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와 함께 운동…온가족과 주말농장

경기도 고양에 사는 이선근(39)씨가 주5일 근무를 하면서 새로 얻은 직업이 있다. ‘아빠” 노릇이다.

이씨는 6개월 전 미국계 코크 글리치로 옮긴 뒤 토요일을 온전히 쉬게 됐다, 그뒤로 토요일은 ‘아빠의 날’ 이다. 아침 일찍 초등학교 2학년 동혁이를 자전거로 학교에 데려다주고, 방과 후엔 호수공원에서 두 아이와 함께 축구를 한다. 돌아오는 길 서점에 가거나 머리 깎으러 데려가는 일도 아빠의 몫. 아내 이민정씨(35)는 호젓하게 집에 남아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주중의 피로를 씻는다.

은행에서 주5일제를 전격 단행하고 공무원들도 격주로 토요 휴무를 시작했다. 아직 이같은 주5일 근무제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의 변화는 벌써 우리 사회 곳곳에서 삶의 방식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주 2일 휴일 시대의 키워드는 ‘하루 놀고 하루 쉬고’ 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부모’ 라는 업무 수행. 예전 같으면 일요일 하루를 쪼개서 살 던 것을 이젠 자녀를 위해 하루, 자신을 위해 하루 쓴다. 직업과 상관없이 주말은 자신만을 위한 특별 활동으로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뜻밖인 것은, 휴일이 늘면서 오히려 ‘나의 길을 가련다’ 파가 적잖은 것. 국민은행에 다니는 문광균(42)씨는 주5일 근무가 시작되자마자 “녹슨 머리에 기름을 쏟아붓겠다”며 도시락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나섰다. 예전에는 일요일 하루 쉬는 남편 뒷바라지 때문에 집에 붙들려 있던 아내 김숙경(39)씨는 그 덕에 그림 공부에 나섰다. “하루는 내 그림 수업을 위해 쓰겠다고 했지요. ” 외환은행 윤지현(34)씨 역시 토요일 하루는 자신에게 할애한다. 조조 영화 한편 보고 달려가는 곳이 종로 YMCA 농구장. 7년 간의 숨가쁜 직장 생활 동안 접어야 했던 농구. 20대들 틈에 끼여 신나게 뛰다 보면 한주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가신다.

대조적으로, 휴일 중 하루는 온전히 부부만의 시간으로 보내는 이도 있다. 주부 김지수(34)씨는 지난달부터 ‘언감생심’ 골프를 배우게 됐다. 한달 전부터 주5일 근무에 들어간 남편이 주말 골프에 아내를 청하면서다. 한국 보쉬의 엔지니어 채기현(34)씨와 홍보대행사 KPR에 다니는 아내 차의선(33)씨 부부는 양쪽 직장 동료를 모아 야구 동호회를 만들었다. 일요일 아침이면 똑같은 유니폼을 차려입고 한강시민공원으로 나선다.

회사 차원에서 주2일 휴일 ‘대책’ 을 마련하기도 한다. 외식업체 아모제는 지난해 11월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사원용 주말 농장을 경기도 양주에 열었다. 덕분에 이 회사 직원 중엔 ‘주말 농군’ 으로 변신한 사람이 적잖다. 전연식(40)씨가 그 한 사람. 토요일이면 아내와 초등생 두 남매가 3평짜리 밭에 매달린다. 옥수수도 심고 수박, 참외, 가지도 키운다. “여름이라 잡초가 하루가 멀다 하고 자라는 탓에 허리 펼 시간이 없어요. ” 농삿일을 더 즐거워하는 건 오히려 아이들이다. 전씨는 “덕분에 월요병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주 5일 근무 초기 단계인 이 시점에서 아직은 ‘우왕좌왕파’ 가 더 많다. 이틀 내내 잠만 잔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찌기 주5일 근무가 정착된 유럽 등에선 무엇보다 먼저 꼽는 ‘수칙’ 들이 있다. 우리도 경청할 만한 것들이다. “가족이 함께 즐길 취미를 가져라” “새로운 체험을 하는 시간으로 엮어라” “NGO 등 사회 참여 활동에도 눈길을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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