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의 목소리가 다 들립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기약 없는 단식농성에 들어간 지 이틀째인 30일 오후.

국회본청 정문 앞 농성장에서 바라본 여의도 스카이라인은 아름다웠다. 적당한 높이의 가지런한 빌딩들과 넓게 뚫린 아스팔트 도로. 깨알같이 작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도시의 풍광은 그러나 결코 평온하지 않았다.

국회도서관 뒤편의 하늘 높이 치솟은 타워크레인 위에는 비정규노동자 대표들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국회 정문 앞에는 각 시민사회단체들과 노조들이 각자의 요구를 내걸고 천막을 쳤다. 정문 앞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억울한 사람들의 각각의 사연을 담아 ‘1인 시위’를 벌인다.
 

마치 ‘도인’이라도 된 마냥 농성장에 정좌하고 앉은 권 의원은 지그시 눈을 감는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노동자 농민들의 외침이 가슴 한구석에 돌이 되어 맺힌다. 이들을 대변하겠다며 진보정당의 가시밭길을 헤쳐오던 숨 가빴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살아온다.

“수많은 투쟁을 해 봤지만 국회의원이 돼서 철야 단식농성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해봤다.” 참담하다. 한 없이 참담하다. 50년 진보운동의 결과로 잉태한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했지만 세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기본권을 빼앗기고, 수입개방 물결에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정부가 민주노동당을 군홧발로 밟은 사실보다는 세상의 현실이 더욱 참담하다.

“당에서는 천막을 치자고 했는데 내가 반대했다. 바람을 그대로 맞으면서 온 몸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단식농성은 자신을 버리면서 항의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모든 것을 버리면서 싸우는데, 초겨울 찬바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권 의원은 정부의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사에 경찰병력이 들어갔다고 상상해 보라. 국회가 뒤집혔을 것이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은 몇 일을 참았다. 하지만 어떤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언론도 주목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은 이해찬 총리의 공식사과와 행자장관 해임, 경찰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정부는 ‘잘 했다, 잘못 했다’ 어떠한 말도 없다.

29일 이해찬 총리가 농성장을 찾았지만 의례적인 인사만 하고 돌아갔다. 30일에는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의원들, 여러 장관들이 들렀지만 “건강 유의하라”는 인사만 남겼다. 권 의원은 이들이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단다. 의회의 권위를 군홧발로 짓밟은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직도 모르는 이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장관을 하고 총리를 맡고 있단다.
 

“혹자들은 민주노동당이 운동권의 관성을 못 버리고 거리정치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알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모인 집회장에 가봐야 하고, 농민들의 아픔을 느끼려면 농민들 속에 들어가야 한다. 재래시장에서 악수나 하는 것이 정치인의 민생탐방이라고 여기는 것이 문제 아닌가. 민생국회 개혁국회는 민생현장 개혁요구 현장과 끊임없이 접촉할 때만이 가능해진다. 17대 국회는 여전히 멀었다.”
 
언제쯤 농성을 끝낼지 권 의원은 모른다. “이 총리가 그만두라면 그만두고, 계속 하라면 해야지 뭐.” 농담처럼 말을 끝내기 무섭게 농성장 앞이 시끄럽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기습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며 경찰병력에 강제로 끌려가고 있었다. 2004년 11월의 국회는 이렇게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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