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 ‘냉전(冷戰)’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전(熱戰)’은 더더구나 아니다. 4박5일의 ‘상경투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이상진씨(37)는 그저 아내의 눈치만 살핀다. 그런 남편의 눈치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정미경씨(34)는 5일만에 보는 남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TV 소리 좀 줄여….” 남편에게 할 말을 아이들에게 대신하는 ‘간접화법’.

상진씨가 멋쩍은 듯 달력 앞에 섰다.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혼잣말이지만 아내 귀에 들릴 만큼은 된다. 미경씨는 여전히 못 들은 척 한다. 애가 단 상진씨.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앉으며 하는 소리. “다음주 상경투쟁도 내가 가야 할 것 같은데….”
마침내 미경씨가 고개를 돌렸다. “마음대로 해요.” 고개 돌려준 것은 고맙지만 남 얘기 하는 듯한 아내의 대꾸에 상진씨는 섭섭하다. 미경씨도 미안하다. 하지만 너무 잦다. 대체 오늘같은 일이 벌써 몇번째 반복되고 있는 것인가.

'솎아내기'에 맞서는 남자

(주)코오롱 구미공장에 다니던 상진씨는 올해 2월17일 정리해고가 됐다. 상진씨는 이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2001년부터 노동조합 활동을 해 온 상진씨는 회사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정리해고를 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다. 정리해고 보름 전, 조합은 임금삭감과 희망퇴직까지 감수하며 회사와 "인적 구조조정은 없다"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럴 수가. 회사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상진씨와 동료들 78명을 잘랐다.

상진씨는 잘린 동료들과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를 만들었다. 출근투쟁, 법적소송, 본사타격투쟁,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는 선전전…. 안 해 본 게 없다. 그리고 벌써 8개월째다. 투쟁위 대표를 맡고 있는 상진씨는 복직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복직만큼, 아니 복직보다 복직 ‘투쟁’이 더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다. 5년 동안 고용승계투쟁을 벌였던 삼미특수강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 기나긴 투쟁에서 조합원들은 이혼을 당하고, 암에 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러나 상진씨는 물러설 수 없다. (주)코오롱은 섬유원사, 타이어코드, 필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유가 상승, 중국 업체의 등장 등으로 예전만큼은 못하다. 그러나 (주)코오롱은 코오롱그룹의 주력업체로 달라진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 생산품을 다양화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하는 등 자구책을 강구해 왔다. 어렵다고 징징대지만 당장 회사 정리할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만 솎아내려 하나.

회사는 지난해 11월까지 4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서를 받았다. 전체 직원 3,083명 가운데 864명이 회사를 떠났고, 희망퇴직자 410명은 하도급으로 전환됐다. 어렵다는 것을 핑계로 인건비를 최대한 줄일 셈이다. 하필이면 정리해고 대상자 대부분이 전현직 노조간부들이다.


아내가 알아서 해주기 바라는 남편

미경씨는 남편을 이해한다. 아니, 미경씨도 남편이 정리해고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미경씨가 알기에 노조는 많은 것을 양보했다. 그만큼 했으면 됐지. 우리 신랑이 남보다 일 못한다는 소리도 들은 적 없다.

그렇지만 미경씨는 남편에게 화가 난다. 집안에 돈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을 안 쓴다. 남편은 미경씨가 아이들과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티는지 모른다. 남편은 미경씨가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미경씨는 서울에서 오는 전화는 받지 않는다. 카드회사 아니면 보험회사다. 카드연체를 막기 위해 몇몇 아는 사람에게 돈을 빌렸다. 얼마 전부터는 친지들까지 자신을 마치 전염병 환자를 보듯 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돈 문제로 끙끙 대고 있는 미경씨에게 초등학교 1학년인 둘째아이 해빈(8)이가 숙제를 하다 모르는 게 있다며 들고 왔다. 미경씨가 설명을 해줬는데도 해빈이는 못 알아듣는다. 한숨을 쉬며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을 다시 해주는 미경씨. 헌데, 그 사이 해빈이의 시선은 텔레비전에 가 있다. 해빈이의 머리를 쿡 쥐어박았다. 한번 나간 손은 멈춰지지 않는다.

해빈이는 자신이 엄마에게 맞은 진짜 이유를 알까? 회사가 아빠에게 행사한 ‘정리해고’라는 폭력이 아빠를 거리로 나서게 했고, 그것이 엄마의 지갑을 텅 비게 만들어 결국은 자신이 꿀밤을 먹은 이유가 된, 그 폭력의 '유전'을.

