동네 주민들의 좋지 않은 시선까지 받는 다면 ‘빈집 점거’의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다시 노숙자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다부진 결심이며, 자활해 가겠다는 더불어 사는 집 공동체의 의지가 읽혀졌다. 구성원들은 하나 같이 삶의 의욕으로 넘쳐 있었다.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노숙인 공동체의 훈기는 서로의 밝은 얼굴 표정을 통해서도 나타났다. 가족과 친척들이 외면했던 마음 속 빈자리를 서로가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과거를 굳이 알려고도, 애써 묻지도 않았다. 그것은 불문율이었다.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기에. 쉼터에 입소하면 나이와 학력, 경력 등을 빼곡히 적는 것을 노숙인들이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실례를 무릅쓰고 몇몇 사람들의 과거를 물었다.
자활의지 꺾는 돼지우리, 쉼터보다 공동체가 낫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40대 초반의 한 남자. 그는 부잣집 큰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버릇없이 자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도박, 술, 여자 등 세상에서 좋지 않다는 것은 다하고 살았다는 그는 노숙생활 5년째였다. “넌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야.” 방탕한 생활 때문에 이혼은 물론 일가친척으로부터도 외면당했다. 전세에서 월세로, 월세에서 사글세로, 사글세에서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노숙으로. 그리고는 용산역에서 하루, 서울역에서 하루. 노숙 생활은 그렇게 찾아왔다.
젊어서 음지를 쫓아 생활했다는 그는 공동체를 통해 자활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한 사람이 여럿을 위해 힘쓰는 것. 인간존중이죠. 쉼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온기가 이곳에는 있어요. 밥 먹으라고 깨우는 마음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감동시키는데요.”
젊어서부터 청계천 주변에서 노점상을 했던 차 아무개씨(59)씨. 개발의 뒤안길에 밀려난 도시빈민들이 그렇든 차씨도 고시원과 노숙을 전전해야 했다. 설상가상 암 투병은 절망을 더욱 가속화했다. “너무 힘들어서 한강에 뛰어내릴 생각도 숱하게 했죠.” 기적적으로 수술에 성공해 살아난 차씨는 공동체를 만나 희망을 발견했다. “세끼 밥만 먹고 살려면 개, 돼지나 똑같지요. 지금은 살아간다는 희망과 목적, 보람이 있어요.”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디를 가더라도 손 꼭 잡고 붙어 다니는 50대 초반의 장애인 부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날도 부부는 병원에 같이 다녀오는 길이었다. 점거 당일 퇴거반원들과의 작은(?) 충돌에 놀라 경기를 일으킨 아내. “병원에서 약 먹으면 괜찮데요.” 손을 맞잡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손을 통해 전달되는 사랑의 온기.
40대 초반, 늦은 나이에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첫눈에 반했다. 집에서조차 불구자 취급받고 귀찮은 존재가 돼버리기 일쑤인 같은 처지였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자연스러웠다. 서로의 상채기를 핥아 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들은 주변에서 잉꼬부부로 소문이 나있었다.
“두 분은 서로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세요.”
“모든 게 좋죠.”
서로를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은 굳이 더 설명이 필요 없었다.
노숙인의 주거보장, 주거권
노숙인에 대한 거리지원과 쉼터지원체계의 한계가 크다는 지적은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특히 응급구호 성격의 쉼터는 쉼터퇴소 이후 일시주거에서 다시 노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쉼터에서 자활한 노숙인은 백 명에 한 두 명 나올까 말까 해요. 돼지우리와도 같은 쉼터는 노숙인의 자율성도 인정하지 않고 장기적인 일거리도 주어지지 않아요.” 더불어 사는 집 박충석 대표의 설명이다. 노숙인들에게 물어 본 쉼터는 더욱 원색적인 비난 일색이었다. “그곳은 개, 돼지 기르는 수용소에 불과해요.” “쉼터로 가라고 하지만 거기가면 오히려 병들어요.”
2000년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한 20개의 자활의 집 시범사업도 전세권 설정, 임대 기간, 사후관리 등 운영상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전국에 지원된 자활의 집의 수는 90여 개에 달했으나 지방정부와의 마찰, 열악한 재정난과 운영의 문제 등으로 현재는 전국적으로 50여 개의 자활의집이 운영되고 있다.
자활의 집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자 단신남성을 위한 월세지원(다시서기 지원센터 운영), 유료쉼터(노실사 운영) 등의 사업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월세지원 사업의 경우 지원 금액 및 기간 등의 문제로 활성화 되지 못했다. 유료쉼터의 경우도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부동산 투기 열풍에서 보듯 우리 사회의 주택은 주거 목적이 아닌 재산증식 수단으로 왜곡되어 있다. 따라서 노숙인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자는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양극화의 심화 속에 노숙인의 문제는 사회구조적 문제입니다. 방치되고 놀리고 있는 시설을 점유해서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의미도 있죠.” 노숙인들과 투쟁을 같이 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중구지역위원회 김민걸 부위원장은 노숙인에 대한 신뢰도 나타냈다. “노숙인들이 무료급식을 하면서 스스로 술도 줄이고, 깨끗이 씻는 등 변화가 있어요. 절제하려는 모습을 보며 새삼 놀라죠.”
자활에서 주거로의 노숙인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숙인들과 관련단체는 주거가 안정이 되어야 진정한 자활이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주거만 안정이 되면 중고물품, 재활용품 등을 판매하고,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도 확대할 수 있지요.” 더불어 사는 집 노숙인들은 법인화 준비와 함께 공동체 발전모델을 착착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무단점거, 주거침입 등의 법 규정만 앵무새처럼 들먹이는 행정당국에 노숙인들은 분명히 대답하고 있다. 주택은 거주의 공간이지, 투기의 공간이 아니라고. 그래서 방치된 공공주택의 점거는 정당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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