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한해를 정리해야 할 때입니다. 매일노동뉴스는 올 한해, 특히 하반기 노사관계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이번 주에 모두 3회에 걸쳐 기획기사를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서로 6월 지방선거와 최근 있은 대선 등과 관련한 노동계의 올해 정치방침을 살펴봤습니다. <편집자 주>

정치방침과 관련해 2002년은 한국노총에게는 '새로운 시도'에 부푼 기대를 내부 논란이란 씁쓸한 결론으로 마감한 한해였다.
2004년 독자정당 창당계획을 앞당겨 지난달 3일 민주사회당을 창당했으나 민주노동당과의 '협상'이 불발에 그친 데 이어 대선에선 끝내 지지후보를 발표하지 못했다. 그 후유증으로 일부 연맹과 지역본부들이 제각각 지지후보를 선언, 내부갈등까지 촉발했으며 민사당의 향후 진로까지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물론 민사당이 아직 건재해 '실패'라는 표현이 시기상조이나 올해만 놓고 평가해본다면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긴 어려운 처지다.

* 지방선거를 전후한 창당방침 확정

올해 한국노총 정치방침의 바로미터는 바로 민주사회당의 창당이었다.
당초 2004년을 예상했던 시점을 올해로 당긴 것은 또한 대선과 관련돼 있다. 이남순 위원장은 6·13 지방선거를 전후한 때 이미 대선전 창당방침을 굳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창당방침이 수면위로 떠오른 배경엔 지난해 조합원 여론조사에서 '노동계 독자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55%에 이른 데서 보듯 보수정당과의 정책연합 등 기존 정치방침의 변화 요구가 커진 상황과 지방선거 결과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노총 후보'들은 올해 지방선거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통해 79명이 출마했으나, 38명이 당선, 지난 지방선거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이는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총이 일정한 성과를 이룬 것과 비교되면서 한국노총에게 '정치적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일부 지역본부와 연맹간에 불협화음도 끊이지 않았던 터였다.
창당 시점과 관련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선거 직후 창당이 추진된 것은 전격적이었다고 할만했다. 그런 탓에 독자창당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공감대 형성이 부족한 것이 상층부만의 논의에 그쳤다는 지적을 낳기도 했다. 또 상층지도부 중심으로 의사결정이 되는 운동방식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비판도 있다.

* 조합원 무관심 속 창당 추진

이남순 위원장과 실무진들의 교감 속에 7월11일 구성된 대선기획팀은 지방선거 직후부터 구체적인 독자정당 창당안을 수립하는데 나섰다. 이남순 위원장도 8월 8일 산별대표자회의에서 기존정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창당방침을 적극 설득하고 나섰다. 창당이 필요하다면 정치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는 대선 이전에 창당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장조합원들의 '썰렁한' 반응이었다. 사무총국 간부들조차 "급박하게 창당을 추진하는 것은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당시 사정과 관련, 한국노총 관계자는 "창당에 회의적이던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창당이 확정된 뒤에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이들 대부분이 관망하는 자세를 보였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창당시기에 대한 논란과 별도로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와 '노동계 단일정당'이라는 명분이 설득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이를 강제할만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데 조직적 힘을 모아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다.

* 창당 이후 불거진 '지지 후보' 논란

독자정당의 향후 전망과 관련한 논란 끝에 결국 11월 3일 민주사회당은 출범했다.
이에 앞서 한국노총 중앙위원회(10월30일)는 이남순 위원장이 민사당 당대표를 겸직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통과시켜 당대표 문제도 일단락됐다.
하지만 민사당이 창당직후부터 진행해온 민주노동당과의 '협상'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대선 지지후보'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 한국노총은 회원조합 대표자회의(11월28일)에서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해 지지후보를 결정한다"고 결정, 활동가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민사당이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노총이 기존정당 후보를 지지할 경우 민사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민주노동당 후보 지지를 선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당시 적지 않은 연맹위원장들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쪽에 기운 상태였던 만큼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그러나 중앙정치위원회(12월3일)에서 지지후보 결정방침 철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만에 16개 산별연맹 위원장과 5개 지역본부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다. 이는 '독자창당'한 상황에서 "정치세력화를 더욱 후퇴시켰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 한국노총 정치방침은 어디로?

이회창 후보 지지선언 논란과 관련해 민사당 사무총장을 맡았던 권오만 택시노련 위원장이 사퇴한 가운데 민사당의 진로는 안개에 휩싸인 형국이다.
한국노총은 우선 지지후보 논란을 봉합하고 침체된 분위기를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노총은 사무총국 전 직원과 임원간 간담회, 중앙정치위원회 개최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산하조직에선 16개 연맹 위원장 징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쉽사리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또 이남순 위원장이 내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 민사당 당대표를 겸직하기로 했으므로 당대표 영입도 시급한 과제다.
일부에선 "그래도 중앙에선 지지후보를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현 상황을 수습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낙관론도 있다.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다시 세우기 위해 현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된다.

송은정 기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