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그냥 총파업으로 간다. 적어도 하루 총파업은 한다. 정부 개악안이 국무회의 의결까지 끝난 마당에 총파업 말고 다른 운신의 폭이 없지 않나."

주진우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은 이렇게 민주노총의 총파업 돌입은 확고하며 다른 선택이 여지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지난 9월 파견허용대상 사실상 전업종으로 확대, 기간제 고용기간 연장 등을 담은 정부안이 발표되면서부터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총파업을 선언한 양대 노총은 투쟁조직에 여념이 없고 열린우리당 점거농성을 했던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도 조직체계를 총력투쟁본부로 전환하고 비정규직노조들의 총파업과 ‘비정규직 권리보장 선언’ 등을 조직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공동행보에 나섰다. 지난 9월 100여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비정규노동법공대위'를 꾸려 정부 비정규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성단체연합, 전국여성노조 등 5개 여성단체와 노조는 정부안 추진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열린우리당사 앞 집회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는 확고한 연내입법 방침을 고수하며 결국 국무회의 의결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브레이크 없이 국회를 향해 질주하는 비정규법안을 막기 위해 노동계는 결국 ‘총파업’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투쟁수위를 높이려 하고 있다.

노동자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인 '총파업'을 내 건 노동계, 또한 노동계와 공동행보를 하겠다고 나선 시민사회단체들. 이번 정부안이 통과되면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비정규직을 고착화하며 합법적으로 양산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이들이 정부 입법안 저지와 제대로 된 비정규직 보호입법 쟁취를 위한 투쟁의 방식과 전망은 어떨까? ‘파견법 철폐, 비정규직 철폐’라는 당위적인 구호만이 전부일까?
 


정규직, 남성, 대공장을 탈피하는 시험무대

현재까지 진행된 민주노총의 총파업 찬반투표 상황을 보면 투표율도 그리 높지 않다. 투표는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6일까지 진행되지만 지난달 31일 발표된 중간집계 결과, 투표율은 약 20%다. 아직 시간이 남긴 했지만 70~80%의 투표율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며 찬성률 역시 압도적으로 나올 것으로 낙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비정규직법 개악저지라는, 노동자들에게 매우 현실적이고도 어떻게 보면 매우 정치적인 요구가 정규직들에게 당장 총파업을 불사할만한 긴박한 요구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FTA(자유무역협정)·한일BIT(투자협정) 저지 등도 이번 총파업 요구에 포함돼 있어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안과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이 역시 자동차 등 일부 업종에만 국한돼 있을 뿐이다.

김진억 민주노총 비정규사업국장은 “비정규 개악안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라는 바로 정규직의 위기상황을 담고 있음에도 민주노총 주력 부대인 현장 정규직노동자들의 공감이 잘 형성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비정규 권리보장 입법을 위한 투쟁은 오랜 교육과 준비과정을 거쳤어야 한다. 이런 급박한 정세에 대한 대비를 미리 했어야 했는데 총파업 결정시기가 많이 늦어졌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점거농성 등 비정규직들의 투쟁과 지도부 전국순회간담회 등 상층의 투쟁이 결합되고 있기 때문에 비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이 주로 분포된 업종의 연맹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상규 민간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정부 안대로 파견업종이 확대되고 기간제가 늘어나면 서비스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초토화’ 될 지경이다. 그런데 단위 사업장들에게 이번 총파업의 당위성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서비스업종의 대다수는 비정규직이지만 연맹에 조직된 노동자들은 정규직이다. 찬반투표 참여조차 동원이 잘 안 된다”고 털어놨다.

양대노총, 비정규직을 조직의 핵심으로

이번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파업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 강행 의지를 보이고 있는 총파업은 노동운동에 뿌리박힌 '대공장-정규직-남성' 중심의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금속노조 한 관계자는 “지금 민주노총 집행부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은 총파업을 남발하는 관행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잘 알고 있을 집행부가 정치적 부담을 안고 총파업 불사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그만큼 비정규입법 결과에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사회여론이 대공장 남성 중심의 노조운동을 불신하고 있는 와중에 민주노총의 대내외적 변화를 줄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라고 전망했다.

한국노총 내부도 이런 인식에는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번 비정규입법에 대한 노동계의 대응으로 주목할 것은 양대노총이 이 사안을 갖고 공동 투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투쟁수위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한국노총 역시 천막농성 등은 물론 총력투쟁 조직에 분주하다. 최저임금 문제에서도 공동대응을 하고 있는 양대노총이 중소영세비정규노동자 관련 사안에는 공동투쟁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하정수 한국노총 비정규사업국장은 “한국노총은 총파업까지는 못하더라도 산하 연맹들까지 참여하는 총력투쟁으로 갈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사안에 대해서는 공동투쟁 기조를 가지고 있다. 이번 투쟁은 노총과 산하 조직에 비정규직 문제를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곧 노총 개혁과도 이어진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입법 저지’는 공통목표, 그 이후는?

양대노총은 총파업과 총력투쟁을 한다. 무조건 하루라도 총파업은 할 것이다. 그런데 총파업 참여도가 그리 높지 않다거나 국회가 요지부동이라면 그 이후는? 혹은 정부와 국회가 연내입법 방침을 철회하고 법안 처리를 연기한다면?

주진우 실장은 “4대 개혁법이 주요 쟁점이 되면서 비정규입법의 연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것도 총파업 이후의 일이다. 노동계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데 연내처리를 유보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니까 총파업 결정을 철회할 가능성도 없다. 희박하기는 하지만 연기가 된다면 투쟁방향은 당연히 장기적으로 권리보장 입법을 위한 투쟁으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정부비정규입법안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은 여성계나 시민사회단체들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여성계와 시민사회단체들도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지원하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약간씩 입장 차이가 보인다.

최순임 전국여성노조 조직국장은 “적어도 비정규직 문제만큼은 여야를 떠나서 초당적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호주제 폐지 문제와 유사하게 말이다. 권리보장 입법 발의를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진영의 통일된 안을 만들어서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서도 진보적 성향의 의원들이 동의하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그런 사전 조율이 없었기 때문에 비정규노동법 공대위도 출범 한 달이 지나도록 공동 사업의 상을 그리기가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비정규노동법 공대위의 상황실장을 맡고 있는 김주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기획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안 저지에는 공통적으로 동의하지만 수정안이나 개선안이 나오면 입장이 다를 것이다. 그래서 공동사업을 잡기가 쉽지가 않다. 실제로 어떤 단체들은 이 사안보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더 무게를 두고 있기도 하고, 파견법 폐지를 담고 있는 민주노동당 안을 동의하지 않는 쪽도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공대위는 이런 다른 입장과 수위를 조율해 가면서 비정규법에 대해 전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이고 그것이 가장 큰 의미다.”

사실 수도이전 문제나 여당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4대개혁입법 추진 등에 가려 정부 비정규직 입법의 문제점들이 별로 부각되고 있지 못했다. 국회가 당리당략을 위해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을 때 지금도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수가 비정규직임에도 더 많은 수의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수 있는 법안이 ‘절망을 향한 질주’를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적어도 정부 입법안만큼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막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올 겨울 노-정 관계는 바로 비정규직 입법 과정에서 거대한 냉기류가 형성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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