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프랑스 파리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본부를 방문한 기자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상대는 영국 출신의 존 에반스(John Evans) 박사, 주제는 주5일 근무제 도입의 효과였다. 그는 OECD 내에서 손꼽히는 근로시간 단축 문제 전문가라고 했다.

기자는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주5일 근무제가 내수 산업 활성화의 효과를 내는가”, “주5일 근무제가 고용창출력을 갖는가”. 이 질문들은 우리 정부가 주5일 근무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근거로 내세운 것들로, 기자는 사실 여부를 검증하고 싶었다.

답변은 의외였다. “법에 의해 근로시간을 단축한 프랑스·일본·포르투갈·노르웨이 등에서 내수가 증가했다는 증거가 없다. ” “OECD 국가에서 고용이 증가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실업률이 감소했지만 이것이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다. ”

‘모범 답안’ 과 다른 말이 나오자 함께 자리했던 노동부 관계자들이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기자들은 한국 상황을 바탕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기업 규모별로 주5일제를 도입하는 것이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있다”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축했다. “우선돼야 할 것은 기업의 경쟁력이다. ”

에반스 박사의 말은 앞서 중국 북경시 소재 LG 전자부품유한공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식 직함으로 따진다면 사장인 방계진(方桂溱) 총경리는 이 회사가 실시 중인 주5일 근무를 설명하면서 “노동력을 추가 고용하기보다는 기존 노동력의 초과근로로 줄어든 근무시간에 대처하고 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그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1998년부터 시작된 노사정위원회의 주5일 근무제 도입 협상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 들었다. ‘이달 임시국회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내지 못하면 주5일 근무제는 물 건너간다’ 는 점을 정부뿐 아니라 한국노총, 한국경총도 공감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성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설사 합의되지 않더라도 주5일근무제는 이미 대세가 됐다.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근로시간 단축을 단행한 프랑스와 중국의 사례는 주5일제를 ‘1주일에 이틀 노는 좋은 세상이 온다’ 거나 ‘우리 근로조건도 국제기준에 맞게 바뀌고 있다’ 는 식으로만 보는 것이 단순한 시각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을 채택하고 있다. ‘죄책감없는 휴가’ , ‘밤에 직원 집에 전화하지 않기’ , ‘전 직원 동시휴가제’…. 근로자들에게 여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무서운 합의가 숨어 있다. 창의력 있는 아이디어로 시간 손실을 만회하라는 것이다.

경영학·행정학 전문서들은 경영기법의 효시를 ‘테일러시스템’ 과 ‘포드시스템’ 으로 보지만 이 기법들은 이미 교과서에만 나오는 구문이 됐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끝없이 첨단 기법을 쏟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 요체가 최대의 능력을 인간자원에서 뽑아내기 위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 기업들은 주5일제가 시작되면 ‘시간’ 과의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주변에서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기업을 찾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국내 100대 기업 중, 아니 인천 부평공단에서는 몇 군데나 될까. 남는 시간을 생산성 증대로 바꿀 사회적 재충전 시스템은 또 충분한 걸까.

이런 면들을 감안하면 지금 연월차 휴가 통합, 임금 보전(補塡) 등의 쟁점을 놓고 노사정이 대립하는 양상은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위한 ‘전초전’ 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5일 근무제 도입 그 이후’에 대한 준비는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믿는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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