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선 ‘보문’ 지하철역에서 가파른 길을 10분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산동네. 서울 성북구 보문동 3가. 몇 년 전부터 도시가스가 들어와 이제 연탄 때는 집은 몇 되지 않는다. 연탄 피우는 집은 대부분 노인들이 궁색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곳.
 
성북구청에서 최근 동절기 연탄지원을 했지만 보문동은 8가구 가운데 3곳만 지원대상에 포함됐다. 나머지 5가구는 사회단체인 ‘작은 손길’에서 지난달 1가구에 200장씩을 지원해, 그나마 독거노인들이 올겨울 난방 걱정을 덜게 됐다.
 
“행여 불 꺼지면 번개탄 집어넣기도 아까워, 빈 박스 주워서 톱으로 썰어 넣죠.”
 
연탄불을 갈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측은함을 더한다. 15년여 이곳에 살고 있는 김분기(64) 할머니는 딸의 출가 이후 몇 년째 혼자 살고 있다. 방으로 들어가는 좁은 마루는 얇은 합판으로 되어 있어 자칫 잘못 디디면 무너져 내릴 판이다.
 
 
“저녁에 불 안켜요. 인자 뭐 어둠에 익숙해서”
 
방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 먼지 쌓인 가스레인지와 양철 냄비 등 가재도구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불을 때고는 있지만 썰렁한 기운이 감도는 방안에는 몇 겹 덩그러니 놓인 낡은 이불이 방안의 훈기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다.
 
가전제품이라고는 텅 비어 있다시피 한 냉장고와 며칠 째 주인의 입을 기다리는 밥통이 거의 전부. 연탄불에 올려놓은 큰 솥에 담긴 물로는 겨우 세수 정도만 할 뿐, 빨래는 엄두도 못낼 판이다. 실내 화장실이 없는 것은 이제 불편에 이골이 난 노인에게 불편쯤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김 할머니는 10여 년 전부터 ‘퇴행성관절염’을 앓으면서 일은커녕 거동이 불편해 집밖으로 한 발짝 움직이기도 힘든 처지다. “밥도 간신히 엉금엉금 기어서 해먹는 기라.” 이웃 집 할머니들이 말벗도 되어주며, 반찬도 갖다주고 해서 외로움을 면하고는 있지만 김 할머니의 한숨은 늘어날 뿐이다.
 
김 할머니의 한달 수입은 동사무소에서 지급받는 16만원이 전부. 최근 젊은이들이 인근 월곡동에서 최저생계비인 36만원으로 한달 체험을 했지만 죄다 15~16만원의 적자를 봤듯, 이 돈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그렇게 몇 년째 살아왔다. 그 돈으로 먹고살며 전기, 전화, 수도세 등 각종 세금도 밀리지 않고 내고 있다. “수도가 없어 옆집에서 호스대서 한번씩 쓰고, 저녁에도 불 안켜요. 인자 뭐 어둠에 익숙해서….”
 
할머니는 부양가족인 딸이 있어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이 되지 못했다. “딸이 있으면 뭐해요. 사위는 공사판서 일하는데 벌이가 신통치 않아요. 용돈받기는커녕 내가 줘야할 판인데.” 김 할머니는 몸이 아파도 ‘꾸욱 꾹’ 참을 도리 밖에 없어 보였다.
 
그나마 보건소에서 한달에 한번씩 방문해서 감기약, 혈압약, 관절약 등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일 뿐이었다. “관절 진통제 주사 1대에 3만원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맞겠소.” 궁색한 살림의 할머니는 누군가 ‘장애신청’하면 50만원 가량의 돈이 나온다는 말에 솔깃할 뿐 아직 신청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식에게 짐 되기 싫다”
 
연탄가스 냄새가 진동하는 또 다른 집. 48년째 이곳 보문동에서 살고 있다는 이복수(75) 할머니와 윤각(74) 할아버지 내외는 800만원짜리 전세 단칸방에 없는 살림이지만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
 
이들 내외는 병원 신세 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했다. “나이 들어 병들면 더욱 외롭고 처량해지는 것 아니겠소.” 이 부부는 1남 3녀를 뒀지만 모두 출가해 서울, 강원도에 떨어져 살고 있다. “(자식들에게) 용돈 바라지도 않아요. 걔네들만 잘 살면 돼. 저희나 잘 살라고 해.” 자식들에게 부담되기 싫어하는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듯. “부모에 기대지 않고 속 썩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요.” 노인 내외는 어려운 와중에서도 그저 자식 걱정뿐이었다.
 
