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은 몸에 새긴 문신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화된 비물질적 형태의 문신에 주목하고 있다. 오는 27일부터 5월말까지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은 그동안 진행했던 오브제 문신 작업의 물성을 넘어서 컴퓨터 그래픽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문신을 둘러싼 한국의 ‘사회적 금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일련의 문신작업을 선보여온 김준의 맥락은 이제 사회적 형태의 억압적 요소들을 탈은폐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는 3차원 그래픽 작업을 프린트하기도 하고, 영상으로 투사하기도 한다. 김준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디지털 데이터로 이루어진 하나의 소스를 디지털 프린트, 빔 프로젝션, 모니터 등의 여러 출력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나아가 컴퓨터 마우스로 형상을 만들고 문신을 입히는 ‘마우스 페인팅(mouse Painting)’ 작업을 실행함으로써 브러시 페인팅을 대체하는 기법 실험의 성과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비가시적인 실체들

문신은 인체에 시각 이미지를 각인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문신은 몸에 새겨지고 눈에 보이는 문신 뿐만이 아니라 비물질적인 형태로도 존재한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적 기호나 취미 차원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으로 치부돼 왔던 문신의 의미를 사회문화적 영역으로 확대하면서 문화적 해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 김준의 작업은 세대, 계층, 직업, 성 등의 기준에 의해 구분되는 기호와 취향의 차이를 문신의 형태로 인체에 새겨 넣은 결과물들이다.

따라서 김준의 이번 작업들은 비가시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사회적 문신(Social Tattoo)을 가시적 실체로 드러내는 일종의 메타 문신인 셈이다. 그의 근작들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는 복합적인 개념을 담고 있다. 오브제에 문신 이미지를 새겨 넣은 기존 작업의 변주로서의 사회적 문신 작업은 각기 다른 문화적 선택을 변용하고 혼성함으로써 여기에서 나오는 다양한 문화적 체험과 담론의 생산에 주목하고 있다.

사회적 문신 작업 가운데 단연 주목을 끄는 대작인 연작들은 얼굴 없는 군상 인체를 보여주는데, 이때 그 인체들은 패션, 스포츠, 권력, 집단 등의 다양한 아이콘들을 새겨 넣은 문신 이미지들이 새겨진 사회적 텍스트들로 드러난다. 3명이 서로 몸을 맞대고 서있는 장면에서는 각 인체에 각인된 동일한 패턴의 이미지들이 섬뜩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김준은 상품 브랜드부터 집단주의 아이콘에 이르기까지 ‘우리’라는 집단화된 코드의 사회적 실체들을 적나라하게 까발려놓는다. 열린우리당이나 삼성과 같은 정치권력과 독점자본, 붉은 악마나 해병대와 같은 한국사회 특유의 집단문화와 병리적 현상들, BMW나 할리 데이비슨과 같은 글로벌한 소비문화의 도상들, 구찌, 스타벅스, 아디다스와 같은 다국적 기업의 브랜드, 예수나 지미 핸드릭스와 같은 영웅적 인물들…. 여기에 런닝셔츠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그을린 농부의 피부 위에 딸랑 하나 농협 문신을 새겨 넣은 그의 도발적인 시선 앞에서 우리는 무언의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김준은 이러한 사회적 굴레로 존재하는 다층위의 문신 이미지들을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나열한다. 가령 해병대와 스타벅스, 열린우리당과 지미 핸드릭스, 농협과 구찌, 붉은 악마와 할리 데이비슨의 이미지가 나란히 놓여져 있을 때의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하면서 우리는 그의 의도를 명료하게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맥락이 닿지 않는 아이콘들을 강렬하게 대비시킴으로써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상징 폭력의 수준은 무엇일까. 결국 한 개인이나 소수 집단이 어떠한 거대 집단에 소속되었느냐에 따라 정체를 달리할 수밖에 없는 집단 속의 소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소수자의 문화적 소외로 이어질뿐더러 우리시대 집합적 무의식의 실체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예술작품이다.


<타투레스> 연작은 특정 상품이나 상품의 이미지가 고유의 재질감과 색채를 간직한 채 인체에 파고든 형태로서 신체에 물리적인 자극을 가하지 않고도 강력하게 새겨져 있는 ‘문신 드레스’ 효과를 시각화한다. 프라다 핸드백의 반질반질한 가죽이미지와 검고 거칠거칠한 가죽이미지가 디지털 데이터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상표 대신 상품의 물질적 특성 자체를 새겨 넣은 결과이다. 신발 디자인 작업은 디자인의 조형어법과 전통문양의 일부를 차용한 새로운 작업 개념이 섞여 있다.

