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정치는 냉엄했다.

녹색정치와 사민주의를 내걸었던 녹색사민당은 결국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한 채 16일 당무위원회를 열어 당해산을 공식 결의했다.

▲녹색사민당 장기표 대표,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 등이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김재홍

장기표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과 상임고문도 이날 전원 사퇴했으며 녹색사민당은 이종복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청산위원회를 구성, 당 해산과 관련한 법적, 실무적 절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녹색사민당을 창당했던 한국노총의 정치실험도 의미있는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조직적인 진로 모색의 과제를 남겨두게 되었다.

녹색사민당은 보수정치 심판과 녹색정치 실현을 모토로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1석, 정당명부 3% 이상 득표를 노렸으나 결국 일반 유권자들 뿐아니라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녹색사민당 지지를 주저한 것으로 나타났다.

28명의 지역구 후보들 가운데 울산 울주군에서 민주노동당과의 공조를 통해 출마한 신진규 후보만이 9.6%로 의미있는 득표를 했을 뿐, 당선 기대를 모았던 장기표 대표마저 4.9%의 저조한 득표율을 보이며 6명의 후보 중 5위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또한 지역의 핵심 사업장인 하이닉스노조 위원장 출신의 김만재 후보가 출마했던 이천여주에서도 2.9%의 득표율을 보였을 뿐 나머지 후보들의 경우 1% 내외의 득표에 머물렀다. 28명 전체 지역구 후보들이 얻은 득표수도 3만7,789표에 불과했다.


정당투표에서도 녹색사민당은 한국노총의 조직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0.5%인 10만4,129표를 얻는데 그쳐 정당유지 요건인 2%에 미치지 못했다. 더구나 한국노총 후보들이 출마했던 조합원 밀집지역에서조차 극히 저조한 득표율을 보임으로써 큰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같은 선거결과는 15일 오후 6시 투표마감 직후 출구조사가 발표되면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났다.

출구조사결과 기대했던 동작갑에서의 패배와 저조한 정당득표율이 예상되자 이남순 위원장과 장기표 대표 등 한국노총과 당지도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당직자들은 출구조사결과와 실제 득표율이 다를 수 있다는 한가닥 기대를 갖기도 했으나 실제 개표가 진행돼도 녹색사민당의 득표율이 상승하지 않자 상황을 현실로 받아일 수밖에 없었다.

장기표 대표는 다른 정당의 결과에 대해서는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넘었다고 한국정치가 발전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민주노동당의 선전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을 뿐 저녁 7시쯤 서둘러 자리를 떴다.

비례대표 1번 후보인 강성천 자동차노련 위원장도 “조직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지 못한 한계를 절감했다”며 조합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선거운동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한국노총 간부들도 저녁 7시께 긴급 회의를 갖고 선거 이후 대책을 논의했으며 결국 16일 오전 지도부회의를 거쳐 19일 지도부 거취를 포함한 향후 대책을 공식 발표하기로 했다.

“마치 꿈을 꾸다 깨어난 것 같다”며 총선결과를 믿을 수 없어 하던 이남순 위원장과 한국노총 지도부들은 개표일 밤 11시가 넘으면서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당사를 떠났으며 녹색사민당도 11시20분께 상황을 종료했다.

이로써 지난 2002년 11월 민주사회당 창당으로 1년 넘게 독자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추진해온 한국노총의 실험도 사실상 일단락됐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3월 장기표 대표를 영입해 고양갑 보궐선거로 침체된 민사당을 사민당으로 재조직하면서 이번 총선을 준비해 왔으며 가능한 조직역량을 총집중하는 등 이번 선거에 ‘올인’해 왔다. 더욱이 이남순 위원장이 선거결과에 위원장직을 건 상태여서 이후 조직진로를 결정하고 사태를 수습하는데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재홍 기자(jaeh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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