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를 국회로!” 정치 집회장의 얘기가 아니다. 주로 퍼포먼스나 다큐 영상 사진 작업을 하고 있는 박경주 작가의 주장이다.

독일 땅에서 본 이주노동자

박경주는 1993년부터 독일에서 영상을 공부한 작가이다. 그는 유학 말미부터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작업을 해왔다. 그가 베를린 이주노동자 프로젝트를 벌인 것은 1999년이었다. 그는 베를린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앞 다리 위에서 3백여명 가량의 이주노동자들을 다큐 사진에 담았다.

서로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졌지만 이주노동자라는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의 특성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그는 수백명의 사람들을 슬라이드 프로젝터로 오버랩시켰다. 다리 위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인물들의 전신상은 소극적이나마 자신의 특성을 표현하는 약간의 포즈가 들어 있다.

다리 위를 지나다니는 다양한 인종들의 삶 속에 들어 있는 인종·국가·민족 등의 장벽을 박경주는 짧은 대화를 통해 공유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사진들을 전시장에서 독일의 시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속인주의 국가 독일은 독일 땅에서 태어나도 부모의 국적을 따라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속지주의는 출생신고만 하면 태어난 곳의 국적을 가진다. 독일이나 한국 같이 속인주의 국가의 배타적인 인종개념을 가진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이주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한국인 이주(노동자)의 역사는 러시아 한인,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간 한인들, 일제 징병,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떠난 재미교포들로 이어진다. 그리고 70년대에는 파독 간호사와 광부의 역사가 남아 있다. 박경주는 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50인 정도의 간호사·광부의 모습을 담기 위해 베를린한인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파독 노동자들과의 접근 가능성을 높였다.

그는 송년회 파티 장소 한쪽에 촬영장을 만들고 그들의 초상사진을 찍었다. 수십년 동안 낯선 땅에서 새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그들은 박경주의 카메라 앞에서 깊은 삶의 역정과 회환을 담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한인회 사무국 일을 하면서까지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던 것은 이주와 노동이라는 주제에 대한 일관된 작업의 신호탄이었다.

비정주의 삶, 떠도는 노동

한국으로 돌아온 박경주는 2001년 당시 한국사회에서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 외국인노동자 문제를 다뤘다. 그는 경동교회 외국인노동자무료진료소를 찾은 외국인 노동자 1백명 가량의 초상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도 같은 장소에서 전신상을 찍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독일의 이주노동자들과는 달리 불법 체류자들이었다. 독일의 그들에 비해 신분이 훨씬 더 불안한 상태의 이들. 박경주처럼 카메라를 들이대는 예술가들에게 이들 외국인노동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현실의 팍팍함을 잊고 살 리 없겠지만, 사진 속 이들의 표정 속에는 이방인의 서글픈 정체성보다는 해맑은 삶의 희망들이 묻어 있다.

박경주는 ‘What is life : 이주노동자 뮤직 프로젝트’(2002년)를 진행하면서 더욱 적극적인 의미의 활동가 역할을 한다. 이 무렵부터 그의 정체성은 시각예술가 겸 문화활동가다. 예술가의 현장활동은 활동 그 자체로 비춰지면서 예술적인 범주 바깥의 그 무엇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박경주는 예술과 현실의 선을 넘나들기를 즐겨하는 드문 사람이다. 미술과 음악, 전시와 공연이라는 장르의 틀을 넘어서기까지 한다. 그는 버마 출신의 외국인노동자 7인으로 구성된 밴드 ‘유레카’를 발굴하고, 이들의 라이브 공연과 여덟 곡이 담긴 음반을 내는 일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음반 타이틀곡은 ‘What is life’다. 사는 게 뭔지, 그들도 역시 우리처럼 삶의 절박한 문제를 노래에 담아내고 있다. 2004년 봄 공식적인 해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힘들었던 것은 멤버들이 불법 체류자 단속에 걸려서 수갑을 차고 있는 모습을 면회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그들을 공항에 나가 배웅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2004년 한 해 동안 진행한 다큐 사진들은 좀더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박경주는 이주여성노동자 10명의 삶을 담은 사진을 찍었는데, 이전의 전신상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좀더 그들의 삶에 밀착해서 다양한 장면과 사건들을 담았다. 이주민의 삶과 여성의 삶이라는 이중고를 감당하고 있는 그들의 삶에 밀착해 있는 이 사진들은 출판물로 나오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를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후보로

이렇듯 일관된 작업으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뤄온 박경주는 최근 ‘이주노동자 선거유세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정치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김티톤(안양)과 아지즈(대구), 인도네시아에서 온 박우띠(대전), 네팔에서 온 이해미니(창원) 등이 선거유세를 펼쳤다. 1월 17일에는 광주 금남로에서 태국 출신의 임아리사가 선거유세를 펼친다.

이 프로젝트는 도심에서 선거유세를 하고 시민들의 반응을 다큐로 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세차량을 동원하거나 어깨띠를 하고 전단지를 돌리며, 마이크나 메가폰으로 시내에서 연설하고 시민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다. 과연 한국의 시민들은 외국인노동자 후보에게 한 표를 줄 수 있을까.

박경주는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안양과 창원이 특히 관심이 많았고 상대적으로 대구나 대전은 약간 보수적인 색채가 나타났다고 한다. 박경주의 선거유세 퍼포먼스는 이주노동자에 관한 정책을 세우기 위해 외국인노동자가 출마하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작업이다.

박경주는 이주여성과 함께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국제결혼으로 인한 가정문제가 포함된 필름이다. 올 3월 이주노동자방송국을 열기 위해 개국 준비방송을 하고 있기도 한다. 현실정치의 영역이 할 수 없는 일을 예술가가 해낸다면, 이것은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예술의 힘,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박경주의 발칙한 발상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비정주의 삶, 떠도는 노동’의 상처를 치유하는 예술가 무당 박경주가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다음 선거에 민주노동당이 비례대표로 이주노동자를 넣는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이 예술가가 설 자리다. 현실의 벽은 예술가에게, 특히 박경주와 같이 행동하는 예술가에게 또 다른 실험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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