이 할머니는 아침 일찍 ‘취로사업’ 나가 재활용품 분리수거를 해서 2만~2만5천원 가량 일당을 받는다. “나는 헌마을(취로사업)이라 2만원 정도 받아요.” 할머니는 자신의 일을 새마을(공공근로사업, 일당 2만7천원 정도)과 구분해서 ‘헌마을’로 표현했다.
 
취로사업마저 일거리가 계속되면 좋겠지만 신청자가 많아 한달에 일주일 정도 일할 뿐이다. “기를 쓰고 들어오려고 하죠. 다들 일거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할머니는 낮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동네를 돌며 폐지를 모은다. “작은 리어카에 한 짐 하면 약 2~3천원 받아요. 그걸로 두부 등 반찬거리 사먹죠.”
 
노인 내외는 빠듯한 살림에도 찾아온 손님에게 떡 한 접시와 국물김치를 내어왔다. “우리 이렇게 살아요. 맛이 없더라도 많이 들어요.” 연탄 200장에 감사의 인사를 연신 전하는 내외는 “그전에 이 동네 영세민들 엄청 많았는데, 지금 이사 가서 다들 뭐하나 몰라”라며 이웃을 걱정했다.
 
기자와 동행한 사회복지단체 ‘작은 손길’의 이강원 간사는 갑갑한 마음을 털어놨다. “윗 동네 재개발로 인해 쫓겨난 세입자들 가운데 최근 을지로에서 노숙생활 하시는 분들을 봤어요.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어요. 저희도 독거노인 등을 지원한답시고 하지만 요즘 후원하는 분들도 줄어들어 답답합니다.”
 
자식도 없이 가난 속에서 말년을 보내는 노인들, 자식은 있으나 의지할 형편이 못되는 노인들. 우리사회는 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지만 노인복지 정책, 특히 저소득 노인과 관련한 복지 정책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갈 곳 없는 저소득 노인들, 자식도 정부도 외면
 
2000년, 65세 이상 인구가 우리나라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달해 이미 우리는 ‘고령화 사회’로 들어섰다. 2019년에는 14%를 넘어 ‘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통계청이 5년마다 벌이는 인구주택조사에 따르면 2000년 전국의 독거노인 수는 54만2,690명. 해마다 늘어 지난해는 64만3,544명(추산치)에 이른다. 이 가운데 서울에만 11만1,555명의 독거노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독거노인에 대한 지원의 손길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서울시가 지난달 초 월동대책비 지급을 위해 선정한 기초생활수급권자는 8만7,901가구. 이중 독거노인은 고작 5,933명에 불과하다.
 
이들 기초생활수급권자를 관리하는 사회복지전담 공무원은 955명. 1인당 평균 92가구를 맡다보니 독거노인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죽어가는 ‘노인 자살률’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1세 이상 노인 자살자 수는 3,653명에 달해 3년 전인 2000년의 2,329명에 견줘 무려 56.8%포인트나 늘어났다. 지난 한해 노인들이 하루 평균 10명꼴로 자살한 것이다.
 

 
가족부양체계의 붕괴와 사회부양체계의 미약함은 노인들을 더욱 위태로운 삶으로 몰아가고 있다.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는 노인들이 부지기수인데도 올해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예산은 전체 예산의 0.4%인 5천여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의 노인복지 예산이 전체 예산의 15% 수준이고, 일본과 대만도 각각 3.7%, 2.9%에 이르는 것에 견줘 턱없이 부족하다.
 
고령자 고용대책은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등 중산층 이상의 안정된 직장을 가진 이들 위주다. 퇴직금제도의 기업연금화도 현실적으로 중산층 이상만 혜택을 볼 수 있다. 개인연금 저축에 대해 소득공제혜택을 늘리는 것도 더더욱 저소득층의 노후 소득보장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정책이 이 모양이다 보니 노인들이 거리로 나섰다. 지난달 18일 ‘전국일하는노인연대’와 ‘한국노인인력지원기관협회 비대위’ 소속 노인들 2천여명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노인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이들 단체는 “최근 정부가 노인과 장애인 등 특수 복지분야 사업을 무리하게 지방으로 이양하는 과정에서 노인 일자리사업이 ‘공공근로’나 ‘취로사업’ 같은 일회성 사업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정부는 고령화 사회에 걸맞은 노인 일자리 정책과 비전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 단체들은 또 “내년부터 노인인력 지원사업이 지방정부로 이양되면 현재 1억5000만원인 국고보조금이 17%나 감소한 8300만원이 된다”며 “나머지 예산을 충당할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이 예산을 확보한 지자체는 116개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고령화 사회 대안과 관련 ‘실버산업’이 각광받는다지만 일부 부유층 노인들의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고령화 사회, 노인 복지 부재의 현주소는 저소득층 노인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사회의 길은 한국사회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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