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만큼 민족과 노동의 문제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족과 노동 문제는 별개로 치부되거나 이를 고민하는 사람들조차 양분돼 있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민주노총 기관지인 <노동과 세계>에 실린 한 노동자의 산재사망사고 기사는 개성공단의 ‘노동’ 문제와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12월27일 개성공단에서 공장 신축공사 중이던 왕아무개(38·한국강건)씨가 추락해 사망했다는 것. 사고 당시 현지에서 치료했을 경우 회생 가능성이 있었으나 응급조치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 뒤 2시간이나 지나 병원치료를 받게 돼 상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소개됐다.

개성공단 건설현장에는 현재 1,500명 이상의 건설노동자가 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남쪽 노동자는 300여명에 이른다. 개성공단이 남북한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많은 점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남북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어떤지부터 통일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 세대에게 개성공단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까지 등등.

개성공단이 남북한 정치관계와 경제관계를 뛰어넘어 민족과 노동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는 셈이다.


개성공단 사망사고와 리빙아트 냄비세트

지난해 12월15일 각종 언론매체에는 북한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기업인 리빙아트가 최초로 생산한 냄비세트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특설매장에서 일반인들에게 불티난 듯 팔려나갔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메이드 인(made in) 개성’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00년 8월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몽헌 현대 회장이 개성지역 공단 건설을 합의한 이래 우여곡절 끝에 첫 제품이 생산된 것이긴 하지만 남북관계의 변화와 성과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에 대한 논의의 흐름은 현재까지 ‘경제’의 관점에 머물러 있다. 인력난을 겪는 중소기업들도 값싼 북한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만 개성공단을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12월 개성공단 시범단지 첫 제품 생산기념식 취재를 위해 개성에 다녀온 이경수 <민족21> 기자는 “개성공단은 남쪽도 아닌, 북쪽도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개성공단이 아직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문제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예상되는 문제들에 각론적 접근과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을 이야기하는데 앞서 개성공단의 노동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개성공업지구로동규정(개성규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개성공단은 남쪽기업의 전용공단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개성규정'으로 남쪽 기업들이 진출여부 등을 놓고 많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강한 노동보호 규정과 남쪽 투자자를 배제하는 경영관행을 고수함으로써 남한 기업의 투자유치에 실패해 왔으나 2000년대 들어 외자유치를 위해 경제특구를 확대하면서 개성공업지구, 금강산지구 등에서 노동보호규정을 완화해 기업의 자율적 인력관리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개성규정은 채용과정에서 직업동맹과 계약을 맺던 과거 규정과 달리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직접계약이 가능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노동자의 고용시 기업은 북쪽의 노력알선기업이 제출한 1.2배수의 노동자 중 선택적 고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차이다.

이밖에도 해고의 경우 외국인규정에는 직업동맹과의 합의가 의무화돼 있었던 데 비해 개성에서는 해고사유가 발생했을 경우 당사자에게 30일 전까지 통보하고 해고자 명단을 노력알선기업에 제출하는 것으로 해고절차를 마무리하게 했다. 개성지구 투자기업은 직업동맹 대신 종업원 대표와 노동규칙(노동시간과 휴식시간, 노동보호규정, 노동생활질서, 상벌기준 등)만 협의하면 된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기존 외국인투자기업의 경우 기업이 노력알선기관에 노동보수를 선불로 일괄납부하면 노동자가 알선기관으로부터 후불제로 수령했으나, 개성규정은 이와 달리 “기업은 노동보수를 화폐로 종업원에게 주어야 한다”며 직접지급을 명시해 다양한 개인의 인센티브 제도의 활용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북한도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 그만큼 관심과 기대가 높다는 것이고 사업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예상되는 문제들…미흡한 고민

이와 관련, 김진환 민주노동당 연구원은 “개성공단의 노동문제를 보는데 일종의 편향이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성공단이 결국 남쪽 자본에게만 유리한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닌지, 북한이 경제살리기를 위해 노동보호를 포기한 것인지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실제 지난해 노동절 남북공동행사를 위해 방북했던 금속연맹 한 관계자는 “순수한 북한 노동자들이 남쪽에서 제2의 이주노동자가 되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연구원은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의 임금(월 50달러)과 일반 노동자 임금(약 20달러)수준을 비교할 때, 개성공단 노동자들이 고임금을 받을 뿐 아니라, 노동규정과 노동분쟁 해결절차가 북한의 법을 적용하게 돼 있기 때문에 북이 노동보호를 포기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개성공단의 활성화는 북한 경제특성상 북의 내수로 이어져 경기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반면 남쪽 자본이 남한에서 하듯 노동권 침해를 할 경우 잦은 노사마찰로 남북경제협력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만큼 남쪽 노동계가 관심을 갖고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개성에 진출한 남쪽기업이 약화된 북의 노동규정을 악용해 북한 노동자들의 노동보호를 소홀히 하거나 무리하게 해고할 경우 민족경제 공동체의 모범이 돼야 할 개성공단이 새로운 남북갈등의 장이 될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개성공단의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노동계의 고민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학계의 연구조차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앞으로 경협문제에도 적극 대응할 계획이지만 아직 개성공단의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조사단계”라고 전했다.

이런 사정에 따라 남쪽 노동자들도 개성공단이 잘되면 ‘일자리’ 잃는 것 아니냐는 걱정부터 앞선다. 김진환 연구원은 “노동계를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는 개성공단이 잘되면 남쪽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많이 나온다”며 ‘일자리’에 대한 남쪽 노동자의 우려 수준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연구원은 “중국으로 공장이 빠져나가는 것과 동일하게 개성공단 문제를 바라봐선 안된다. 개성공단이 완공되면 창원시 규모의 신규 경공업지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잘될 경우 남한 노동자들도 개성공단에서 일할 기회가 만들어질 것으로 본다. 신규일자리 창출이란 관점에서 볼 필요도 있다.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대안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 1국적 사고가 필요하다. 지금도 남한의 건설노동자들이 개성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하나였어야 할 남북한이 나눠진지 올해로 60년이 됐다.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미래를 개척하는 주춧돌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아직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전략물자 반출 통제제도 등 개성공단이 성공하기까지 넘어야 할 장애물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통일 이후 사회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로 개성공단을 활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계의 관심도 필요한 시기다.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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