해빈이의 관심사는 한 가지다. 다가오는 자신의 생일날 친구들을 초대하고 생일파티를 열어야 한다. ‘그때까지 엄마의 지갑이 채워질까? 엄마의 기분이 좋아질까?’ 아이들은 사장집이나 정리해고된 상진씨집이나 똑같다.

"나만한 남자 없다"…"나만한 여자도 없어요"

상진씨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남2녀 중 장남이다. 아버지는 청과시장에서 경매사를 하셨고, 어머니는 집에 계셨다. 학교 시절은 평범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잘 ‘노는’ 친구를 만나 상진씨도 잘 놀았다는 점이 굳이 '뉴스'라면 뉴스일까.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 책을 펼쳤지만 '국영수'가 딸렸다. 포기하고 전문대에 갔다. 상진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때 공부를 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상진씨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첫 직장을 여행사로 선택했다. 실적에 따라 월급이 나왔다. 상진씨가 받았던 돈은 한 달 30~40만원. 아내가 된 미경씨를 꼬시고는 그만 두었다. 첫 직장의 대차대조표는 '대성공'이었다.

1994년, (주) 코오롱 구미공장에 다니고 있던 자형이 입사를 권했다. 원사공장의 엄청난 소음과 숨을 막히게 하는 열기에 질려 곧 그만두려 했지만, 결혼을 하고 난 뒤 사표를 쓰기로 하고 참았다. 처갓집에는 사무직으로 일한다고 사기(?)를 치고는 아내를 모셔왔다. 아이들이 태어났다. 유학의 꿈은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던 사표였는데.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이 계속됐다.

상진씨의 유일한 탈출구는 자동차였다. 상진씨는 유독 차를 좋아했다. 겁없이 무쏘를 샀다가, 나중에는 연예인들이 애용한다는 밴을 장만했다. 물론 중고라 무쏘와 가격은 비슷했지만, 회사에서 가장 많이 받았을 때가 연봉 4천만원. 아무래도 상진씨에게는 무리였다. 우리의 상진씨, 어머니께 'SOS'를 쳤다.

미경씨도 부산사람이다. 2남1녀 외동딸로 부모님과 오빠들로부터 귀염받고 자랐다. 공부를 잘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었다. 이모가 호주에 있어 유학을 가기 위해 전문대학을 중퇴했다. 유학이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아 포기하고 여행사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여기에서 상진씨를 만났다.

눈이 크고 예쁘게 보여 마음에 들었지만 장래가 촉망되어 보이지는 않았단다. 그래도 마음이 기울었다. 이미 미경씨는 상진씨에게 '세뇌교육'을 받고 있었다. “나만한 남자 없다.”

상진씨와 미경씨는 1996년 결혼을 했다. 남편은 가끔 하늘을 쳐다보며 어디로 날아가고 싶은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그건 미경씨도 마찬가지였다. ‘땡맨’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회사와 집만 왔다갔다 하는 남편과 예쁜 아이들. 미경씨는 동네 아줌마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살았다.


초장에 꺾으려 했지만…가족대표로 편지 읽는 아내

2000년,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나뭇꾼이지만 선녀처럼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던 상진씨가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우선 공장이 말이 아니다. 사무직 관리자들은 책상에 앉아 신문 보고 주식 얘기하면서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신문도 읽지 못하게 했다. 고등학교 때 이후 처음으로 신발 꺾어 신지 말라는 훈계까지 들었다. 불황이라 핑계가 좋으니, 벼라별 간섭이 다 나왔다. ‘쌍팔년 때도 안 그랬다는데 우리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천성이 사람 좋아하고 나쁜 것 못 보는 상진씨는 노조를 찾았다.

2001년부터 대의원 활동을 했다. 부당한 지시나 요구를 하는 관리자에게 부서의 조합원을 대표해서 항의를 했고, 부서 조합원들과 융화를 꾀하기 위해 소의원회를 조직했다. 열정적인 상진씨라 노조가 잘못하면 ‘똑바로 하라’는 큰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남편이 노조활동을 하겠다고 하자 미경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남편은 무슨 일을 하면 푹 빠지는 사람이다. 초장에 꺾어야지. 남편은 굽히지 않았다. 이건 또 처음 보는 남편의 모습이다. 미경씨는 져 주었다. 노조활동이 나쁜 것도 아닌 터에, 애지중지하던 외제차까지 팔고 눈을 빛내며 아이들 앞에 자랑스런 아빠가 되겠다는데. 그이에게서 실로 오랜만에 남자 냄새를 맡았다.

