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당 의원단에 대한 비난 논평(?)
이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5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부업법이 통과되고 난 직후부터다.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당시에 의원단 점검회의를 통해 조건부 찬성을 당론으로 정하고, 당론 투표를 했다. 그리고 당시 본회의에서 이 법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갈등이 표면으로 부각된 것은 같은 날 저녁 6시에 이선근 운동본부장의 명의로 “고리대에 면죄부를 준 개정 대부업법”이라는 비판 논평이 당 홈페이지에 발표되면서부터다. 이 논평에선 “서민보호 외면한 국회,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논평에서 언급한 ‘국회’에는 찬성표결을 한 민주노동당 의원들도 포함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선 당시 통과된 법안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3일 통과된 개정안의 주 내용은 △현재 3천만원인 이자율제한 적용 상한금액 삭제 △제3자가 채무사실을 알 수 있는 방법으로 채권 추심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불법?부당 채권 추심에 대한 규제 강화 △미등록 대부업자의 광고금지 및 미등록 업체의 불법영업행위 처벌강화 △대부업 등록갱신제도 도입 △대부업자의 명의대여 금지 및 계약서 보관 의무 신설 등 대부업 이용자의 권익보호 강화 △올해 10월까지로 돼 있는 이자율 제한규정을 3년간 연장 하는 것으로 등으로 돼 있다. 또한 대부업법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이자율 규제(현행 70%, 시행령은 66%)과 관련해선 오는 6월 국회에서 다루기로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합의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대부업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을 없애고, 투명성을 높이며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는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운동본부는 왜 자당 의원들의 찬성 당론투표를 ‘지탄’하고 나섰을까.
운동본부는 민주노동당의 서민 금융, 신용회복 운동을 전담해서 하고 있는 조직이다. 원외 시절부터 당내 부서로썬 드물게 법안 생산능력을 보유한 부서였으며, 대부업법 폐지와 이자제한법 제정이라는 민주노동당의 선거 공약을 정리해낸 부서기도 하다. 또한 심 의원은 민주노동당의 서민 금융 정책을 재경위에서 관철해 내야 할 최전선에 서 있다. 제도권 원내정치의 한계와 직접 부딪치는 일을 하고 있고, 더불어 상임위 활동 과정에서 새로운 정책적 경험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 양 부서간의 이견은 원내외의 입장의 차이, 혹은 정보격차 때문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닌 것 같다. 심 의원실과 운동본부의 마찰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의원단이 넘지 말아야 될 것을 넘어버렸다”
운동본부의 주장은 ‘고금리는 합법이든, 불법이든 그 자체가 척결의 대상’이라는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 입장에서 이번 통과된 대부업 개정안에 의원단이 찬성표결을 한 것은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은 것 즉, ‘당론’을 위배했다는 것이다.
운동본부 쪽의 설명이다. “우리의 입장은 고금리로부터 금융이용자를 보호한다는 데서 출발한다면 보수정당의 입장은 고금리의 음성화 방지 즉 합법화에 초점을 맞추고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채권추심을 막자는 데서 출발한다. 기본 철학이 다른 것이다. 이번 통과된 개정안은 후자에 인식에서 출발한 법이고, 이 법에 찬성하는 것은 당의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고금리는 불법이든, 합법이든 척결의 대상이다. 이번 개정안을 두고 3천만원 이상의 대출에 대해서도 이자율을 66%로 제한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보수정당이나 할 수 있는 해석이다.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66%의 고금리를 지속적으로 보장해줬다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운동본부은 또 이번 개정안이 마련된다고 해서 현실은 좋아질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서민의 피해는 지속될 것이다. 약간 손보는 것으로 서민의 피해는 줄어들지 않는다. 또한 66%로 제한한다고 해서 음성적인 시장을 막을 순 없다. 66%는 비상식적으로 높은 이자율이다. 고금리 폭리를 보장해 줄수록 제도권 금융시장조차도 고리대금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 고금리를 합법화 한 대부업법은 사채시장의 대규모 증가만 불러왔고, 생산적으로 쓰여야 할 제도금융의 자금이 사채시장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 음성사채시장의 폭력적인 채권추심도 줄어들긴 커녕 전 사회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관건은 음성시장의 양성화가 아니라 금리규제다. 금리규제를 하지 않으면 서민의 금리부담과 피해구제도 멀어지게 된다.”
또한 운동본부는 의원단의 찬성표결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핵심인 이자율을 건들이지 않고 음성시장의 제도권화를 거론하는 순간 척결의 대상인 대부업법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넘어선 안 될 선이다. 6월에 다시 이자율을 거론한다고 하는데, 거론만 하고 마는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핵심을 빼고 곁다리 문제만 합의해 준 꼴이 된 것이다. 의원단이 설령 현행보다 개정안이 진전된 안이라는 판단했더라도, 당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법이라면 반대, 최소한 기권을 했어야 했다. 노동자 서민의 눈으로 평가해봐야 한다.”
