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2000년에서 2001년까지 수차례 이뤄진 민주노총 총파업 당시 노동계 지도부에 대해서도 불법 도청을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불법도청 지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김은성 전 차장은 8일 영장실질 심사에서 “국가경제가 마비될 정도로 중요한 때는 파업을 막기 위해 노사정 회의나 노조 사이에서 논의되는 내용도 도청했다”고 시인했다. 김씨는 2000년 4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국정원 차장을 지내면서 정치권과 노동계 언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불법도청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사고 있다.

김씨가 국정원 차장으로 재직했던 때는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김대중 정부 사이에 극한 대결이 펼쳐지던 시기와 일치한다. 따라서 국정원은 당시 정권과 대치하던 민주노총 지도부 등의 회의 내용 등을 도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이 당시 도청 내용을 어떤 라인을 통해 보고하거나 활용했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당시는 2001년 4월 대우자동차 대규모 정리해고와 경찰의 폭력 등 강경진압을 둘러싸고 노정관계가 급격히 얼어붙던 시기였다. 대우차 강경진압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경찰은 롯데호텔 파업농성을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잇달아 울산 효성공장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이로 인해 노정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 중단과 주5일제 등 노동법 통과 규탄, 김대중 정권 퇴진을 내걸고 명동성당 농성과 함께 파업을 주도했다. 김대중 정부는 2001년 10월 불법파업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형집행정지로 출소를 앞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다시 구속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어 민주노총 지도부들에 대한 대거 구속 바람이 부는 등 2001년 당시 구속 노동자만 160명을 넘어섰다.

당시 국정원의 집중적인 도청 대상이었을 것으로 보이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은 10일 “노동자들의 자주적 활동마저 국가가 불법 도청했다는 사실 자체가 경악스럽다”며 불법도청에 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단 의원은 “당시 불법도청을 청와대와 국정원장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김은성 차장 1명의 문제가 아니라 김대중 정권과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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