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사용자가 노조에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 절차를 생략한 채 교섭요구 노조로 ‘확정’한 사실을 공고하라는 노동위원회의 시정명령은 위법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관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규정은 강행규정이므로 교섭요구 노조 ‘확정’ 공고 이전에 ‘사실’ 공고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취지다.

사측‘사실’ 공고 무시, 중노위 ‘확정공고’명령

28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이날 전남 여수의 전세버스 회사인 S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공고 이의신청 사실의 공고에 대한 재심결정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소송의 발단은 2021년 4월 설립한 민주버스노조 S사 지회(조합원 15명)가 다음달 10일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7일이 지날 때까지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노조법 시행령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조의 교섭요구로부터 7일간 교섭을 요구한 노조 명칭을 사업장 게시판 등에 공고해야 한다.

지회가 교섭을 요구할 무렵인 같은해 5월17일 복수노조가 생기며 갈등은 더 커졌다. 조합원이 25명인 새로운 기업노조가 5월18일 단체교섭을 요구하고서야 사측은 그날 두 노조 모두에 대해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고, 5월26일 ‘확정’ 공고를 했다. 그러자 지회는 전남지방노동위원회에 “회사가 기업노조 설립 시기를 감안해 지회의 교섭요구 시기를 방해했다”며 교섭요구 사실 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을 했다.

그러나 지회가 시정신청을 도중 취하하면서 종결되는 듯했던 사건은 지회가 지노위에 재차 ‘확정공고’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지회는 “회사가 교섭요구 노조 확정 공고문을 게시해야 할 일자에 교섭요구 사실 공고를 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교섭요구 사실 공고기간이 끝난 다음 날 교섭요구 노조 확정을 통지하고, 교섭요구 노조 명칭 등을 5일간 공고하도록 정한 노조법 시행령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지노위는 지회 신청을 기각했지만, 중노위는 “회사에 7일간의 교섭요구 사실 공고 의무와 5일간의 교섭요구 확정 공고 의무가 있다”며 초심을 취소했다.

법원 “곧바로 확정공고 위법, 노동위 재량 넘어”

노동위 판단이 뒤바뀌자, 사건은 법원을 향했다. 쟁점은 중노위가 ‘교섭요구 사실 공고 절차 없이 교섭요구 노조 확정 공고’를 주문할 수 있는지였다. 사측은 지회의 교섭요구일(5월10일)로부터 8일이 흐른 뒤에야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했다. 중노위측은 “사용자가 교섭요구 사실 공고나 교섭요구 노조 확정 공고를 지연할 경우 과반수 노조를 결정하는 기준일이 달라질 수 있다”며 “교섭요구를 받은 날부터 7일이 경과하면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를 하지 않았더라도 교섭요구 노조 확정 공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시정명령에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다. 1·2심은 “교섭요구 사실 공고는 다른 노동조합에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과정에 참여할 기회 등을 제공하는 데 취지가 있다”며 “사용자가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교섭요구 노조를 확정해 공고하는 것은 관련 규정에 명백히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섭요구 노조 사실과 확정 공고에 관한 법령상 절차를 위반하는 내용의 시정명령은 노동위원회 재량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회가 유일한 교섭요구 노조라고 7일간의 사실 공고를 요청한 후 교섭요구 노조로 확정해 달라는 시정신청 취지의 ‘단계’를 중노위가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법원은 사용자가 교섭요구 사실 공고나 확정 공고를 지연하는 방식으로 과반수 노조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중노위 주장에도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이 문제는 노동위원회 시정신청이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교섭요구 사실 공고가 생략돼 다른 노조가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하지 못해 ‘개별 교섭’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에 관해서도 “교섭단위 분리 절차를 생략하는 것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단도 원심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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