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의 실제 성사 여부는 민주노동당 입장에서 논란거리가 못된다. 그러나 상황은 복잡하다. 하반기 정부여당의 개혁과제를 놓고 민주노동당과 공조가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그렇고, 예상되는 정계개편과 개헌논의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처신 문제가 걸려 있기에 더 그렇다.

현재까지 ‘연정은 어불성설이나, 하반기 개혁사안을 같이 추진하자’가 민주노동당의 입장이다. 하지만 주대환 정책위의장의 생각은 달랐다. 주 의장은 “개혁사안의 공조로 주목받는 것은 민주노동당에 독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누차 강조했다. 또한 주 의장은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우리 몫의 일이 아니며 많은 의미 부여를 할 일도 아니”라면서 “힘들고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뚜벅뚜벅 우리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명 원내 대표단과 지도부의 일반적 생각과는 구분되는 말들이었다.

"연정? 자신감을 갖고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라"
 

-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발언 이후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다.

“연정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과 자신감 부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국공합작을 봐도 초기에는 공산당 세력이 훨씬 세력이 적었지만 나중에는 더 커졌다.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

- 당의 공식 반응은 연정 '절대불가'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분히 당내용 반응이다. 6월 국회에서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부결을 정부여당과 공조한 이후 당내 비판이 있었다. 이를 의식한 반응 아니겠는가?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일단 강하게 거부한 것이다. 사실 강한 부정은 오히려 의심을 받을 수 있다. 과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보수와 진보 연정의 경우는 전쟁시기 국공합작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상황 말고는 없다. 우리가 과민한 반응을 보일 일이 아니다.”

- 물론 현 시점에서 연정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하반기 개혁과제에 있어서의 공조 가능성은 커진 것 아닌가.

“그 문제에 있어서 나는 심상정 의원이나 김창현 사무총장과 생각이 좀 다르다. 개혁공조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있다. 설령 이뤄지더라도 의미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여당이 개혁을 하려고 할 때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줄 수 있다. 당론에 미흡한 경우라도 여러 고려를 하며 공조할 수 있을 것이다. 사안별로 다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 개혁은 개혁정당의 몫이다. 힘들고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우리 길을 뚜벅뚜벅 갈 필요가 있다.”

"공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리스도의 것은 그리스도에게"

- 하지만 6월 국회에서 국방장관 해임건의안 부결을 정부여당과 공조한 이후 민주노동당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정당이 국민적 주목을 받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재미를 봤다. 득이 있었으나 그 득이 독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원내대표단이 그 재미에 취해 있는 것 같아 우려하고 있다. 매사에 줄타기 식으로 정치적 고려를 앞세워 판단을 한다면 안 될 것이다. 당내에는 개혁과 진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보정당의 자기 정체성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 과거 반독재투쟁의 이데올로기가 잔재로 남아 있다.

그러니까, 지난해 말처럼 국가보안법이라는 개혁이슈에 올인하는 경우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 자유주의자들의 과제는 자유주의자들이 해야 한다. 우리 일이 아니다. 자칫 지난해 말처럼 당이 길을 잃게 될 수도 있다.”

- 민주노동당이 천착하는 주제들이 정치이슈로 못 만들어지면서 나타난 문제일 수도 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당의 정책을 생산하고 가공해,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야 할 정책위원회 역시 그 책임에선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닌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정책연구원들이 정치에 익숙하지 못하다. 대학원 같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정책위는 묘하게도 당의 원칙을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가 당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 시스템에서 정책위가 원외에 있다 보니까 나오는 현상일 것이다. 정치적으로 발 빠르지 못한 것도 있지만, 현 구조에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정책위를 비판하기에 앞서 이런 원칙의 보루로서 역할분담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하다. 만약 옳다면 그런 비판은 빗나간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의원들에 대해서도 비판의 여지가 없지 않다. 의원들이 우리의 어젠다를 밤낮 없이 붙들고 늘어지며 최선을 다했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 공장 직공의 숙련도의 문제도 있지만 영업사원의 문제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동시에 봐야 한다.”

"의원단, 영업사원 역할 다 했나?"

- 김창현 사무총장이 내년 1월에 지도부 선거를 치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주 의장은 예전부터 ‘조기선거’를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조기선거는 물리적으로 어려워진 것 아닌가.

“우리의 약점이다. 너무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것이 당원과 지지층의 뜻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실 조기 선거는 현 지도부의 사퇴를 내포한 주장이다. 하지만 ‘사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은 것은 대표의 의중을 몰라서다. 사퇴 여부는 사실 대표의 권한이고, 참모인 내가 조기사퇴를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래서 조기선거라는 말로 내 뜻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지도부 사퇴를 하고, 임시 집행부를 꾸릴 필요가 있다. 조기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당원들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 현 최고위원회가 총 사퇴를 해야 할 만큼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시스템의 문제도 있지만 사실 사람의 문제도 있었다. 최고위원회는 정치적 판단을 해야 하는데 당원들과 지지자들의 바람에 맞게, 우리 당의 원칙에 맞게 정치적 판단을 해 왔는지 의문이다. 솔직히 당원과 지지층의 바람이 무엇인지 잘 아는 최고위원회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기 소신을 먼저 밝혀라! 그것으로 평가받아라!"

- 어떻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선 최고위원의 숫자가 너무 많다. 또한 시·도당 위원장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대중이 뭘 원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시·도당 위원장이다. 지역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대중의 뜻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다.”

- 지도체제 개편의 중심에는 당직공직 겸직금지의 문제가 있다.

“최악의 경우가 대표만 푸는 것이고, 현행 유지가 그 다음이며, 최선은 다 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칙론으로 말한다면 두번째와 세번째가 바뀌겠지만 현실론으로 이야기 한다면 이 순서다. 대표만 푸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 민주노동당은 독자적인 발언과 행동에 대해 관대하진 않다.

“민주노동당에는 금기가 있다. 북한 인권, 조선노동당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금기다. 최근 완화되긴 했지만 민주노총 비판 역시 금기였다. 이는 대중의 상식에 비춰 봐도 맞지 않는 것이다. 당내에 세력관계를 보고 처신하는 것, 눈치 보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자신의 소신을 말하고, 그것으로 당원과 국민들에게 평가 받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자신의 소신에 대한 지지를 구하고, 그것으로 당권에 도전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정파 구도에서 맞춰서 처신하는 것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다. 그것이 당내 정치와 대 국민정치의 괴리를 좁힐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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