미경씨가 받아들이자 상진씨는 더 밀고 들어 왔다. 파업농성 현장에서 가족들 대표로 눈물의 편지를 읽어 달라, 가족들을 모아 지지방문을 와 달라…. 미경씨는 또다른 세계가 신기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남편이 기특하기도 해서 웬만한 일은 들어주었다. 미경씨 생각에, 남편의 장점은 다른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자신이 맡아서 한다는 것이다. 덩달아 미경씨도 피곤해지지만 어쨌든 그건 좋은 일이다.


공장이 섰다

2003년, 365일 돌아가던 상진씨 부서의 기계가 섰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부서를 없애는 문제는 노사 합의사항인데도 회사는 노조에 말도 하지 않았다.

상진씨는 부서원이자 조합원인 90명을 모아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부서 앞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전체 조합원들의 동조를 얻기 위해 이 문제가 일개 부서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부각시켰다. 현장 간담회를 통해 신규 투자가 있어야 구미 공장 노동자들의 고용이 보장된다는 얘기도 꺼냈다. 조합원들은 호응했다. 부서원들을 명예퇴직 또는 전출시킬 계획이었던 회사는 상진씨들의 단결 앞에 신규부서를 만드는 데 합의했다.

이듬해 상진씨는 노조 집행부 선거에 뛰어들었다. 고용문제를 놓고 좀더 확실히 싸울 수 있는 집행부가 필요하다는 게 상진씨의 생각이었다. 상진씨가 민 후보가 노조위원장이 됐고, 상진씨도 간부를 맡았다. 교육선전부장이었다.

노조는 할 일이 많았다. 집행부 선거 바로 뒤에 총선이 있었다. 상진씨는 민주노동당 후보를 위해 "별 짓을 다 했다." 그리고 총선이 끝난 뒤 임단협 준비에 들어갔다. 노조는 고용보장을 위해 신규투자를 요구했고, 회사는 신규부서에서 일할 노동자들을 협정근로자로 하기를 주장했다. 접점이 없었다. 파업은 64일 동안 이어졌다. 공권력 투입 협박에, 직장폐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상진씨는 이미 간부였다. 노사는 한계사업을 정리하는 대신 신규투자를 하기로 했고, 고용보장에 합의했다.

슬슬 돈이 축 나기 시작했다. 2003년, 남편의 부서가 없어지면서 남편은 1근 근무(아침 7시부터 오후3시까지 근무)만 했다. 연봉이 4천만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3교대 근무와 8시간 잔업 '덕'이었다. 1근 근무만 해서는 돈이 안 된다. 보너스 없는 달에는 120만원. 이미 씀씀이는 커져 있었다.

미경씨는 아이들을 생각해 지출을 줄이지 않으려고 자신이 돈을 벌기로 했다. 웅진씽크빅 영업사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아이 셋 있는 아줌마의 선택이었다. 영업을 하러 다니면서 부잣집 아줌마들이 경우 없는 짓을 하거나,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 사주는 엄마들을 보면서 미경씨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편이 이해가 된다.

 가계부
지출수입
235,356 암, 종신 보험료
93,700 교육보험료
36,300 관리비
115,000 다연, 해빈 피아노 학원비
155,180 휴대폰
96,680 도시가스(7·8월분)
41,740 건강보험료
59,220 전기요금 7, 8월분 118.440 중 2개월 할부금
44,493 카드 사용 133.480 중 3개월 할부금
42,755 수퍼 물건 구입 85.510중 2개월 할부금
100,000 컴퓨터 수리비 30만원 중 3개월 할부금
42,363 카드 사용 127.090 중 3개월 할부금
50,000 기름값
15,700 아이들 간식
30,800 웅진 씽크빅 영업사원들과 함께 한 비용
800,000 현금 서비스 (보험, 카드사에 지불해야 될 돈 갚고 아이들 학원비, 생활비)
200,000 대출 이자
104,900 자동차 세금

=2,267,187
445,000 (실업급여)
440,000 (실업급여)
500,000 (미경씨 책 영업 수당)


=1,385,000

"이제 그만하고 돌아와요"

고용보장에 가까스로 합의했지만, 조합원들은 파업을 '진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무노동 무임금에 타결축하금도 없었으니. 두 달 넘게 월급 까먹고, 요즘 같은 세상에 고용보장을 어떻게 믿나. 조합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모래알이 된 조합원들. 11월 들어 회사는 희망퇴직자를 받았다. 이때 노조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 노조로서도 상진씨로서도 역부족이었다.

