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도연 하이징크스 대표

한국에서 처음 공연하는 음악가는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자신의 팬을 만나는 일에 큰 설렘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한국 팬들과 공연 분위기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데, 우리는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 팬들은 공연과 음악 자체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는 편이라고 말하곤 한다. 실제로 장르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공연을 숨죽여 감상하는 경향이 있고 이 차이의 가장 큰 원인을 주는 것은 특이하게도 술이다.

그렇다. 한국 실내 공연장에서 주류를 판매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술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음식물 반입도 불가능하다. 뚜껑 달린 용기 속에 담긴 생수만 허용된다. 그러다 보니 관객들은 맨정신으로 음악에 집중하는 것 외엔 다른 방식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해외 음악가는 한국에서 수백, 수천 명의 시선이 온몸에 꽂히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쯤에서 ‘어, 나 공연 보면서 술을 먹어 본 적이 있는데?’라고 생각이 든 사람이 있다. 아마도 야외 페스티벌이거나 홍대에 위치한 클럽이었을 것이다. 서울 마포구 홍대 대부분의 라이브 클럽의 간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그마한 ‘일반음식점’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홍대 일대의 상권 보호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예외 조례이자, 어찌 보면 편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 인디 음악의 발상지이자 한때 부흥지였던 그 중요한 장소들이 사실은 일반음식점이라는 우스운 역설이라니.

해외 음악가들은 이 사실에 대해 크게 놀라움을 표시하는데, 언젠가 음악가 크루의 한 관계자는 곧바로 “아니, 대체 그럼 공연장들은 돈을 어떻게 벌어?”라고 하였다. 핵심을 찔렀다. 실제로 여기에서 음악 신(Scene) 생태계의 문제점이 발생한다. 미국에서는 프로모터들이 음악가들의 공연 및 투어를 만들 때 통상 ‘80 대 20’으로 계약한다. 공연 수익의 80%를 음악가가 가져가고 나머지 20%를 프로모터가 가져가는 것이다.

공연에 관한 모든 부담을 프로모터가 진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해당 비율은 터무니없이 적다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런 계약이 가능한 것은 미국에선 공연장 내에서 주류를 포함한 음식물 판매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해당 이익률이 적지 않아 공연 판매 리스크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한국에선 80 대 20 계약을 했다가는 공연 1~2건을 마무리하고 프로모터가 곧바로 망해 사업을 접게 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수익성에 따른 이야기가 아니다. 공연장에서의 주류 판매가 가능하다면 음악가가 공연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지게 된다. 라이브 공연을 많이 하지 않은 신생 음악가의 경우 팬베이스가 탄탄하지 못하지만, 티켓 판매율이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주류 판매에서 어느 정도 손해가 차감된다면 공연장은 신생 음악가에게 무대를 내주는 부담이 적어진다. 공연은 팬을 모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며 그렇게 다섯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던 음악가가 나중에는 2천명의 관객 앞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신에서 이런 시나리오 가능성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주류 판매 같은 가외 수입 마련의 방법이 없다 보니 전문공연장 운영이 어려워지고 음악가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줘도 출연료를 정당하게 챙겨 주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자체 기획의 리스크가 높아지니 결국 대관사업에 집중해 공연 콘텐츠의 다양성이 줄어든다. 음악이 좋아 공연장을 만들었지만 월세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게 되고, 그렇게 또 하나의 무대가 사라진다. 티켓을 충분히 판매하지 못한 음악가는 그만큼 죄책감이 들고, 공연을 계속해도 수입이 나질 않아 음악가로서의 생계 및 작품활동이 어려워 악순환의 연속이다.

라이브 공연장에서의 적당한 알코올은 여흥을 돋구고 관객들이 음악을 더욱 즐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아직도 국내에서 전문공연장에서 술 판매 금지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로큰롤의 오명 및 편견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 하지만 사실 음악은 평화로운 언어이자 몸짓이라는 건 쉽게 경험할 수 있다. 만일 대중이 모여 있는 곳에서 알코올이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라면 이제 공정성을 따져볼 차례다. 야구장과 축구장, 심지어 영화관에서도 주류 판매 및 음용이 이뤄지고 있다. 오직 음악만이 예외다. 해당 규칙이 차별적으로 적용되고 더 나아가 음악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면 이제는 이러한 행정을 푸는 것을 한번 고려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이징크스 대표 (doyeon.lim@highjink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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