“긍정적인 내용만 있는데 왜 반대하냐”
반면 심상정 의원실의 의견은 현실적으로 긍정적인 안만 담고 있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민주노동당의 의제들은 향후 과제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의원실 쪽의 설명을 들어보자. “대부업법의 개정방향은 고금리 피해를 막기 위해서 법정 이자율을 제한하고, 동시에 음성시장에서 법망을 피해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고금리 갈취행위를 규제해야 한다. 이자율 조정 건은 6월에 다루기로 약속을 받았고, 이번에 처리된 개정안에는 음성시장 규제에서 상당한 개선책을 담고 있다. 대표적 독소조항이었던 3천만원 초과 대부에도 대부업법을 적용하였고, 대부업자 규모 조항을 삭제하여 사실상 모든 대부업자를 등록케 했다. 또한 채권추심행위 규제를 강화하고, 중개, 광고, 대여 등에서 규제를 강화해 대부업자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이 들어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부업법 개정안은 기존 대부업법에서 개악되는 조항은 하나도 없고, 음성시장 규제에서 상당한 개선조치가 담겨져 있는 법안이다.”
또한 이자율 제한은 중요하지만 음성시장이 확대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행 고금리 피해를 막기 위해선 우선 대부업법에 명시된 이자율을 낮추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자율 제한과 동시에 고금리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금융시장 여건을 개혁하는 것이 관건이다. 구조적 금융체계 개혁 없이는 이자율이 제한되더라도 ‘고금리 대부 수요’에 의해 음성시장이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대부시장이 음성화될수록 규제도 어려워진다. 또 6월 국회에서 금리규제 문제를 다루기로 한 상황에서 고금리를 합법화 시켰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3일 본회의에서 다룬 54개의 법안 중 민주노동당이 반대 표결을 한 법안은 단 3개다. 우리 입장과 다를 지라도, 내용이 긍정적이라면 조건부 찬성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의 모든 안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이번 통과된 대부업법은 현행법을 개선안 안이었다.”
결국 ‘꿀 바른 독약’이라는 운동본부의 주장과 ‘이미 입안의 독(기존 대부업법)은 들어있는 상황에서 개선책을 찾은 것’이라는 의원실의 주장은 인식의 출발부터 다른 것이다.
정책조정기능 실종
대부업법과 관련된 내홍이 커지자 당 최고위원회는 5월4일 오후에 심상정 의원실과 운동본부의 입장을 듣는 간담회를 열었다. 그러나 지난 며칠동안 양쪽의 감정은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진지하게 서로의 주장이 오고갔지만 내용적으로도, 상황상으로도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12일 최고위원회를 통해 “(의원단의 당론투표가) 당의 정체성을 훼손했다든지 당론을 위배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결론지으며 이 사태는 표면적으로 마무리 됐다. 단, 최고위는 대부업법 문제의 처리과 이후 갈등 상황과 관련해서는 절차상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다.
“의원실은 의원단투표 이전에 이견조정을 정책조정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요청하지 않았으며, 경제민주화운동본부 또한 유관부서간 이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논평을 발표하였다. 이후 각 실행부서는 이견이 있을 시 조직적 절차를 통해 문제해결에 접근해야 하며, 정책위원회는 당의 정책조정기구로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5월12일 최고위원회 결정문 중)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실제로 정책적 이견 조정을 위한 프로세스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일단 정책적 이견에 대한 조정 책임을 가지고 있는 정책위는 이 문제에 개입하지 못했다. 이견이 큰 사안인 만큼 정책위의장이 주재한 가운데 심 의원실과 운동본부, 정책위가 참여하는 실무조정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그 날짜가 5월10일, 4월 임시국회가 끝난 후였다. 또한 실무조정회의에 대해서도 당시 주대환 정책위의장은 “(법안 찬반에 대한) 이견조정을 위한 회의”라고 말한 반면, 오건호 보좌관은 “10일 실무회의는 고금리 피해와 신용불량자 대책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에 이견을 조정하는 것이지 이번 법안과 관련한 찬반을 정하기 위한 회의가 아니”라고 말하는 등 아귀가 맞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주 정책위의장은 “조정 역할을 담당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천영세 의원단 대표은 당시에 “의원단은 법안에 대한 입장을 정할 때, 담당 의원실의 입장을 존중해 결정해 왔다”면서 “이자율 문제는 차후에 다루기로 하고, 일단 몇가지 개선된 안들이 있다고 (심 의원이) 보고 했고, 의원단은 법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정했다”고 말했다. 김창현 당 사무총장은 심정정 의원실과 당내 집행부서의 이견이 있었음과 의원단의 찬성표결 결정 과정을 내홍이 외화된 3일 오후까지도 자세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절차적으론 정책위의 조정과정을 걸쳤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위 담당 실무자는 “제2정조에는 대부업법과 관련한 담당 연구원이 없고 주로 담당했던 것이 경제민주화 운동본부였던 만큼 제2정조와 심 의원실 사이에 대부업법과 관련해 이야기 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정책위, 최고위원회, 의원단 등에서 이견에 대한 조정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찬성표결을 결정하고, 비판 성명을 내는 일이 이어졌고, 그것이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당의 한축인 원내 심상정 의원실은 4월 국회에서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의 뇌물에 세금을 물리는 법안인 ‘뇌물과세법’을 통과시키는 기염을 토하면 맹활약 중이었다. 운동본부는 전국을 돌며, 민생사업의 열쇄가 될 신용불량자 상담사업을 전파하던 와중이었다.
이 둘은 시너지를 일으키며 작품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정면충돌이라는 사고를 겪게 됐다. 4월 대부업법 사태는 순항하지 못했던 민주노동당호가 겪은 일시적 해프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려운 더 ‘고등수학’ 문제가 다시 민주노동당 앞에 놓여질 경우를 민주노동당은 대비하고 있지 않기에, 당시 사건은 자칫 비극의 전주곡의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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