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파업으로 인한 '이상조짐'이 감지돼 터놓고 얘기할 자리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투입 이후 단 한차례도 진행되지 못한 교섭. 의료원 측이 공식교섭 대신 개별접촉을 시도하는 등 노조를 배제한 채, 사태 해결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알려지자 술렁임이 있었다.
몇몇 조합원들은 배신감으로 가슴에 '못'이 박히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또 일부는 "언제까지 파업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는 안타까움도 쏟아냈다.
조합원 500여명은 현 상황을 아프지만 인정하고 진로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파업 일수보다 더 많은 집회, 목숨을 걸고 시작한 단식농성, "주님은 우릴 버렸다"고 절규하며 끌려갔던 '9·11 경찰투입', 국내 종교재단의 벽을 느껴 떠난 로마,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명동성당 농성…. 한 조합원은 지난했던 투쟁과정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고 말했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 따랐지만 제가 복귀하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유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570여명이 176일 동안 포기하지 않고 싸운 것 자체가 이 투쟁이 얼마나 정당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합시다."
올 봄부터 시작한 이들의 파업은 벌써 세 번째 계절을 바꾸고 있다. 파업으로 이들에게 돌아온 건 구속, 체포영장, 해고, 손해배상 등 감당키 어려운 '탄압'이었다. 그런데도 조합원 570여명은 176일을 '함께' 버텨왔다.
결국 CMC 조합원 570여명은 '투쟁 머리띠'를 풀지 않기로 했다. 또 이후 투쟁방향과 일정을 노조 파업대책본부에 위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 조합원은 토론회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는 절벽 바위틈을 뚫고 자라나는 소나무입니다. 어렵지만 소나무는 자라나고, 그 뿌리로 인해 강한 바위는 갈라지고 말겠지요. '전화위복'이 됐으면 합니다."
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