연작은 몸에 새겨진 상품의 물성을 통해 일종의 인체 상감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도자기에 은을 입혀 은입사상감청자를 만들 듯 인체에 구찌 옷감이나 폴로 코트를 박아 넣거나, 실밥자국이 선명한 가죽 소재 신발의 마티에르를 각인함으로써 소비사회의 개인들을 파고드는 자본과 권력의 흔적을 잔혹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는 실리콘이나 라텍스 재질의 꽃무늬를 화사하게 박아 넣는 약간의 발랄함도 잊지 않는다. 때로는 의상과 같은 상품의 형태가 인체의 외형을 손상시키는 경우도 있고, 인체의 일부를 디자인이 파고든 경우도 있다. 결국 디자인이 인체를 잠식해 들어간 흔적을 보자는 것이다.

인체에서 버블(거품)이 터져 나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영상 작업은 사람의 몸을 지배하는 거품과도 같은 사회적 장치들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버블 작업은 타투레스의 연장선상에서 인체에 가해지는 잔혹성을 한층 강화한다. 열주문양의 버블 라인이 신체를 휘감아 돌기도 하며 비정형의 거품들이 몸 구석구석을 마치 종양이 번져나가듯 무시무시한 폭력성으로 지배한다. 3차원 애니메이션의 버블 작업은 가로로 놓여있는 다리가 버블에 의해 허공으로 뜨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신체에 가해지는 가학적인 폭력의 이미지, 불쑥불쑥 불거져 나오는 잔혹한 이미지를 통해 김준은 물질적 존재로서의 신체를 날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금기를 금기시하는 예술적 저항

김준은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물질화 한 살덩어리 문신 작업에서 벗어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디지털 이미지를 출력하거나 영상 처리 방식을 통해 비물질적인 현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문신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증폭되는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은 이미 문화적 폭력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김준의 작업은 한국사회의 관습과 의사집단의 기득권 지키기에 의해 희생되는 자신의 몸을 치장할 권리에 대한 도전을 대변하고 있다. 문신에 대해 각인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따라서 김준의 작업은 사회적 금기에 저항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것은 사회의 문화적 현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사회현상에 대해 예술적으로 개입하는 행동주의 예술 실천의 차원에서도 대단히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지는 태도이다.

여기서 김준이 도입하는 또 다른 개입의 방법은 자신의 예술 작품과 실재를 결합하는 문신가게라는 장치이다. 그는 ‘문신 작업’(기표)과 실재 문신을 새기는 타투이스트들의 ‘문신 시술’(실재)과 문신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기의)이라는 삼각 축선을 절묘하게 결합하고 있다. 문신가게는 그동안 김준과 몇 차례의 현장 전시를 통해서 실천적 영역에 속한 타투이스트들의 실재를 드러내기 위해 협업 시스템을 꾸려왔다. 실재 문신과 관련한 퍼포먼스 사진 이미지들을 선보임으로써 예술작품으로서의 김준의 문신 작업과 비견하는 실재 문신 시술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김준이라는 문신 작가(tattoo artist)의 문신 예술 작업과 실재 타투이스트의 문신 시술 작업의 간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국 김준은 예술가의 시선으로 문신에서 발견한 모종의 개념을 예술작업의 모티브(동기)로 활용하면서 문신에 대한 담론화 과정으로 실천의 맥락을 전이함으로써 문신에 관한 사회적 의미를 되새기는 의미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그가 새긴 문신 이미지를 그 이미지 자체의 재현적 가치에 입각해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문신이 금기시되고 있는 관습 자체에 대한 저항의 코드로 읽을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그는 문신을 둘러싼 소수자성을 옹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뿐더러 그것을 넘어서는 문화적 종 다양성을 향한 예술적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김준은 체험적인 감수성의 발산을 자기 작업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건강한 정신적 자산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적 이미지를 몸에 새겨 보여줌으로써 문신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편견을 씻어내려는 비판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문화운동가가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그가 하려는 것은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팝 음악보다는 락 음악을’ 즐겨왔던 작가적 취향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내적 필연성 없이 강박적으로 비판적 시선을 가미하려고 하는 경향들에 비해 훨씬 진솔한 김준 식으로 육화된 작업이라는 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김준의 사회적 문신 작업들은 살과 상품의 물성을 대비해서 보여줌으로써 문양이 가지고 있는 재현적 기능, 즉 특정 도상을 통한 일루전(환영)의 작동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 내고 있는 문신들은 점점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형상의 일대일 지시 관계를 벗어나 다차원적인 함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추상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문신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보여주기 위해 <문신가게>의 퍼포먼스와 사진, 설치 작업을 동원한다. 또한 문화단체와 연계한 문신파티를 통해서 사회적 금기에 묶인 문신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도 병행한다. 금기를 금지하기 위해 예술 창작을 담론 실천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네트워킹 작업들이다. 치아에 보석을 박아 넣듯이 김준이 만든 ‘상감 문신이 실재로 인체를 장식하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그 시점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갑갑한 관습이 훨씬 줄어든 상태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금기에 저항하는 예술가 김준은 가장 진솔하게 내면을 털어놓음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확인하는 현명한 작가이다. 김준만큼 자신의 감수성을 투명하게 드러내면서도 ‘금기를 금기시하는 예술적 저항’이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예술사의 지위를 잘 얽어내는 이도 드물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