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얘기를 꺼내는 게 너무 한가롭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법하다.
장기파업 중인 사업장이 적지 않아서다.
하지만 일을 더 잘 하기 위해서도 적당한 휴식과 여가는 뺄 수 없는 생활의 요소다.
더욱이 여름 휴가철이다.
노조활동가들의 이유 있는 취미생활을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낚시는 미친 짓이다.

마치 잔디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다.
그 넓은 저수지에 서너개의 바늘에 떡밥을 달아 던지고, 보이지 않는 붕어와 씨름을 한다.
캄캄한 밤, 캐미라이트를 단 찌가 언제 솟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붕어가 찌를 올리는 순간과 만난다.
그 기다림이 좋다. "은지야, 인생의 반은 기다림이야."
초등학교 4학년인 큰딸에게 가끔 하는 말이다. 무엇을 기다리는가?

낚시를 처음 한 것은 80년 휴교령 때였다.
전두환 덕분(?)에 충남 서산에 있는 고모님 댁에 가서 밤마다 공수부대가 나오는 악몽을 꾸며
개울가에서 낚시를 했다. '물려면 물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막걸리 한 주전자와 책 한 권으로
그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 속에서 운동을 결심했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 맛을 얘기한다.
찌를 올리는 것을 보는 눈 맛, 손끝으로 전해오는 붕어의 힘을 느끼는 손 맛, 마지막으로 낚시를 정리하고 살림망을 올릴 때 느끼는 들 맛.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새벽 어스름 달빛, 물안개,
하늘의 별, 멀리서 언뜻 들리는 교회 종소리 혹은 풍경소리
를 맛볼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 환상적인 야광 찌의 올림을 볼 수 있으면 거의 미치게 될 것이다.

장흥유원지 기산저수지에서 공공연맹 조직실 간부들과 함께. 사진 맨 위쪽에 있는 사람이 '이근원' 교선실장
지난 4월 10일
공공연맹 양경규 위원장은
발전노조 파업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중앙위원회가 끝나고
사람들은 제각기 술집으로
떠났다. 나는 몰래 차를 끌고
낚시터로 향했다.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특히 말에
'가시'를 달고, 뒤에서 조잡한 비판을 가하는 경우에 마음을 다스리기는 쉽지 않다.

또 운동을 하다보면 상대방을 닮아가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투쟁을 하고 있는가?
투쟁 속에서 거칠어지고, 욕이 일상화되기도 한다.
평상심을 가지고, 여유를 가지기가 어렵다.
사람을 낚는 것은 마음을 낚는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 서명을 하는 경우에 "물과 같이 살리라"고 쓴다.
상선여수(上善?水)라 했던가? 붕어를 만나면, 많은 스트레스가 풀린다.
저수지에 호젓하게 앉아 찌를 바라보노라면 무념무상의 경지를 느낀다.
앞으로도 여유를 가지고 운동하고 싶다.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이 어느 날 불러 갑자기 낚시대를 사러 가자고 했다.
아들하고 대화할 시간을 만들고자 낚시를 배우겠다던 단병호 위원장은 낚시를 한번도
가지 못하고 지금 감옥에 있다. 가끔 편지와 함께 붕어가 실린 잡지를 보내 드리고 있다.

지난 2000년 서울역 앞에서 27일간의 단식투쟁 중에 낚시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시더니,
드디어 내 낚시에 걸리신 셈인가? 각종 수련회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낚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낚시를 권한다. 연맹 안에 낚시 동호회를 만들고,
올 가을에는 연맹 위원장배 낚시대회도 한번 해볼 생각이다.
보다 우리 운동이 여유로와 지기를 바라면서.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