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가 됐다는 것은 사실 자격증 하나를 딴 것에 불과합니다. 더 중요한 건 노동문제를 제 손으로 직접 다룰 수 있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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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둘 중 하나에 합격하기도 힘들다는 외무고시와 사법시험. 이 두 시험에 모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변호사가 근로자들을 위한 법률지원 활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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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주인공은 지난달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서상범(33)변호사. 徐변호사는 지난해 말 민주노총 산하 중앙법률원이 실시한 채용전형에 응시해 지난달 중순부터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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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변호사가 고시의 뜻을 세운 것은 1990년의 일. 당시 서울대 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徐변호사는 '졸업생과의 대화'라는 행사에서 외교관으로 활동 중인 선배들을 만난 뒤 외무고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 때부터 외교관의 꿈을 키웠고 군 복무와 학업을 모두 마친 95년 2월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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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렵사리 시작한 외교통상부 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우선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관료사회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피가 끓는 젊은이로서 갖가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었으나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괴감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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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법관이 되든 변호사가 되든 자신에게 발언권이 주어지는 사법시험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물론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접기가 쉽진 않았다. 그러나 徐변호사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진 뒤 서울 신림동 '고시촌'으로 들어갔고 3년여의 공부 끝에 200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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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년 동안 연수원 생활을 하면서다. 대학 시절 노래패 등에서 활동하긴 했어도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에 크게 열성을 보이지 않았던 그지만 '노동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고 현실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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徐변호사는 요즘 매일 오전 8시30분이면 출근, 동료 변호사 세명과 함께 하루 종일 밀려드는 체불.산재.해고 등의 사건들을 해결하느라 눈코뜰새 없는 날을 보내고 있다. 바쁘기로 소문난 민주노총 상근 근무자들조차 "저런 일벌레들은 처음 본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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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하고 徐변호사가 받는 월급은 3백만원쯤. 대형 법률회사에 입사한 동기들이 받는 월급의 절반 정도다. 하지만 그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며 "독일처럼 근로자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 노동자의 권익향상뿐 아니라 기업의 투명성 제고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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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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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03 18:04 입력 / 2003.02.04 08: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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