희망퇴직이 거듭되자 노조는 더이상 밀릴 수 없다고 판단해 파업카드를 꺼냈지만, 파업찬반투표는 성원미달로 무산됐다. 노조는 눈물을 머금고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임금삭감 15%, 희망퇴직자 420명 정리를 인적 구조조정과 맞바꾸었다. 그러나 한번 약점을 보인 노조는 무리에서 낙오된 초식동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희망퇴직만으로도 쉽게 무너지는 조합원들을 본 회사는 이 참에 정리해고까지 단행해버렸다.

책 영업은 돈이 되지 않았다. 월급은 없고 오로지 수당만 있을 뿐인데 책 한 권 팔기가 쉽지 않다. 남편이 덜컥 정리해고가 되자 이들 부부는 정말 '먹고살' 걱정을 해야 했다. 둘 사이에 재산은 3,700백만원 주고 산 24평 아파트와 차 한 대. 모아놓은 돈은 없었다. 노조 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상진씨는 돈이 조금 생기면 차를 바꾸고, 미경씨는 아이들 사교육비를 아끼지 않았다.

미경씨는 후회가 된다. 남편이 차를 바꿀 때 바가지를 긁어서라도 말렸어야 했다. 자신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사교육비는 지출하지 않았어야 했다. 아이가 셋 있는 상진씨와 미경씨는 아무리 안 써도 한 달에 150만원은 있어야 생활이 된다. 실업급여 90만원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나마 이번달로 끝이다. 한 달에 50~60십만원씩 적자가 나니 빚을 질 수밖에 없다.

정리해고 된 뒤 8개월 동안 보험회사로부터 약관대출 300만원, 남편의 회사 동료에게 500만원, 미경씨의 친구에게 300만원, 현금서비스 300만원을 받았다. 빚이 많아지자 미경씨는 피곤해졌다.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것도 한두번이다. 남편이 제발 좀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심정이다.

성장통은 당하는 자만의 짐이 아니다

남편은 기다려 달라고 한다. 힘들어서 더이상 못 버틴다고 미경씨가 애원해도 소용이 없다. “이제 겨우 8개월이다.” “8년 한 사람도 있다”고 상진씨가 '흰소리'를 칠 때면, 이 이가 애 아빠인지 남편인지 도무지 낯설기까지 하다. 그러나 상진씨는 정말이다. 상진씨는 부당해고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투쟁을 이어갈 결심이다.

상진씨와 미경씨는 예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굳이 잘못이 있었다면, 상진씨가 노동자이면서도 오랫동안 자신이 노동자인 것을 인정하지 않았는 것, 미경씨가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게 잘못인가.

이 부부는 지금 신자유주의 광풍에 휩쓸려 있다. 유식한 얘기가 아니다.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얘기다. '사람이 한 명 죽어 나가면 해결이 되려나.’ 상진씨는 끔찍한 생각에 몸서리친다. 미경씨 마음도 하루에 열두번씩 바뀐다. ‘남편을 도와줘야 되나? 그렇지만 나도 도움을 받고 싶고, 위로 받고 싶은데 왜 내가?’ 아무리 거센 바람도 멈추게 되어 있다. 그러나 모진 바람을 뚫고 나왔을 때 이 부부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한 상진씨는 세상을 만드는 더 큰 노동자가 되어 있을까. 미경씨는 자신의 아픔을 통해 남의 아픔도 보듬을 줄 아는 더 넉넉한 사람이 되어 있을까. 힘든 시간을 버티는 것, 그 안에서 성장하는 것은 당하는 사람만의 짐은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별 게 아니다. 당하는 사람에게 혼자 치르라고 요구하는 것. 그게 신자유주의다.

이상진씨와 정미경씨에게 미안하다. 이상진씨는 (주)코오롱의 부당한 정리해고와 그에 맞서는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의 활동을 알리기 위해 빡빡한 투쟁일정을 쪼개 <우리이웃> 취재에 응했다. 정미경씨는 이런 인터뷰가 번번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괴롭다. 인터뷰가 끝나고 주변 사람들이 동정의 눈길로 쳐다보는 게 싫다. 멀리 서울에서 찾아온 사람을 그대로 돌려보낼 수 없어 속상한 마음을 묻고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러나 이 글이 이 부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코오롱이 정리해고를 철회하지도 않을 것이고, 새로운 사실이 나온 것도 없으니 사회적 환기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진씨와 미경씨 부부가 그러하듯이 <매일노동뉴스>도 계속 쓴다. 독자들의 관심과 격려가 이들 부부에게 조금이라도 전해진다면, 이 부부가 인터뷰로 날린 시간은 헛된 것만은 아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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